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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3. 2024

자식 문제는 항상 어렵다

25년 학원 선생님의 아들 진로 고민

대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시작은 돈을 벌기 위해 '잠시만'이었다. 장래 희망이 학교 선생님인 사람은 있어도 학원 강사가 꿈인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나도 학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랬다. 학원 수업은 주로 오후 늦게 시작하니까 돈을 벌며 다른 꿈을 꾸자고. 20대에는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방송 아카데미에서 '외화번역가 과정'까지 수료하고 딴 길을 넘성거렸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장 수월하게 할 수 있고 바로 돈으로 환산되는 일에서 떠나지 못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른 일은 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이까지 이르렀다. 중간에 아이 낳느라 쉰 시간, 40대 중반을 넘어서 처음으로 갖게 된 3년의 쉼을 빼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이 족히 25년이다. 


그런데 자식 문제는 여전히 서툴고 어렵다. 어제는 재수생 작은아들이 다녔던 체육학원에 상담을 다녀왔다. 입시 결과가 좋지 않으니 학원 선생님도 학부모인 나를 만나는 게 껄끄러웠을 텐데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애를 쓰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대학 신입생이 되지 못하는 아들에게 평생교육원 학점 은행제를 설명했다. 2년 동안 온라인 강의 위주의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따면 대학교 편입의 기회가 생긴다는 거였다. 스포츠 관련 학과인데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편입은 또 쉽냐 말이다. 실기 없이 학점으로만 갈 수 있는 학교도 있다고 했지만 수도권에서 멀어진 지방이다. 삼수는 권하지 않느냐고 아들이 조용히 묻는다. 내가 아들에게 되물었다.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좋겠지만 입시는, 그것도 체대 입시는 그 확률이 너무 낮고 불투명한데 다시 할 수 있겠냐고. 내 이야기를 듣는 선생님도 확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그래도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게 체육이니 어떻게든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확신없이 계속하는 시도가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아들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발목을 붙잡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또 온라인 수업으로 학점을 따는 게 체육학도에게 맞는 교육 방식인지도 의문이다. 2년을, 결코 싸지 않은 학비를 들여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과정에서 아들은 계속 체육인의 길을 좋아하며 걸을 수 있을까. 선생님도 엄마인 나도 아들에게 명확한 길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저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기는 한데 모두 어려운 길이고 선택은 당사자가 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아들에게 결정을 떠넘겼다. 오래 입시 지도를 나도, 선생님도 무기력하다. 학벌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다고 해도 직장 구하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번이나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한 아이에게 해보라는 말도, 다른 길을 찾아보자는 말도 자신있게 수가 없다. 


큰아들은 미대 입시를, 작은아들은 체대 입시를 두 번씩 치렀다. 이제 와서 나는 후회한다. 우리 아들들이 아주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걸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플랜을 짰어야 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은 그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데 우리 아들들처럼 평균치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은 넘쳐난다. 비슷한 방법으로 공부하고 실기 준비해서 얻고 싶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복권 당첨되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 운을 믿고 혹시, 혹시하며 요행을 기대해야 한다. 나처럼 입시에 악착을 떨지 않는 엄마가 우리 아들처럼 일반 학교 중간 수준의 아이를 예체능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한 것 자체가 망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체육 선생님은 아이를 긍정적으로 키운 나의 교육 방식을 칭찬했지만 나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혹시라도 아들들이 날 원망할까봐 두렵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아들은 우선 원래 생각했던 대로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 솔직히 아들의 결정이 반가웠다. 스포츠 학과를 나온다고 해서 아주 좋은 대학이 아닌 다음에는 관련 직장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다. 체육학원의 강사가 되거나 스포츠 센터의 트레이너가 되는 게 주변에서 보이는 체육학도들의 흔한 진로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가르치는 직업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 중간 정도의 대학에서 스포츠 학과를 들어간다고 해도 그 다음은 또 불투명하다. 한번 대학 생활을 하고 싶었다는 아들의 욕구를 채우는 것 외에 아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도 사실 알 수가 없다.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면 잠시 안심은 했겠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또 계속되지 않았을까. 아들이 인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애매하고 막연한 말을 아들에게 남기고 나는 학원으로 출근했다. 


25년 학원 강사 경력이 무색하게 아들을 교육하고 진로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선 신입처럼 허둥대고 정신없다. 그저 내가 가장 잘하는,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고 내 생각을 조심스레 이야기하는 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학원 강사가 되기 전 나의 대학 생활, 그리고 학원에 발을 들여놓고도 계속 다른 곳을 훔쳐보았던 20대를 돌아본다. 우리 아들들은 아직 20대 초반의 젊디 젊은 나이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무모함이 썩 잘 어울리는 때다. 학원에서 각기 다른 성격과 재능과 적성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결코 헛된 게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평가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놀라게 했다. 두 아들에 대해 걱정하고 조바심 내고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 아이들은 아직 꽃피우지 않았을 뿐이고 꽃은 꼭 봄에만 피는 것도 아니다. 군대 전역하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 중인 큰아들,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입대를 앞두고 있어 마음 복잡해할 작은아들, 두 아들에게 나는 용기와 응원을 주려고 한다. 50대의 엄마도 열심히 일하며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니 너희들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희망을 가득 실어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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