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말, 이삿짐을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하고 기본 살림만 챙겨 이사 갈 집에서 멀지 않은 오피스텔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곳에 살면서 약 3주 정도 인테리어를 했다. 인테리어 업체를 끼지 않고 개별 인테리어(리모델링)를 하는 건 생각한 것 보다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프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건 다른 이유 없다. '다 돈 때문이다.' 취향은 지금껏 내가 선택하고 들였던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곱씹어 보면 지갑과 타협한 결과가 아닌가. 새로 이사할 집은 돈과 타협하여 적당히 마음에 들지만 어딘가 찜찜한 집에 살고 싶지 않았다.
예산만 많으면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가면 될 텐데, 23년 된 아파트를 매매하고 도대체 어떻게 변신을 시켜야 할까 눈 앞이 깜깜했다. 설상가상 눈은 킨포크에 나오는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핀터레스트나 킨포크에서 나오는 집의 평당 인테리어 견적은 얼마일까? (우선 인테리어 업체 견적가는 여러 항목을 포함하는데 자재비 + 인건비+ 디자인비 + 감리, 감독비 + AS(예비비) + 잡비로 구성된다.) 위의 사진으로 견적을 추측을 해봤을 때 마이너스 몰딩, 페인트 마감, 원목 바닥자재 등 대략 가늠해 보아도 평당 300만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300만 원이 뭔가.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인테리어 업체의 실제 견적은 어땠을까?
평소 맘에 담아뒀던 유명한 인테리어 업체에 제일 먼저 연락을 했다. 32평형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기본이 6-7,000만 원이라고 했다. 그밖에 공정이 추가되면 약 9,000만 원 정도 예상된다고 하였다. 깔끔하게 포기했다.
눈높이를 낮춰 다른 괜찮은 업체들 몇 군데 더 견적을 받아봤는데 최소 평당 최소 150만 원 정도 했다. 지금 집의 스펙과 원하는 디자인을 이야기하니 6,000만 원으로 올라갔다. 맘에 꼭 들었던 업체 M에는 우리의 예산에 맞춰 자재 가격을 다운시켜 해 줄 수 없는지도 여쭤도 봤다. 자재 가격을 낮추면 당연히 업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고 그것이 본인들 포트폴리오가 되면 곤란하다고 정중히 거절하셨다. 당연히 이해되었다. 그리하여 또 포기.
눈높이를 또 조금 낮춰 동네 인테리어 가게를 가보니 평당 100만 원 (총 3,200만 원).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보니 취향과 거리가 멀었고, 디자인을 조정한다 치더라도 기본 자재가 마음에 안 들었다. 후에 기본 견적이 2,400만 원까지 하는 곳을 찾아내긴 했는데, 마음에 영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산은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최대 2,500만 원이었다. (기본 2,000만 원 + 예비비 500만 원) 견적을 몇 군데 받아 본 후 신랑은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셀프로 하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처음엔 너무 겁나서 No! 했는데 며칠 생각해보니 눈높이를 낮출 자신이 없어서 신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셀프로 하면서 인테리어 업체에 드는 돈을 세이브하고 자재에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원하는 집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셀프 인테리어 그러니까 개별 인테리어는 정말 맨땅에 헤딩 그 자체였다. 공정이 다 끝나고 나니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혹시 흰머리 생겼나 찾아봤다.
후에 느낀 건데 인테리어 업체에서 디자이너가 돈을 받는 건 당연한 노동의 결과다. 실력적인 부분에서 안전하고 손발이 잘 맞는 시공자와 업체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 집의 유형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 시공 과정을 감리하고 감독하는 것 등의 모든 노하우가 업체의 노동과 오랜 경험으로 이뤄진 것이다.
셀프로 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보력이 떨어지니 일생일대의 고생은 물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질 때마다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을 보면 무척이나 뿌듯하고, 집을 더 사랑하게 되고 애착이 생기며 무엇보다 예산을 줄이며 취향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셀프로 하지 않았다면 알박기 타일과 폴딩도어를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수입 벽지나 수입 인덕션, 수전, 조명 등등 또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2,500만 원의 예산 중 1,000만 원 넘는 예산이 타일과 화장실 일부 액세서리 비용으로 지출되었다. 만약에 바닥 자재를 달리하면 천만 원 후반대에 32평 인테리어도 가능할 것이다.
예산이 부족한데 취향을 포기할 수 없다면 셀프에 도전하자! 힘은 많이 들어도 꽤 맘에 드는 집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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