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이 주변에서 이유식을 먹는다면 '이유식을 먹고 있군' 그 이상 이하의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이유식이란 그냥 이유식을 만들어서 이유식을 먹이면 그만일 뿐인 이유식 아닌가.
마치 배가 고프니 햄버거를 먹자 하는 거처럼. 이제 우리 아이들 이유식 먹을 시기가 되었으니 이유식을 먹이자. 하면 뚝딱 먹일 수 있는 것인?
멜론과 사과가 5개월 되던 때쯤 사정은 달라졌다. 이유식을 시작하려고 보니, 뭐가 이렇게 준비물이 많고 까다로울까. '그냥' 이유식을 만들어서 '그냥' 이유식을 먹고 있었던 아기는 없었다. 엄마의 노고가 얼마나 큰 지,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이유식을 시작하며 알았다.
처음에 모유를 먹이고, 분유를 먹일 때 두려웠듯 이유식을 시작하려는 시점도 두려웠다. 어디서부터 뭘 준비해야 할까. 해 보면 별 거 아니란 주변의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마랑 칼을 새로 사야 하나.
밥통을 새로 사야 하나.
냉동실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사서 먹일까?
사서 먹이는 건 안전할까?
자세는 어떻게 해서 먹여야 하지?
아기 의자를 사야 하나?
주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턱받이는 어떻게 하지?
식재료는 뭘로 해야 되지?
식재료는 어디서 사지?
유기농으로 사야 해?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1년 뒤의 내가 이 글을
비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훗. 이유식 따위야.' 뭐 이러면서.
정확히 1년이 지났다.
'훗. 이유식 따위야.'라고 말할 여유가 생겼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유식의 관문은 넘었지만, 분유를 끊고, 밥을 먹이기 시작했으며 이젠 어린이 집에 적응하는 중이다.
육아는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는 산과 같다. 작은 산을 넘으면 큰 산이 기다리고 있고 큰 산을 넘으면 작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산을 넘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성장해있고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커 가고 있다.
그래서 이유식 단계는 어떻게 넘었냐고? 초기 이유식으로 쌀, 찹쌀, 브로콜리, 고구마, 단호박, 사과, 애호박, 감자의 관문을 넘었지만 중기 이유식은 마치 큰 벽처럼 느껴져서 사 먹였다. 덕분에 울 쌍둥이는 다양한 종류의 이유식을 맛봤다.
직접 만들어 주지 못해 처음엔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육아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갑이 열릴 준비가 되어있다. (고가는 고민해봐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식을 먹이는 건 마치 전쟁 같았다.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멜론과 사과를 어르고 달래서 한 통을 다 먹이는 날은 삶의 질이 올라갔고 반대로 잘 먹지 않는 날은 이유식을 버리면서 속이 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식 단계에 꼭 필요한 건 장비와 식재료가 아닌 '잘 먹어주는 아기'이다. 아무리 모든 준비가 잘 되어있어도 아기가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유식을 세 번 먹이고, 간식까지 먹이다 보면 하루가 다 가 있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육아는 내 삶이요. 내 삶은 육아요. 육아가 내 모든 것이었던 시절. 그렇다고 육아를 완벽하게 하지도 못해서 자학했던 시절.
한번은 수유량과 이유식 양을 완전 잘못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 정해진 패턴이 편해서 유지하고 있었는데 성장발달에 맞게 조정을 해줬어야 했다. 잘 몰랐다. 아니, 아가들이 잘 따라와주니까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땐 정말 죄책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이유식이 뭐길래. 죄책감이 들고 자괴감까지 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데 그땐 이유식에 일희일비했다.
여전히 처음 하는 것들은 겁이 난다. 혼자만의 삶이었다면 귀찮으면 미루면 되고, 너무 힘들면 때려치우면 된다. 그러나 육아는 미루거나 때려치울 수가 없다. 과거의 나는 가끔씩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더랬다. 삶이 너무 힘들면, '이렇게 힘든 세상 살아서 뭐하나 빨리 나 좀 데려가 줘요.' 했다. 하지만, 이젠 죽을 생각도 못한다. 내가 죽으면 울 쌍둥이 누가 보나. 다쳐도 안 되고, 아파도 안 된다. 강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아가들아 너무 고맙구나.
이유식 안 먹겠다고 징징거리는 아가들 달래 가며 5~12개월까지 꾸준히 잘 먹였다. 그리고 쌍둥이는 훌륭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처음 하는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픈 엄마여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신비하고 아름다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