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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2. 2023

퉁퉁 부은 손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대청소!

쌍꺼풀도 묻히고 볼의 탄력이 무너진 낯선 얼굴이 노트북 까만 화면으로 보인다. 늘어진 눈꺼풀에 묻힌 눈이 거실창에 비친 내 몸 구석구석을 한심하다는 듯 훑는다. 나에게 나를 들켰다. 부끄럽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거지? 절제를 잊은 몸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고, 중년이 된 나는 어느새 날 가꾸는 걸 놓아버렸다. 오랫동안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더니 다시 잡는 게 두려워졌다.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중년에 맞는 자기 관리란 무엇인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그 긴장의 끈이란 걸 어느 정도로 당겨야 할지 감도 잃었다.


퉁퉁 부은 손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답게 쓸데없는 힘을 빼고 가볍게 글을 쓰고 싶다. 날렵한 턱선처럼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정곡을 찌르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멋질 것 같다. 내 나이에 맞는 우아함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내 글에서 묻어났으면 좋겠다. 적당한 탄력으로 지루하지 않은 글, 에너지와 성실한 태도가 느껴지는 건강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몸에선 그런 글이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보기 싫을 정도로 심하게 흐트러져 있다. 이대로는 도저히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들어 거울 앞에 잘 서지 않는다. 어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아 어떤 날엔 많지 않은 옷을 다 꺼내놓고 나름 코디를 해보지만 결국 처음에 입었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사진 속에서의 나는 그런대로 볼 만한데 언제 이렇게 푸석푸석하고 주름진 얼굴이 되어 버렸는지... 살만 빼면 괜찮을 거야 했는데 구석구석 찌든 때가 낀 것처럼 내 몸에 없으면 좋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래서야 어디 매일 글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기 관리가 안 된 사람이 쓴 글을 누가 읽고 싶겠냔 말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나를 미워하게 될 지경이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대청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옷장부터 모두 비워내고 안 입는 옷, 못 입는 옷, 어울리지 않는 옷, 아까워서 몇 년 동안 쟁여 둔 옷들, 그리고 남편의 허름한 옷과 이제는 작아서 못 입게 된 아들들 옷까지 모두 버리고 보기 좋게 정리해야겠다. 얼마 전에 신발장 정리는 했으니 가방과 속옷, 이불까지 정리하면 크지 않은 우리 집 옷장과 서랍장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 다음엔 책장이다. 너무 오래돼서 빛 바랜 책들과 다시 읽지 않을 책들 그리고 재수생 둘째아들의 수험서까지 모두 들어내야겠다. 서랍까지 모두 비워내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정리하고 나면 그제야 내가 똑바로 보일 것 같다. 그동안 나 아닌 것들에 가려 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자기 관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음이 급하다. 얼른 주변 정리를 끝내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나를 똑바로 보는 게 두려웠는데 매일 글을 쓰다보니 나를 외면하고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미루고 미뤘던 일을 끝내야 새롭게 시작도 가능하다. 맘에 들지 않는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맘에 드는 글도 쓰기 어렵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오늘 고된 하루가 예상되지만 마음을 먹었다는 게 무척이나 반갑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에 대한 각성이 더 늦어졌을 테고 주변 정리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자기 관리는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엔 말끔해진 책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을 담아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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