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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Nov 16. 2019

영국인과 동거를 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적응은 끝!

데이트할 때는 짧게 느껴졌던 두 달이 동거를 시작하니 참 길게 느껴진다. 친구들은 신혼 같은 분위기가 나서 설레겠다는데 나는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24시간 붙어있기

가장 큰 변화면서, 장점이자 단점이다.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각자 할 일을 하는 게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각자 할 일을 한다. 밥을 같이 먹고, 수다를 떨고, 언제든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일이 끝나면 피곤하고, 서로 집이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주말 데이트만 하곤 했었다. 주말은 일주일 중에 기분이 가장 좋을 때다. 가장 좋을 때 만나 보내는 시간을 좋을 수밖에 없다. 평일에도 붙어있는 요즘은 회사일이나 다른 일로 기분이 나쁠 때도 함께 있어야 해서, 기분이 다운된 모습을 서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상대방으로 인해 쉽게 기분이 더 좋아질 때도 있다. 물론 상대방의 어떤 노력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집안일 같이 하기

제일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자취를 오래 한 남자들은 나보다 깔끔하던데, 남자 친구는 자취 기간이 짧았고 주로 부모님과 살아왔던 터라 지저분한 편이다. 나도 정리정돈은 못하지만 청결은 유지했다. 남자 친구는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나와 달랐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아닌 것에서 오는 차이랄까. 남자 친구는 화장실이 더러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세면대, 욕조, 변기를 닦고, 배수구에 머리카락을 치우는 몇 주간 남자 친구는 화장실의 위생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불만이 생겼고, 기분이 나쁘면 티가 나는 타입이라 남자 친구가 눈치를 챘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남자 친구는 미안하다며, 화장실 천장에 있는 곰팡이를 제거해주었다. 그 후로 남자 친구는 배수구 머리카락 정도는 치우고, 화장실 곰팡이 제거 담당이 되었다. 남자 친구가 더 해주는 집안일도 있기 때문에 화장실 청소에 대한 분담은 이 정도로 합의가 되었다.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요리가 성에 안 찼다. 파스타 소스, 카레소스가 없으면 요리가 안 됐다. 고기도 미트볼이나 햄 같이 첨가제가 들어간 고기를 주로 요리를 했다. 첨가제 없는 식재료로 주로 요리를 하는 나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남자 친구는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 칼로 재료 손질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양파를 썰기 시작하더니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칼에 손가락을 베었다. 내가 보기에는 많이 베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그럼에도 마음이 약해진 나는 그날 요리와 설거지를 대신했다. 이후에도 나는 요리에 대한 철학을 떠들었고, 남자 친구는 나의 잔소리에 우울해하면서도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아직도 칼질하는 모습은 어색하지만, 더 이상 손을 베지 않는다. 파스타 소스, 카레소스 없이 다른 향신료로 요리를 한다. 나는 이제 남자 친구의 요리를 구박하지 않는다. 대신 요즘은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더 많이 헹구라는 잔소리를 할 뿐.

남자 친구는 항상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버려준다. 주말에는 남자 친구가 침대로 아침을 가져다준다. 시리얼과 과일 정도로 단순한 아침식사지만 주말 아침에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나는 대신 요리를 할 때, 남자 친구보다 한식 한 상을 차려준다. 아무래도 자취 경력이 남자 친구보다는 오래돼서 음식을 더 양질로 해줄 수 있다. 집안일 분배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남자친구가 침대로 가져다주는 아침과 간식



길어진 출퇴근 시간

남자 친구는 자가용이 있으나 나는 뚜벅이다. 동거 전에는 출퇴근 시간이 편도 35-40분 정도였으나 지금은 한 시간이 걸린다. 지하철이 아니고 버스로 하는 출근은 편차가 더 있어 항상 늦지 않게 나와야 한다. 지금 사는 집이 런던에서 더 멀어서 런던에 나가기가 더 힘들어졌다. 평생 서울과 런던에서만 살아본 나로서는 사람들 북적북적한 도시에 살지 않고, 슈퍼마켓도 바로 집 앞에 없는 것이 싫고 불편했다. 회사 일이 바빠지고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나에게 우울증이 왔다. 남자 친구는 나를 이해해줬고, 본인이 나를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겠다고 제안했다. 지금 당장 나의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자고도 했다. 남자 친구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와 방안들이 고맙긴 했지만, 남자 친구가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지금 사는 집은 계약 때문에 최소 6개월은 살아야 해서 바로 이사가 어려웠다. 앞으로 적응이 될지 결국 이사를 가야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는 3년 정도 발레를 취미로 해왔다. 런던에도 서울에서만큼 만족스러운 수업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지금 사는 지역에는 발레 학원 자체가 없다. 그나마 하나 찾은 학원에 혼자 첫 수업을 갔는데, 아무래도 외지이다 보니 가로등이 많이 없고,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없어서 무서웠다. 그 후로 남자 친구가 차로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온다. 이마저 남자 친구가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더 우울해졌을 거다.


"나 한국에 갈 거야."

비슷한 시기에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비자를 회사에서 스폰받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됐다. 데이트 초반에 남자 친구에게 비자 기간 3년이 지나면 한국으로 갈 수도 있단 이야기를 했었고, 그 후로 남자 친구는 혹시라도 한국에 가고 싶으면 자기는 괜찮으니 가란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단 이야기를 하자 남자 친구는 네가 한국에서 더 행복하다면 자기는 괜찮으니 가도 된다고 하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가 우울한 이유를 개선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한국에 가면 남자 친구가 괜찮지 않을 거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 우리는 일 년정도 같이 살아보고 집을 같이 구매하자고 말했었다. 내가 한국에 가고 싶단 이야기를 한 후, 다시 남자 친구에게 언제 집 구매를 했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남자 친구는 잘 모르겠다며, 네가 새로운 직장에 갔을 때 이사 간 집이 멀면 안 되니까 새로운 직장을 잡고, 집을 같이 샀으면 좋겠다 했다. 데이트, 연애, 동거, 미래의 결혼 이야기, 같이 한국에 가는 것까지 뒷걸음 없이 항상 저돌적으로 제안하고 실행하던 남자 친구의 입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주저하고 조심스러운 발언이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내가 한국에 가겠다는 발언을 고려해 생각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사실 나는 한국에 돌아갈 확신도 용기도 없다. 본의 아니게 내가 한국에 갈 수도 있다는 위협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다툼 없이 사는 법

나의 이전 연애들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연애였다. 지금 남자 친구와는 이상하게도 다툴 일이 잘 없다. 물론 남자 친구가 잘 받아주기도 하지만 근래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음→상대방이 눈치채고 괜찮은지 물음→이유 설명→논의 및 개선

불만이 생기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혼자 선뜻 말하기가 힘들어서 짜증을 내거나 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둘 다 눈치가 빠른 편이고 예민한 편이라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잘 캐치한다. 평소에 사소한 일까지도 이야기를 다 하는 편이라 기본적으로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불만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다툴 일이 잘 없으니 같이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데 짐 중할 수 있어서 연애에 감정 소모가 적다.



보통 친구들에게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면, 내 편을 들기 마련인데, 지금 남자 친구에 있어서는 친구들이 남자 친구 편을 든다. 이전 연애에서 남자들에게 잘해줬음에도 잘 안 됐던 경험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재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다시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도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는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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