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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zoos Oct 11. 2019

엄마와의 공동육아 마지막 날

엄마랑 하는 공동육아를 하는 한 달이란 시간동안 두 번의 큰 소리가 오고 가긴 했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엄마, 신랑과 나는 3교대를 하며 멜론과 사과를 돌봤다. 육아를 하는 동안 둘을 동시에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주 1회 회의를 하면서 힘든 점이나 수정해야 할 점에 대해 나누기로 했다.


한 번은 내 시간에 애들이 한 번도 안 자고 계속 울었다. 먹이고 안고 달래고 무한 반복을 하다가 멘탈이 흔들릴 때쯤 엄마가 주무시고 나왔다. 긴장이 확 풀리면서 "엄마. 나 죽을뻔했어. 애들이 계속 우는 거 있지? 어흑."이라고 말하자 엄만"시끄러!"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엄마의 반응에 깜짝 놀라 한 동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지금 뭐야? 너무 당황스럽네. 힘들다고 말도 못 해? 왜 소리를 질러. 엄마는 의사소통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아."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자리엔 신랑이 있었다.


후에 얘긴데 엄마는 그 자리에 사위가 있었던 게 너무 치욕스러웠다고 하셨다. 상황이 정리되고 다음날 실수했다고 사과를 했다.


엄만 가족끼리 어떻게 말을 조심하면서 사냐고 했다. 난 가족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힘들었다고 말하는데 '시끄러!'는 너무 했다고. 엄마도 조심하시기로 했고 우린 혹시나 서로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지냈다.

엄마의 육아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도 엄마의 시간엔 엄마 스타일대로 하시게끔 했다. 예를 들면 젖병 소독하는 방식, 옷 입히는 스타일, 애들 목욕 시키는 법, 하다못해 아가들 옷 개키는 방식까지 다 달랐지만 그냥 받아들였다. 한 번은 스윙에서 사과를 내리다가 떨어뜨려 애가 자지러지게 우는데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엄마 나도 저번에 한번 그럴 뻔했어.'라고 말한다든지 사과(또 사과) 손톱을 자르다가 손을 잘라서 애가 울어도 '괜찮아. 나도 그랬어.’ 라고 말하며 쓰린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도 매일 잊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노력이 힘들어지는 때가 왔다. 그 시기쯤 두 번째 큰 소리가 오갔다. 때는 베이비 시터에게 계속 까이고 있을 때였다. 다음 주면 엄마가 가시고, 아가들 함께 돌봐줄 분이 좀처럼 구해지지 않자 속상하고 불안했다.


"엄마 사람들이 쌍둥이라고 하면 다 도망가. 어떻게 해?"
"거봐.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애들 본 줄 알겠지? 잘 안 구해질걸? 이 힘든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어."라고 하는데 반쯤 돌뻔했다. 아니 돌았다.


"엄마! 엄마가 안 그래도 나 지금 미칠 거 같으니까 보태지 마.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하고 방에 들어가서 울었다. 그러곤 다음날 회의 때, 치킨 먹으면서 서로 서운한 거 말하면서 풀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 1회 회의를 했던 건 참 잘했던 것 같다.)

엄마와의 공동육아를 하며 여름을 나고 제법 날이 선선해졌다.
"넌 나가면 혼자 뭐 하니?"
"카페 가서 글 써. 그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
"그렇구나. 엄마도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어."

예상치 못한 엄마의 대답에 목에 뭔가 컥 하고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엄마가 작가가 되고 싶었다니. 생각해보니 십 년 전쯤 엄마 꿈이 뭐였어? 라고 물었을 때 시인이라고 해서 깔깔 웃었던 생각이 났다. 그땐 갑자기 물어봐서 아무 말씀이나 하신 줄 알았는데 괜히 하신 게 아니었다. 엄마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엄마와의 마지막 날.

신랑은 꽃다발을 준비했다가 아침에 엄마한테 드렸다. 엄마는 눈물이 글썽하셨다.



나는 엄마의 이니셜을 새긴 만년필을 선물로 드렸다.

"선물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기분이 이상해.."생각해보니 엄마의 선물은 늘 현금으로 드렸었다. 아빠도 세심한 성격이 아니니, 엄마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빨리 찍어 봐. 이런 건 남겨놔야지." 글썽하시며 좋아하시던 엄마.



만년필 사용하는 법을 한참 헤매다 사용법을 알고 적은 건 '둘째 딸 사랑해.'였다.

"나 글 쓸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아무거나 써도 쌓이면 그게 글이지."
"그래. 오늘 읽은 박완서 책에 대해 한번 써봐야겠다. 느낀 게 많아"
"응응. 엄마.. 난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좀 살아봤으면 좋겠어. 아빠와 자식들과 함께 하는 게 아닌 엄마 혼자만의 인생."
"응. 요번에 너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아. 나도 뭔가를 좀 해보고 싶어졌어. 혼자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근데 혼자 영화 보러 가는건 너무 이상할 거 같아."
"안 그래. 요즘은 혼자 오는 사람들 많아.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래? 아이 무서워. 그리고 엄마도 비상금 좀 모아봐야겠어. 열심히 일해서 벌은 돈 나를 위해 모아본적이 없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렇게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엄마와의 동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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