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nezoos Oct 04. 2019

조리원 동기 꼭 있어야 해? (1)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을 느끼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게 8년인데 낯을 가리고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으로 새로 사귄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런 내가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었으니 그곳은 산후조리원. 들어는 봤나 '조리원 동기’

조리원 동기로 말할 것 같으면 산후조리원에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수유를 하면서 친해져 육아 공동체가 되는 관계를 말한다. 아이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니 주고받는 정보가 많고 심리적으로도 지지가 되며 후에는 아가들끼리 친구가 돼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

조리원 동기가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는 조리원 동기가 없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사를 공동으로 하지 않고, 단체 생활이 적고 프라이빗한 조리원을 찾아 계약을 했다.

출산 후 조리원에 입실하고 멜론과 사과가 인큐베이터에서 일주일 만에 나왔기에 수유실에 갈 일이 없었다. 참고로 수유실은 산모들이 아가들에게 젖을 먹이는 은밀하고 내밀한 공간이다. 마치 목욕탕의 사우나실 같달까.

수유실에서 몇몇 산모들은 친해져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며, 연락처도 주고받기도 했다. 은근히 갈등이 시작되었다. 동기를 만들어야 멜론, 사과의 친구들이 생기려나. '아가들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나의 고민은 조리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년에 출산을 한 A에게 연락을 했다.
"조리원 동기가 필요해? 아가들 친구 만들어줘야 하나 벌써 고민돼."
"조리원 동기는 아가를 위한 게 아니라 언니를 위한 거야. 육아 공동체 같은 거."
전화를 끊고 나니 더 고민에 빠졌다. 아가를 위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한 거라고?


멜론과 사과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왔고 수유실에 드디어 입성하게 되었다. 다 같은 디자인의 펑퍼짐한 옷을 입고 퀭한 눈빛과 푸석한 피부와 머릿결을 한 여자들이 앉아 가슴 한쪽을 내놓고 아가들에게 젖을 물리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가들에게 '아가야. 먹어 봐. 옳지. 잘 먹네. 아이 이뻐라.' 예쁜 말로 속삭이고 아름다운 클래식이 흘러나오지만 사실은 심신이 지친 산모들이 모이는 곳이다.


1,2 너네 다 내 뱃속에서 나온 거 알지.



나도 다른 엄마들 따라서 '옳지. 잘 먹는다. 아이코 예뻐라.' 몇 번 따라 하다 때려치웠다. 예쁜 말을 속삭일 만큼 체력이 안 따라줬다. 다른 산모보다 두 배는 자주 수유실로 불려 갔기 때문에. 젖을 물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냥 갖다 대기만 하면 아가가 쪽쪽 잘 먹어주는 건 줄 알았어. 아가의 입과 나의 젖꼭지가 맞물리기까지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조리원에서 가장 힘든 시간으로 기억되는 장면.



조리원 퇴실 하루 전날, 수유실에는 나와 산모 한 명 만이 있었다. 멜론과 내 가슴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옆의 산모가 "우리 이틀 뒤면 집에 가야 돼. 잘할 수 있겠지? 엄마는 자신이 없다."라고 아가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나도요. 나도. 나도 자신이 없어요.' 속으로 생각하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이틀 뒤 퇴실이에요?" 그렇게 말이 트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연락처를 교환했다. 우린 가슴을 열고 있었다.



- 다음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