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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02. 2024

3일 일하고 4일 쉽니다

딱 5년만 더, 논술쌤으로 일하려고요.

제 직업은 국어학원 논술 강사입니다. 목, 금, 토 3일만 수업합니다. 나머지 4일은 출근하지 않습니다. 돈만 된다면 아주 이상적인 근무 시간이죠. 물론 고용주가 동의해야 하니 내가 원한다고 그냥 되는 일은 아닙니다. 3년 전 논술쌤으로 일을 시작할 때 학생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수업을 개설하는 거라 학원 원장님도 저도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토, 일 주말을 온전히 쉬려고 수, 목, 금 3일 수업을 제안하고 상담을 시작했지만 국어학원 특성상 주말 수업 없이는 학생 모집이 어렵더군요. 원장님이 조심스레 주말 하루는 수업을 개설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고 저도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할 것 같아 지금의 목, 금, 토 수업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지금, 토요일 수업이 가장 많고 당연히 수강 인원도 제일 많습니다. 토요일 수업이 아니었다면 급여가 지금의 반토막이었을 거예요. 잘한 결정입니다.


한 달 4주, 각 2시간 수업을 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3타임, 토요일에는 4타임입니다. 원래 토요일에도 3타임이었는데 작년 학기 초에 중1 상담이 몰아치더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졌니 뭡니까. 그래서 한시적으로 한 타임을 더 늘렸는데 그게 계속 이어졌네요. 지금은 목, 금에 5시 수업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3일, 총 8타임 수업을 합니다. 3일 10타임이 꽉 차면 급여는 오르겠지만 중간에 한 타임 비는 것도 그런 대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수업 준비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저녁을 챙겨 먹을 수가 있거든요. 학원 강사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까지 굶어가며 이 짓을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가끔은 들게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중간에 쉬어 가는 것도 학원 수업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토요일은 2시간 수업 4타임을 쉬는 시간 없이 이어서 합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야말로 강행군이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그러다가 골병 든다고, 이제 50대인데 나이 생각하라고, 밥은 언제 먹냐고, 타박 섞인 걱정을 합니다. 저도 한두 달 하다 없어질 타임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계속 이어지니 처음엔 좀 힘들기도 하고 과연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타고난 체력 덕분인지 하루 8시간 수업을 1년 가까이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10분 쉬는 시간을 내서 김밥 한 줄 먹고 수업하는데 정말 할 만합니다. 신기하게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내 목소리는 힘을 잃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 3일 수업이니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매일 그런 게 아니라 토요일 하루뿐이고 다음 날부터 4일 쉴 생각에 제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휴식이 필수입니다. 


4일은 말이 휴식이지 저는 그 시간을 아주 아끼며, 무척 바쁘게 보냅니다. 일요일에는 남편도 쉬는 날이니 함께 산에 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가서 점심을 먹고 오기도 하고 재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합니다. 남편과 저에게는 일요일이 가장 여유롭고 알콩달콩 부부 관계가 가장 좋아지는 시간이에요. 그래서인지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별다른 약속이 없는 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오고 그날의 브런치북 연재를 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책상에 쌓아 두었던 책을 한 권씩 읽기 시작합니다. 논술 수업을 위한 책 말고 정말 내가 읽고 싶어서 뽑아둔 책들을 읽는 시간은 너무 달콤해서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른다니까요. 여유로웠던 이틀이 후딱 지나갑니다. 수요일이 되면 다음날부터 시작될 논술 수업을 위해 수업 준비를 합니다. 논술 도서를 읽고 독후 활동지를 만들고 학부모님께 톡으로 수업 공지를 하고 지난 주에 빠진 학생들이 있으면 과제를 챙겨 준다거나 줌으로 보강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꿈같은 4일의 쉼이 끝납니다.


딱 5년만 더, 논술쌤으로 일하려고요. 지금도 학원 선생님으로 적지 않은 나이인데 앞으로 5년 더 일하려면 욕심 내지 않아야 합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달리지 않아야 달릴 수 있습니다. 체력 단련을 위해 다시 동네 청량산 아침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술도 절제하고 저녁 야식도 되도록 자제하고 있고요. 저의 정신적 지주는 역시 책과 글쓰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 읽고 쓰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수입에 감사하며 조금씩만 목표를 높여갑니다. 처음 논술 수업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애쓰며 더 겸손한 자세로 수업에 임합니다. 개인 수업 의뢰가 들어와도 정중히 거절합니다. 학원 논술쌤으로서는 3일 일하고 4일 쉬는 지금이 최적입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는 그날, 부끄럼 없이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웃으며 뒤돌아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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