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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9. 2023

'그냥' 매일 글을 쓴다

매일 글을 쓰기 위한 시간 확보! 체력 안배!

그동안 기분으로 글을 썼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센티해져서 끄적였다. 날씨에 영향을 받은 글은 맑은 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남편이 내맘 같지 않은 날엔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외로워져서 글에다 하소연을 했다. 두 아들이 서운하게 하거나 자식에 대한 걱정이 깊어질 때면 글에 한숨이 가득 실렸다. 주로 기분이 안 좋을 때 감정의 힘으로 글을 썼다. 신나게 여행 중이거나 모임이 있어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온 날, 일에 성과가 좋아서 어깨가 으쓱해진 날처럼 기분이 좋을 때는 글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날의 감정을 즐겼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글은 나의 감정 쓰레기통처럼 남에게 보이기 싫은 안 좋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것 같다. 글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금은 감정보다는 엉덩이 힘으로 글을 쓴다. 매일 브런치북을 연재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책임감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오랜만에 날씨가 반짝 개어도 외출은 삼가고 노트북을 켠다. 미리 글의 소재를 생각해 놓지 못한 날엔 짧은 글 한 편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다가 좋은 생각이 나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막히면 논술 수업 준비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갖는다. 머릿속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어떤 날엔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서 내 마음을 글로 옮겨놓는 작업에 열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엉덩이에 찌르르 전기가 온 듯 절여오면 두 발을 의자에 올리고 무척이나 어정쩡한 자세가 되지만 눈은 딴짓하지 않고 노트북 커서를 쏘아본다.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일들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강구한다. 시장 가는 횟수를 줄이고, 한 끼 식사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집안일은 몰아서 짧은 시간에 끝내려고 애쓴다. 식구들의 밥을 꼭 내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좀 벗고,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간헐적 단식이 좋다고 나 자신을 설득한다. 일주일 논술 수업은 미리미리 꼼꼼하게 끝내놓고, 어떤 일이든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고 결정하자고 마음먹는다. 약속이 있는 날엔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가기 전에 반드시 글을 끝맺으려고 신경을 바짝 쓴다. '매일'이라는 단어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글을 못 쓰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난다. 나이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듯 좀 아프다고 일을 쉬지는 않지만 글쓰기는 충분히 미룰 수 있는 일이니까 감기나 몸살, 피로를 핑계 삼아 오늘 하루는 제치지 뭐, 라는 마음을 먹게 될까봐 더 전전긍긍이다. 나이 들수록 체력이 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밤 늦게까지 꼿꼿이 버티는 것도 힘들고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새벽 기상을 강행하기도 어렵다. 날이 추워지니 아침 일찍 등산은 무리고 얼마 전부터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그룹 P.T도 멈췄다. 나잇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불은 몸이다. 커진 몸을 움직이며 하루 일과를 해내려니 금방 피로해지는 것 같다. 점점 줄어드는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곳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버리면 글쓰기에 필요한 엉덩이 힘을 오래 쓸 수가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체력에 부담을 줄이려면 몸이 좀 가벼워져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가족을 챙기는 일보다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 돈을 버는 일보다 매일 글 쓰는 일에 더 신경쓰는 이유가 뭘까? 자본주의 시대에 돈도 안되고 효율성도 떨어지고 성과도 크지 않은 이 일을 나는 왜 매달리고 있는 걸까? 아직도 명확하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좀 허무맹랑한 답일 수 있지만 '그냥'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안 하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당장 누가 알아주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하고 싶고 '그냥' 하게 되는 일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나? 그래서인지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나는 좀 멋지다.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때 묻지 않은 영혼이 글쓰기로 지켜지고, 철저히 손익을 따지는 야박한 세상에 나는 글을 쓰며 낭만을 즐긴다. 이 정도면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있는 이유로 충분하다. 매일 글을 써서 어떻게 되었냐는 아주 훗날 훈훈한 결말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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