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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5. 2023

매일 브런치 글쓰기 한 달!

'써야 한다'에서 '쓰고 싶다'로!

요일마다 7개의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7개의 연재 브런치북엔 각각 4개의 글이 쌓였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시작했는데 과정이나 글의 완성도가 어떻든 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한 달 동안 글을 발행했다. 글쓰기에서 멀어져 있던 나를 억지로 붙잡아 노트북 앞에 앉혀 놓자는 심사였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공표했으니 지가 별 수 있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긴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나 자신에게 굴레를 씌운 셈이다. 시간에 쫓기거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미루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중간에 포기하면 영영 글을 못 쓰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다. 한 해가 저물고 있는 때라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더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쓰나 날마다 고민이 깊었다. 오늘은 썼는데 내일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불안해서 새벽녘에 잠이 깨기도 했다. 그런데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한 달이 되니 문득 글쓰기 소재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재가 술술 써지는 건 아니지만 전에 비해 글을 시작하는 게 수월해졌고 글을 완성하는 시간도 조금씩 짧아지는 듯하다. 이러다 정말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기분 좋은 예감이다. '써야 한다'가 '쓰고 싶다'로 옮겨가는 기분이다.


어제는 암과 싸우고 있는 언니를 보러 천안에 다녀왔다. 언니는 2주마다 한 번씩 서울 아산병원에서 항암 주사를 맞고 2주 전부터는 집 가까운 대학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까지 겸하고 있다. 작년에 암 진단을 받고 1년 3개월이 지났는데 그 사이 언니는 20kg 가까이 체중이 줄었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어졌고 잠깐의 산책 정도로 만족해야 할 만큼 체력이 약해졌다. 언니는 인생에서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엄청난 일을 견뎌내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너무 차분하고 담담하다. 평소 언니의 성격이지만 고약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 하기엔 생김새나 분위기가 지나치게 깔끔하다. 좋지 않은 자신의 몸상태를 이야기할 때도, 불안한 앞날을 이야기할 때도 목소리의 떨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차 한 잔 마시며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소란스럽지 않은 언니의 암 투병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5년 전 아빠가 언니와 비슷한 암으로 돌아가시고 작년엔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자식들에게 임종도 보여주지 않고 홀로 눈을 감으셨다. 살아계실 때 그토록 애틋해하던 큰언니가 안 좋은 병에 걸린 걸 알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차라리 보지 않고 돌아가신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친정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아직 정년도 안 된 언니까지 병에 걸려 거동이 자유롭지 않으니 가끔은 하늘이 우리 집에 왜 이러나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더 이상 불행은 없다. 언니는 잘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 형제는 엄마아빠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혼자서 외롭게 병과 싸우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머리가 죄어오고 가슴이 뻐근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이 멀리서라도 언니를 걱정하고 한 마음으로 완쾌를 빌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언니를 낫게 할 거라고 믿는다. 꼭 그럴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나의 일상은 언니에게 미안할 정도로 평온하다. 오늘은 오래된 우리 집 방문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다. 1년 정기 예금과 적금을 탄 기념으로 공사를 진행시키고 공사 대금도 모두 내가 지불했다. 열흘 후면 큰아들이 군대에서 휴가 나오는데 새시 공사에 방문까지 새것으로 달았으니 기분도 좋고, 방도 따뜻하고 조용해서 잘 쉬다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 작은아들과 아침을 먹고 공사하시는 분들께 커피 배달까지 해드렸다. 아들은 운동하러 학원에 가고 나는 커피 한 잔 들고 동네 도서관에 와 있다. 조용한 자리에 앉아 책 냄새 맡으며 글을 쓴다. 가끔씩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기다 책을 읽다가 이번 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며 시간을 배분한다. 겨울 날씨 치고는 바람도 없이 푸근한 오늘의 날씨 만큼이나 무리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 낯설고 겸연쩍다. 그동안 너무 마음 졸이고 살았나 보다. 


'매일 브런치에 글쓰기'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고 낡은 우리 집도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큰아들은 제대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작은아들의 수능도 끝났다. 이제 좀 한시름 놓고 내 삶의 속도를 여유롭게 늦춰도 되지 않을까 싶다. '써야 한다'에서 '쓰고 싶다'로의 변화가 반가운 것처럼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좀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느긋함으로 옮겨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 큰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 그리고 나와 관계된 사람은 물론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무사와 안녕을 빌고 싶은 날이다.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모두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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