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내 인생의 페이스메이커!
급한 성격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날 가마니로 볼까봐 하루 종일 빡빡하게 계획을 짜놓고 종일 쉴 틈 없이 나를 볶아댔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싶은데 가진 게 많지 않으니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될 것 같아서 하루도 쉬지 않고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밤이면 피곤에 지쳐 쓰러지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하이애나처럼 일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40대 중턱에서 지치고 낯선 나를 맞닥뜨렸다.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난 열심히 살았다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사실 한 번쯤 무엇을 위해 그러냐고,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정말 널 위한 것이기는 한 거냐고, 좀더 일찍 나 자신에게 제대로 물었어야 했다. 한참을 달리다 갑자기 목적지가 사라진 것처럼 맥이 풀렸다. 의심하지 않고 달려온 길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허탈해졌다. 그때 책이 보였다. 일을 놓고 현실을 피해 책 속으로 숨어 들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가끔은 불안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책 속 세상은 평안하고 안전했다.
책은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마주하고 조심스레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삶의 속도가 달라졌다. 한 줄 쓰고 밖을 보다 생각에 잠겨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날도 있고, 어렵게 한 단어로 시작했는데 봇물 터진 듯 이야기가 이어져 금세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의 날씨와 온도와 우연과 감정에 의해 일상이 그냥 흘러갔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눈치 보다가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직도 예전 습성이 남아 있어서 하루를 꽉 채우듯 살려고 버둥거리는 나를 발견하면 얼른 노트북을 켠다. 아, 글을 써야지 하는 순간 빨랐던 맥박이 천천히 안정을 찾고 좀 느리면 어때 하는 배짱이 생긴다. 내 인생에 글쓰기가 페이스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내 속도를 지키라고 말이다.
아직은 글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중심잡기를 도와주는 도구이고 나를 비춰보는 창과 같은 수단이다. 그런데 조금씩 무게중심이 글로 옮겨가는 것 같다. 글이 목적이 되어 하루종일 글에만 매달리는 사람, 직업으로서의 작가, 내게는 지구 저 편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던 그런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도 글을 씁니다. 네, 매일 씁니다. 정말요, 제 글이 괜찮았나요? 아뇨, 아직 작가는 아니에요. 제 글인 줄 알아보셨다고요? 글쓰는 비결이라니요, 아직 저도 매일 글과 싸우고 있는 걸요. 아, 제 직업이요? 그냥 매일 읽고 쓰고 있어요. 나를 닮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듯 제 글을 알아보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글에 대해 내가 이런 맘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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