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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09. 2024

논술 수업은 쉬고 있지만 여전히...

엄마로서, 아내로서 바쁜 휴일을 보냅니다.

설연휴를 겸해 11일간의 꽤 긴 휴가가 생겼습니다. 일요일부터 시작했으니 오늘이 벌써 6일째, 황금 같은 휴가의 반이 흘렀네요.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느끼는 것, 공부하거나 일할 때는 지겹도록 시간이 안 가는데 쉬는 시간이나 휴일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요. 지난 주 토요일 수업을 마치며 잠시 논술 수업에서 벗어나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다 읽어내자 마음먹었습니다. 아껴가며 읽고 있는『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도서관에서 예약까지 하며 빌려다 놓은『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남편과 나의 건강을 챙기려고 책장에서 꺼내 놓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박완서 읽기>를 연재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대출한 『오만과 몽상』1, 2권 그리고 은유의 신간 『해방의 밤』까지 책상 위에 여러 권의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권도 끝까지 읽은 게 없는데 시간은 마구마구 달려가고 있네요. 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 스탠드를 켜고 『해방의 밤』을 읽었습니다. 메타포라 글쓰기 선생님이셨던 은유는 작년 봄에 '가출'을 했다고 하네요. 재수하는 아이를 두고 식구들 밥에서 해방되어 일주일에 며칠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났는데 책에도 그 이야기가 나오네요. 재수생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가 나오기 전후로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식구들의 밥과 마음까지 챙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나만의 방'을 갖지는 못했고 은유처럼 가출을 감행할 자신도 없습니다. 아직도 날마다 식구들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집안일에 밀리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나로 인해 편안해지는 가족들을 외면하고 싶지가 않네요. 무엇보다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내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는 남편 곁이 여전히 편하답니다. 


학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유쾌한 논술쌤으로 밝은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집에서는 가족에게 가장 편한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씁니다. 그렇다고 일과 가족이 나 자신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논술쌤으로 일하면서 저는 보람을 느끼며 충분히 즐겁습니다. 가족에게는 꼭 필요한 엄마와 아내로 존재감과 자존감을 높여가며 집안에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넓혀가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공부 잘 하는 두 아들이 아니어서 네 번의 입시를 치르는 동안 마음 고생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경험 덕분에 느긋함과 의연함을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학원 수업할 때 학생들의 각기 다른 속도와 재능에 맞게 완급 조절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엄마라서 논술쌤의 역할이 더 수월해졌다고 할까요? 자식을 키워본 고생이 논술쌤으로 일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세상일이 다 이렇게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지는 게 인생인가 싶기도 합니다. 


수업이 없는 이번 주에 저는 가족에게 더 집중합니다. 2월 1일에 전역한 큰아들이 갑자기 너무 어른이 된 것같아 반가우면서도 이제 천천히 아들을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입시 결과에 너무 풀이 죽어 자존감이 낮아질까봐 작은아들의 얼굴을 살피며 마음으로 눈빛으로 부지런히 토닥이고 있습니다. 두 아들 모두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부모로서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남편과 저는 말없이 서로를 위로합니다. 몸과 마음 건강한 성인으로 자랐으니 우리 아들들 이 세상에서 자기 몫을 잘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헛된 욕심 부리지 않고 각자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그저 지켜보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답답해도 먼저 나서지 말고 손을 내밀면 그때 도와주는 걸로요. 그렇게 아들들은 어른이 되어갈 테니까요. 


논술 수업은 쉬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로서, 아내로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시장봐 놓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일하지 않으면서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여자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고 가족 걱정 없이 홀로 자유로이 사는 사람들에게 샘을 낸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렇기도 하고요. 하지만 엄마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것들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남자의 아내로 살지 않았다면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이토록 깊이 들여다볼 수는 없었을 거예요.


예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지금이 전 그저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과 글을 수단으로 일을 하고 돈도 벌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요, 아직은 미래가 불안한 아들들이지만 부모와 소통이 원활하고 함께 있으면 화목하니 이또한 고마운 일이죠. 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반밖에 안 남은 휴일이 아니라 저에게는 휴일이 6일이나 남았습니다. 이 시간 동안 가족들 잘 챙기고 다음 주 논술 수업 완벽하게 준비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알차게 보내야겠습니다. 휴일의 중간쯤에 어수선한 마음을 글로 정리하자니 글이 정신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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