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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zoos Oct 14. 2019

헛소리에 반응하지 않기

애 볼래, 밭 맬래

임신 중 생겼던 피부 트러블이 산후에도 사라지지 않아서 하루는 피부과에 가기 위해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 육아하면서 하는 외출은 시간이 금이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카카오택시는 참 편리한 시스템. 목적지를 찍고 대기하면 택시가 집 앞으로 온다. 기사님이 목적지를 알고 있기에 굳이 어디어디로 어떻게 가주세요 안 해도 목적지에 데려다줘서 편하다. 나 같은 경우는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최적의 서비스로 애용 중이었다.


"금방 어린이 집 선생님이 택시를 타고 내렸는데 어린이 집에 애들을 맡기고 놀러 다니는 아줌마들이 90프로고 나머지 10프로만 일을 한대요. 나라가 미쳐 돌아가요. 그러고선 남편한테는 돈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 긁을 거 아니에요. 안 그래요?"
"............."


"남편이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면 뭐 하나요. 마누라가 나가서 펑펑 쓰고 다니는데 집안 거덜 나는 거 순식간이죠.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해요. 안 그래요?"
"..........................."

침묵으로 일관하자 택시 기사님은 말을 멈췄다. 누군가가 질문하는 거에 침묵하는 거 처음이다. 나는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걸 스스로 견디질 못한다. 그래서 무례한 말이나 헛소리에도 '그렇죠' 혹은 '그러게요.'등의 동조하는 말을 했었다. 그리곤 돌아서서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누군가의 질문에 침묵을 해봤다. 말이 너무 말 같지 않아서. 그리고 피부과에 가는 걸 뻔히 알 텐데 굳이 내게 그런 말 하는 의도가 구려서.

저기요...

아기 보는 엄마도요.

놀러 갈 시간이 필요하고요.

여자도 돈을 벌고 싶어요.

여자가 돈을 벌면 애는 누가 보나요.
애 보는 거 세상 빡센 노동인 거 안 해봐서 잘 모르시죠. 애 볼래, 밭 맬래 하면 다 밭으로 도망가는 양반들이.

이럴 때 하는 말인가.
할많하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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