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오늘 하루만!"
하지만 나는 그리 자유롭지 않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자면 직장인 치고 지나치게 프리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씩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마음이 웅성거리고 어깨가 들썩인다. 당장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고, 해야하는 일을 나 몰라라 하며 될 대로 되라지 땡깡을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마음뿐이다. 어제는 아는 언니와 통화하며 결과야 어떻든 둘째아들 입시까지 끝냈으니 이제 좀 편해지고 싶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언니는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바쁜 척하는 날 안쓰러워하며 이제 좀 내려놓으라는 충고를 많이 하던 언니다. 자식도 없고 직장 다닐 필요가 없고 남편 돈 잘 벌고 가지고 있는 재산도 많은 그 언니의 눈에는 자식도 둘이나 있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정직한 월급쟁이 남편과 부지런히 통장을 채워야 하는 나의 상황이 어떻게 보일지 짐작이 된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에게 설거지 그대로 두고 저녁도 준비해놓지 않고 출근했다며 대단한 자유 선언인 듯 비장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논술쌤으로 5년만 더 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5년 후엔 제주도로 떠나자고 남편과 구두로 약속하고 수시로 그 꿈을 이야기하며 우리 부부는 힘을 내고 있다. 그런데 5년이 너무 길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큰언니는 암투병으로 제주도는커녕 집 근처 공원에서 30분도 걷지 못한다. 내가 큰언니 나이가 되었을 때 정말 나는 제주도에 갈 수 있을까. 큰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집에 도착할 시간조차 예상할 수 없는 그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고 5년 후의 계획이라는 게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5년을 좀 앞당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큰언니를 만나고 온 내 맘을 알겠다는 듯 꼭 5년 일해야겠다고 못 박지 말고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했다. 사람 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나보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가장으로서 "내가 직장에서 잘 버티면서 더 열심히 저축하려는 이유가 뭔지 알아? 물론 자식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네가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게 하고 싶어서 그래.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갖고, 정 못하겠다 싶으면 하지 않아도 돼." 라고 든든한 응원의 말을 건넨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논술쌤으로서 충분히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 플러스가 된다는 자부심도 있고 나와 수업하며 눈을 반짝이고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면 내 답답한 속이 환하게 뚫리는 기분도 든다. 어제오늘의 우울은 횟수로 3년 일했으니 이 기간이면 으레 찾아오는 슬럼프나 매너리즘 증상일 수 있다. 오늘 출근해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조잘대며 수업하다보면 언제 그랬냐 싶게 괜찮아질 수도 있다. 단지 '앞으로 5년 어떻게든 버텨야 해!'라는 족쇄는 벗어던지기로 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는 좀 느슨해지기도 하고, 우울한 날에는 목소리를 좀 낮춰가면서 오늘의 논술쌤으로만 하루 잘 버텨보기로 마음먹는다. 5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친다. 그저 '오늘 하루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카르페디엠, 현재를 유쾌하게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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