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물리 시간 때 일이다. 형광등이 깜빡깜빡 수명이 다 되었다. 관리실 아저씨가 오셔서 형광등을 갈고, 원래 있던 케이스에 넣어두고 나가셨다.
물리 선생님이 그 형광등으로 까불까불 하던 어떤 학생의 머리를 몇 번 때리셨다. 다른 애들은 다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형광등이 깨지면 어쩌지 불안 불안했다.
"선생님. 그러시면 걔가 기분 나쁠 것 같은데요.”
물리 선생님은 순간 당황하신 것 같다가
"그래? 그럼 기분 안 나쁘게 때려줄게. 기다려."
하더니 씩씩거리면서 나가셨다.
같은 반 애들은 순간 어리둥절했고 나는 좀 무서웠다. 뭘 기분 안 나쁘게 때린다는 거지?
씩씩거리며 나간 물리 선생님 손엔 긴 몽둥이가 들려져서 돌아왔다.
"너 나와. 기분 안 나쁘게 때려줄게."
나는 쭈뼛쭈뼛 나갔다. 그러자 물리 선생님은 갑자기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멍해졌던 나는 피할 생각도 못 했고 "아...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그냥' 맞았다.
말리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분위기상 내가 잘못해서 맞은 걸로 느껴졌다. 속수무책으로 몇 분간 마구잡이로 맞았다. 난 그 일을 제일 친한 친구 외에는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못했다. 말을 했다가는 혼날 것 같았다. 난 되바라진 말을 해서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물리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날 싫어하는 티를 냈고, 실습 점수도 형편없이 줬지만, 이상한 소리를 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억울하단 생각도 못했다.
이 사건이 지금도 안 잊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난 만약에 그때 매를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애였다면 '그냥' 맞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다고 때리지 말라고 엉엉 울기라도 했을 것이다. 아니면 후에 아팠다고, 맞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잘못하면 예측 불가능하게 맞는 일이 종종 있어서 잘못하면 응당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맞는 건 = 잘못한 일 =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는 생각.
스스로 별나고 엉뚱하고 잘못해서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맞을 짓이란 건 없다. 그냥 때린 사람만 있을 뿐. 그 당연한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때로 돌아가서 '네가 잘못한 거 아냐.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경찰서에 신고한다든지, 부모님께 말씀드린다든지 그 상황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싶다. 그리고 그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던 그 친구 한 명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집에서 잘못을 하면 예측 불가능하게 아빠한테 맞았던 나,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억울하게 맞았던 나를 기억한다. 폭력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스스로를 맞을 짓을 하면 맞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했던 것. 그 생각은 나를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게 만들었다.
또한 폭력은 상대방에게도 적용되었다. 누구든 잘못했을 때는 응당 맞아야 한다고. 폭력은 폭력을 불렀다.
한 번은 한강에서 젊은 남자가 어떤 할아버지의 강아지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만 하라고 했지만 젊은 남자가 멈추지 않았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젊은 남자를 향해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할아버지 체격이 좋아서 젊은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었다.
같이 있던 친구한테 말했다. "맞을 짓 했네."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아무리 잘못했어도 폭력은 아니지.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 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띵하고 머리가 울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 되는 거지. 맞아. 너무 부끄럽다.'
멜론과 사과를 키우다 보면, 순간적으로 욱하고 저 깊은 곳의 폭력성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때가 있다. 한 번은 저녁에 아기들을 재우려고 누웠는데 멜론과 사과가 돌아가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뭉텅이로 잡아당길 때는 그럭저럭 참을 만 한데, 목과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을 몇 가닥만 잡아당길 때면 너무 아파서 소름이 끼친다. 으악 아파! 소리 지르고 다시 잠자리를 정리하는데 사과가 우유통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눈 앞에 번쩍 번개가 쳤다. 순간적으로 아 씨! 하면서 우유통을 벽으로 쾅 던져버렸다. 그건 사과를 향한 폭력을 눌러서 한 행동이었다. 사과는 놀라서 으앙 울었고 순간적으로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놀라서 사과를 안고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라고 다독였다.
내게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이날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절대로' 폭력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육아 방침인데 나도 모르게 우유통을 집어던지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반성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지쳐서 욱하고 화가 날 때가 있겠지만, 엉덩이 한 대라도 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체험했으니까. 그리고 사회에서 혹여 쌍둥이에게 누군가 폭력을 가했을 때 ‘그것은 정당하지 않아’라고 교육하려 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지만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아이들로 커 주길 엄마는 바란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