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지정석이 있다. 창가 옆자리.
카페 안에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밖에 다니는 사람들과 차도 다 보이고 하늘도 보이는 자리. 이 자리에 앉지 않게 되는 날은 어쩐지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안 난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날은 다른 자리에 앉아있다가 옮겨 앉는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쉬었다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자리.
하루는 그 자리에 아가들 가방 몇 개가 올려져 있었다. 손님이 있는 줄 알고 다른 자리에 앉았는데 알고 보니 옆 좌석 아가 엄마들이 올려놓은 짐이었다.
카페 알바생이 "가방 좀 옮겨 주시겠어요." 하니까 세상 대역 죄인처럼 짐을 옮기고 아가들한테 '쉿쉿'하더니 "여기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닌 거 같아." 하면서 갑자기 바람같이 사라졌다.
아니. 그게 아닌데... 무안하게 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빨리 가시라고 짐을 옮겨달라는 게 아니었어요. 더 계셔도 되어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못했다. 괜히 진짜 갈 시간 돼서 가는 분들 잡는 걸 수도 있어서.
그런데 옆 테이블에 조금의 민폐도 끼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다면 오버일까. 아가들이 공공시설에서 소리 빽빽 지르고 뛰어다니는 거 사실 몇 년 전부터 아무렇지 않아 졌다. (부끄럽지만 몇 년 전부터 괜찮아졌다는 건 그전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 시선은 아이보다 아이 단속을 못 시키는 엄마들을 향했었다.)
임신 계획이 있어서 우리 애도 저럴 거니까 남의 집 애도 저러는 거 이해해야지의 마음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엄마들과 아이들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트위터에서 였다. 많은 엄마들에게 부적절한 일들이 현실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현장을 목격하고 피부로 느끼는 건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아이가 기침을 하자 엄마가 당황을 하면서 기침을 하는 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막았다는 표현보다 틀어막았다는 표현이 맞다.) 아가는 크게 울고, 엄마는 더 당황해서 입을 더 막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뭐가 죄송해요. 우리는 다 기침을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오기까지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에티켓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 장면은 동네를 돌아다니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주던 어른들의 눈빛이다. 그 덕에 정말 내가 이쁜 줄 알았고 이 세상은 내게 관대하구나 느꼈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이들이 완벽하게 주변에 민폐를 주지 않도록 에티켓을 강조하는 문화가 아닌 그들을 향한 관대함이 자연스러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린 누군가의 아기 었다. 그 누군가는 우리 엄마였다.
아가는 원래 운다. 나도 아가일 땐 빽빽 울었고, 뛰어다니고, 빗물에 머리도 감았다. 원래 행동 통제가 안 되는 게 아이다. 그 모습을 관대하게 바라보고 아이들에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아기 엄마들 가지 마세요. 가라고 짐 치워달란 게 아니었어요."
매일 혼자 가던 카페를 처음으로 멜론과 사과를 데리고 다녀왔던 날이었다. 가기 전부터 쌍둥이 유모차가 카페 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낑낑거리고 문 앞에 다다랐는데 와이드가 문에 덜컥 걸리면 쿨하게 돌아서야지 했다. 다행히도 문에 안 걸려서 카페에 입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쌍둥이 유모차는 일반 유모차보다 폭이 넓어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페 알바생과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아기가 있으셨어요? 어머 쌍둥이?" 수줍게 말을 걸어오셨다. 내 돈 주고 가는 곳이지만 카페 사장이나 알바생이 아기를 대하는 태도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아예 대놓고 노키즈존도 많고 아가 데리고 와서 커피 마시는 엄마들을 맘충으로 보는 시선도 많으니까.
고맙게도(?) 알바생이 한동안 멜론과 사과를 예뻐하다 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다행히 아기들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찡얼대다가 코코 꿈나라로 가줬다. 그 덕에 커피 한 잔 마시고 리필까지 하며 꿀 같은 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보내는 한 시간과 카페에서 보내는 한 시간의 질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힘들게 아이들 옷입히고, 물건들 챙겨서 기어이 카페로 나가는 것이다.
멜론과 사과가 울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맨날 데리고 카페에 가고 싶은데, 아가들은 늘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니, 매일은 어렵겠지. (동시에 잠을 자고 조용히 있어준 건 정말 기적이야!) 그래도 아가들 컨디션만 좋으면 사람 많은 시간 피해서 한 번씩 다녀오고 싶다.
혼자 쌍둥이 데리고 단골 카페 다녀오기! 뭔가 큰 미션을 수행한 느낌이었다. 얌전히 있어준 멜론, 사과에게 고맙고, 환영해준 알바생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