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숙 May 23. 2022

계란 후라이의 힘

워킹맘, 퇴사의 세계


“어머니!, 아이가 줌 수업도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받아요. 지각입니다!”

어머, 네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바로 전화해 보겠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코로나로 학교도 가지 않고 줌 수업의 연속이다 보니 생활습관이 엉망진창이다. 엄마 아빠의 어수선한 출근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고요한 기운을 제대로 즐기며 아예 잠을 청하나 보다. 고객들이 발걸음을 하기 전 얼른 아이를 깨워야 한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든 순간 VIP실 입구에는 예약 고객이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빨리 들어섰다. 모닝콜을 할 겨를도 없어 내 마음은 초조하지만 불안함에 찌푸러진 미간을 얼른 펴자신감 있게 인사를 건넸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빨리 오셨네요~이쪽으로 앉으세요! 오늘 너무 예쁜 스카프 하고 오셨네요. 어울려요! ”     


달라진 헤어 스타일이나 포인트가 되는 액세서리, 표정의 미묘한 변화 정도 캐치하는  일도 아니다. 오늘 이 고객은  여유자금 1억을 어디에 투자할지 상담하기로 했다. 영업하는 사람으로 입 바랜 소리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띄워야 고객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다. 그런데 아직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울 모닝콜 생각에 인사를 건네면서도 초조할 따름. 고객에게 잠시 전화 좀 걸고 오겠다 해도 전혀 문제 될 것도 없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오랜 시간 쌓아올린 프로페셔널함은 순식간에 깨지기 마련이다. 물론 워킹맘의 상황을 이해 못 할 분은 아니지만 고객 앞에서 사적인 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모님 미리 뽑아둔 자료인데요. 잠시 보고 계세요. 뒤에서 급한 전화 얼른 한 통만 하고 올게요. ”

,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얼른 회의실로 뛰어 들어가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받지 않는다.

다시 걸어본다.

뚜 뚜 뚜,

역시 받지 않는다.


이번엔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뚜 뚜,

받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밖으로 내 소리가 새어나갈세라 최선을 다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번을 걸어도 전화를 안 받아. 지금 고객님계셔더 전화를 못하니까 자기가 좀 걸어봐. ”

“ 어어, 알았어.”


“사모님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자, 이제 차근차근 설명드려 볼게요. ”     




순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옆자리 워킹맘도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로 뛰어들어간다.  친구도 최선을 다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왜 아직 안 일어났냐며 다그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목소리도 그랬겠지.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 나와 저 친구가 안쓰러우면서도 또 한편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닌가 싶어 왠지 안도의 한숨도 나온다.


오전 내내 설명과 기나긴 가입 과정을 거쳐 고객의 펀드 가입이 마무리되었다. 아, 그래도 성과가 있어 다행이다 싶은 그 무렵.


'카톡!'

‘엄마, 점심은 김밥이랑 떡볶이 시켜 주세요'

'Ok'


문자를 보내고 배달의 민족 앱을 클릭했다. 김밥, 떡볶이를 장바구니에 담으려는 순간,


"안녕하세요?

조금 빨리 도착했네요!

점심 드시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또 다른 예약 고객이 들어선다. 오늘은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는 날이라 상담 고객이 많다. 점심시간 이후에 오시기로 했지만 빨리 오셨다. 은행이라는 게 원래 정해진 점심시간도 없고 예약이라 해봐야 서로의 편의를 위해 약속했을 뿐, 고객이 오시는 대로 일처리를 하는 거다. 그러니 빨리 방문했다고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거나 늦게 해치우면 될 뿐. 분은 소위 취약 소비자에 속하는 고령자이다. 일반적인 판매 절차보다 좀 더 많은 설명과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펀드 가입을 결정하면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해야 한다.


바쁜 날은 원래 더 엇갈리게 마련이다. 아이점심부터 주문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양해를 구하고 애들 김밥부터 주문해야겠다. 이쯤 되면 프로페셔널한 VIP실 팀장의 면모는 온데간데없고 영락없이 바쁘고 애처로운 워킹맘일 뿐이다.


“어머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날이 너무 덥죠? 시원한 거 한 잔 드릴까요?

” 그러게.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네. 물 한잔 줘요."


시원한 물을 떠다 드리려는 순간 은행 전화벨이 울렸다. 얼른 물을 내어드리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아니 요새 환율이 왜 이래요? 더 오를 것 같아요? 내릴 것 같아요?

좀 사두는 게 좋을까요?"


"교수님, 죄송한데 지금 다른 고객님 응대 중이라 상담 끝나는 대로 전화드려도 될까요?"

"네네, 그럼 끝나는 대로 바로 전화 줘요~나도 상황보고 달러를 사던지 해야 되니 빨리 전화 줘요~"


전화를 끊자마자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계신 고객에게 기다리시게 죄송하다는 눈빛을 건네고 손으로는 얼른 메모했다.

 

'OO고객- 환율 전망 콜백! Urgent!'  


이렇게 이것저것 챙기는 와중 아이의 점심 주문을 깜빡했다. 고객에게 한창 상품 설명을 하고 녹취를 진행하는 중 핸드폰이 울린다. 아이다. 아차! 점심 주문을 순간 잊어버렸구나! 너무 늦어버렸다. 녹음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도 없어 곧 연락한다는 메시지를 재빨리 보냈다.

 

'카톡 카톡 카톡'

'엄마 배고파요.'

'점심 언제 와요?'

'언제 주문했어요?'

'혹시 잊어버렸어요?'

'전화 좀 받아요.'


펀드 판매가 끝나자마자 표지판을 세우고 재빨리 회의실로 뛰어들어갔다. 아이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미안한 마음에 심장이 터질 지경이다. 에잇 이런 바보 같은 엄마, 점심 하나 제때 못 챙기다니. 후다닥 전화를 걸어보았다.


" 엄마가 너무 미안해. 순간 너무 바빠서 주문을 못했어. 지금 바로 할게. 딱 20분만 기다려줘."

" 네? 엄만 왜 맨날 제 약속은 어겨요? 나 지금 너무 배고픈데. 엉엉 "

배도 고픈 데다 이 상황이 속상한 아이는 결국 울기 시작한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이렇다. 코로나로 학교는 안 가는 날은 많고, 생활 습관은 무너져버렸다.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학습 공백을 메꾸기도 버거워진다. 등교할 때는 그나마 점심 걱정은 덜었는데 요즘은 매일 배달음식이다. 아침은 늦잠 자느라 굶고, 점심은 배달음식, 저녁 한 끼 겨우 챙겨 먹는 수준. 집에 돌아가면 식탁 위는 점심에 몇 숟가락 뜨다 만 음식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오늘은 둘이서 거실 바닥에 앉아 짜장면을 먹었는지 바닥이 온통 짜장면 면발에 짬뽕 국물 자국이다. 엄마가 집에 가니 그제야 배가 고프다 아우성이다. 엄마 얼굴을 봐야 식욕이 당기나 보다.      


“ 뭐 먹고 싶어?”

“ 계란 후라이요.”

" 계란 후라이 말고 좀 더 맛있는 거 먹자~"

" 아니에요. 엄마가 해주는 계란 후라이가 제일 맛있어요. "


프라이팬에 기름을 휘릭 붓고 지글지글 금방 익혀내면 되는, 소금은 뿌려도 되고 안 뿌려도 되는 그 하찮은 계란 후라이. 그저 엄마가 해주는 계란 후라이. 문득 어릴 때 읽었던 짧은 동화책이 떠올랐다. 제목은 아마 엄마 냄새였던 것 같다. 주인공 아이는 세상의 많은 냄새에 대해 생각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아기 냄새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뜻하고 꼬물꼬물한 아가에게서 나는 사랑스러운 냄새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는 아기 냄새.


아빠는 무슨 냄새를 가장 좋아할까? 아이는 아빠에게 물어본다.

"아빠, 아빠는 세상에서 무슨 냄새가 가장 좋아요? 저는 아기 냄새가 가장 좋아요. "

" 그렇구나! 아기 냄새 너무 좋지. 음, 근데 아빠는 아기 냄새도 좋지만 엄마 냄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

아이도 맞장구친다.

" 맞아요. 아기 냄새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역시 엄마 냄새예요."


책을 덮으며 왜 엄마 냄새가 제일 좋을까 궁금했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에게도 냄새가 있나? 왜 엄마 냄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지?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클수록 떠오르는 포근한 엄마 품, 문득문득 엄마품에 포근하게 안겨 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미세하게나마 엄마 품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따뜻한 엄마 냄새가 떠올랐다. 설명하기 힘든, 하지만 따뜻하고 따뜻했던 엄마 냄새. 커서야 비로소 알게 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 바로 엄마의 냄새말이다. 계란 후라이는 아이들에게 엄마 냄새 같은 건가 보다. 그냥 계란 후라이가 아니라 엄마가 해주기만 하면 되는 계란 후라이. 아무것도 아닌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살짝 겻들어진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겠지.


"그래, 엄마가 얼른 계란 후라이 만들어줄게. "


고단했던 하루는 아이들 입 속으로 후르륵 들어가는 계란 후라이와 함께 저물었다.


(사진출처.Westend61 via getty images)

이전 02화 부모는 아이의 든든한 지원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