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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10. 2023

[프롤로그] 내 직업은 논술쌤이다

나이 50이 되어서야 나는 내 일이 좋아졌다.

나에게 직업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만둘 수만 있다면 빨리 그만두고 싶은 일이었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 잠시 우쭐해져서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지' 했지만 기회만 되면 다른 길은 없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곤 했다. 그런데도 왜 20년 넘게 그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것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궁금한 일이 있다고 해도 선뜻 그 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겠지. 아니,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돈벌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 일로 생활하고 있으니 그것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을 테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토록 어리석었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 순간만을 사는, 멀리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직업은 학원 국어 강사였다. 11년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수업도 하는 원장이었다. 20대에서 40대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젊은 날을 함께한 일인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학원 강사는 대학 4학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니 국어 강사가 되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연관성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들 앞에서 낯 안 가리고 큰 목소리로 말하는 재주는 있던 터라 학원 강사의 길은 순탄한 편이었다. 적당히 인정받았고 수입도 조금씩 올랐다. 그러나 학원에 대한 소속감은 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서 그냥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시간 학원 강사로 일했다. 20대 후반 결혼하고 나서라도, 30대 초반 두 아들을 낳고서라도, 30대 중반 학원 운영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40대 초반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졌을 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학원 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학원 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잠시 우쭐거렸지만 철학이 있는 교육자로 살지 못했다. 나를 진정으로 돌아보게 된 건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40대 중반을 넘기며 드디어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의 기분을 시원섭섭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좀 서운하지만 그 복잡한 심정을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다. 아무튼 두려움과 설렘으로 시작한 나의 백수 생활, 아니 전업 주부로서의 길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 일을 했으니 그냥 잠시 쉬고 싶었을 뿐인데 뜻하지 않은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책 읽는 즐거움, 새벽의 기적, 미니멀라이프의 가치, 글쓰기에 대한 꿈, 요가의 맛, 아침 산책의 상쾌함, 등산의 매력 등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나에게 축복처럼 쏟아졌다. 일하는 여자로 살아왔던 23년보다 일을 그만두고 살았던 3년이 나에게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은 하지 않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나이 50이 다 돼서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다시는 영혼 없이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며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지금 논술쌤이다. 나를 콕 집어서 논술 수업을 맡아달라고 제안해주신 원장님 덕분에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국어논술학원을 운영하면서 강사를 고용해 초중고 논술 수업을 맡긴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논술 수업을 하게 된 건 처음이다. 2021년 9월 첫 수업을 하기까지 긴장되고 설렜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사이에서 정신없이 수업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논술 수업이 내게는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읽고 쓰는 일이 직업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게다가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보람과 성취감까지 안겨준다. 내 논술 수업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대로 모양과 색깔이 달라진다.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하니 버겁게 느껴질 때도 가끔 있지만 나는 내 일이 참 좋다. 내 일이 좋으니 내일도 좋을 것만 같다(갑자기 '내일'이라는 라임이 보여서 그냥 써봤다. ㅎㅎ)   나이 50이 되어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나의 직업, 논술쌤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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