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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r 01. 2024

휴일이지만 출근했습니다!

논술쌤으로 일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삼일절, 휴일입니다. 달력 빨간 색 날짜에 일하러 나간다는 건 모두 꺼려하는 일이겠죠? 오늘 휴일이지만 저는 출근했습니다. 설 연휴에 한 주 쉬었기 때문에 이번 주까지 수업을 해야 한 달 4주 진도를 마칠 수가 있거든요. 금요일에는 수업이 2타임뿐이고, 오늘은 결석생도 3명이나 있어서 저와 함께하는 아이들은 단 6명입니다. 휴일까지 출근해서 정상 수업을 하는데 겨우 6명이라니... 힘이 빠질 것 같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수업을 준비하는 마음이나 진행하는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2시에 실장님들이 출근하셔서 학원 업무가 시작되는데 저는 오늘 다른 때보다 일찍 출근해서 제가 학원문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학원에서 혼자 제 강의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조용하고 여유롭습니다.


3월 1일, 새로운 달의 첫날이고 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다이어리 세 권을 모두 챙겨 왔습니다. 스티커도 함께요. 화사하게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며 봄을 맞이하는 마음을 적어볼까 하고요. 남편이 이런 날 보며 '참 재미있게 산다, 안 힘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할 게 많을까? 참 신기하다' 하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저는 날마다 할 일이 머릿속에 차트로 쭉 정리가 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 가끔 몸이 힘들어도 하루 일과를 성실하게 해냈을 때 오는 성취감이나 뿌듯함에 또 다음 계획을 세워요. 오늘도 혼자만의 시간을 좀더 갖고 봄의 계획을 세우고 싶어서 휴일인데도 더 일찍 출근을 했답니다. 3월 1일에 맞는, 저만의 의식을 치러야 하니까요.


강사 생활을 참 오래 했습니다. 20대에는 학원 출근하는 게 싫을 때도 많았어요. 비가 와서, 날이 좋아서, 첫눈이 오니까, 친구와 이야기가 길어져서, 첫사랑 선배 때문에 가슴앓이 하느라, 직장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너무 많았죠. 30대에는 시부모님과 한집에 살면서 큰아들을 낳고, 갑자기 사고로 시어머님을 잃고, 작은아들을 낳아 분가해서 학원 운영까지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의 기억이 가장 흐릿해요. 주변을 세세히 살필 틈도 없이 그냥 달렸거든요. 많은 걸 놓치고 잃었던 것 같습니다. 40대의 저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어요. 학원 운영을 잘 하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돌보지 못한 채 그냥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아 학원 주차장을 지나쳐 그대로 동해로 차를 달린 적도 있다니까요. 그런데 지금 저는 출근이 싫지 않습니다. 오늘 같이 휴일에도 말입니다. 


젊었을 때는 내가 가진 걸 귀하게 여기거나 감사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더 갖지 못한 걸 불평하거나 억울해했죠.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면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오만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환경이나 다른 조건들을 탓하며 힘들어 했고요. 학원 강사를 하면서 수시로 다른 길로 빠질 방법을 모색했고 학원 운영을 하면서는 탄탄한 교육 철학도 없이 그저 잘 되겠지 하면서 안일했습니다. 그러니 직장에 가는 게 즐거울 리가 없죠. 그나마 강의실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는 건 적성에 맞았고 아이들도 저를 잘 따랐기에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가르치는 일을 놓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우선 이 나이 먹어서도 어린 아이들과 웃으며 수업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나를 보고 논술 수업을 맡긴 원장님과의 인연도 지금 생각하면 무슨 복인가 싶고요. 내가 좋아하는, 읽고 쓰는 일이 직업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읽고 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이 좋아서 하다보니 돈도 더 많이 벌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수업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몰입하는 아이들을 보면 절로 신이 납니다. 상담할 때 학부모님들이 제 수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호감을 표현하고 만족감을 드러내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흐뭇하죠. 예전에는 왜 이런 기분으로 일하지 못했을까요? 젊었을 때는 너무 급했고 기다릴 줄 몰랐고, 꾸준함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논술쌤으로 일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제 속도에 맞춰 갑니다. 대신 꾸준히 성실하게, 조바심 내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바로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내가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어도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이고, 그것도 수학이나 영어가 아니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올바른 표현을 가르치는 일이니 아이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가장 투명하게 보일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면서 더 많이 생각하고, 좋은 어른이 되려고 애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휴일이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쉬지 않고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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