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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Jul 17. 2019

착한 안정형과의 연애

그간 연애와는 너무 다른 걸?

나이 31살에 6번째 연애를 영국 남자와 하는 중이다. 최장 연애기간이 1년이었기 때문에 짧은 연애를 한편이다. 한국 , 미국 혼혈. 미국 교포, 유럽 남자 등 다양한 남자들을 만났다. 지금 남자 친구와의 연애는 반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만나온 전 남자들과는 다르다.


1. 싸우지 않는다.


남자 친구가 마음에 안 듦-내가 따짐-남자 친구의 변명과 방어-화해-또 남자 친구가 마음에 안 듦


이전 연애들은 이런 루트로 싸움이 반복되었는데 보통은 나의 기준에 남자 친구가 부합하지 않아 싸움이 되었다. 화를 잘 내었던 전 남자 친구의 경우에는 내가 a에 대해 서운하다고 말하면, 그걸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여 나의 b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그러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커졌다.  사이좋은 날보다 싸우는 날이 더 많았다.
지금 남자 친구한테도 나는 많은 짜증을 내고 잔소리를 한다.  남자 친구는 도시 밖에서 운전을 한 사람이고 나는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 런던에서는 주로 내가 가이드 역할을 한다.  한 번은 나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가야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기차를 타는지 헷갈려 신경이 곤두서 있는 와중에 해맑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 친구에게 짜증이 났다. 남자 친구한테 네가 가이드를 하라고 했더니, 나한테 네가 길을 잘 알지 않냐 했나. 물론 내가 길을 잘 알지만 나는 남자 친구도 어느 정도는 길을 알고, 내가 길을 찾을 때 같이 고민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너 나중에 네 자식이랑 둘이 어디 가야 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라고 되받아쳤다. 몇 번 말이 오고 가고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남자 친구가 웃으며 우리 다른 얘기를 하자며, 애교를 부리고 내 손을 쓰다듬고, 그렇게 분위기가 풀어졌다.  후로는 본인이 길을 찾아 가이드를 종종 한다. 내가 짜증을 내면 남자 친구가 항상 먼저 굽혀주어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2. 늦은 술자리에도 보고는 필요 없다.


한국에서의 연애는 남자 친구는 일단 내가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걸 싫어하고, 내가 친구들과 놀 때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집에는 언제 잘 들어가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 했다. 지금 남자 친구와 다른 것은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는지 보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물론 연인 사이기에 이런 내용은 공유하지만 보고 개념은 아니다. 남자 친구가 6살 연하인 탓에 한 참 놀 나이라 친구들과 종종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간다. 나는 그때마다 남자 친구가 집에 들어가든 말든 밤 열두 시에 피곤하면 잠을 먼저 잔다.  남자 친구가 어련히 잘 들어가겠지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내가 친구의 송별회 때문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됐다. 술을 한참 마시는데 밤 열두 시에 남자 친구에게서 '나 먼저 잘게.'라고 메시지가 왔다. 조심해서 잘 들어가라든가, 적당히 마시고 집에 가라든가 하는 걱정 어린 말도 없이 여자 친구는 밤늦게 술을 마시든 말든 상관없었다. 머리로는 이런 상황이 당연함을 알면서도 내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데도 걱정을 해주지 않는 것에 적잖이 낯선 느낌을 받았다. 20대 후반까지도 내가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 부모님이, 전 남자 친구가 왜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전화를 하고 확인을 했는지의 이유를 지금 남자 친구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자유로움이 좋았다. 술자리가 파하고 새벽 3시에 혼자 집에 오며 이제 집에 간다고 남자 친구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전 남자 친구는 남사친을 굉장히 싫어했다. 나중에 내 남사친을 만나고 나서는 오히려 괜찮은 친구라고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전까지는 특유의 한국 남자끼리의 자존심과 서열 싸움이 있었다. 내가 그 사이에서 서열 싸움이 있는 걸 감지를 못해서 말을 잘 못 전달했다가 전 남자 친구와 굉장히 크게 싸우는 일도 있었다. 과거의 이런 경험으로 지금 남자 친구에게 내 남사친에 대해 얘기하며 우리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 것을 줄줄이 설명했다. 내 설명을 다 들은 남자 친구는 자기는 나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추가 질문이나  추궁이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하니 바로 안도감이 들었다. 애인의 이성친구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는 본인이 이성친구와 100%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의심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사친을 경계하던 전 남자 친구는 나와 사귈 당시 본인의 여사친과 사귀고 있다.


3. 연락에 집착하지 않는다.


남자 친구가 말이 많은 편이라 우리 메시지는 한 번 보낼 때 분량이 길다. 메시지에 한번 대답을 보내려면 작성하는데 십 분이 걸린다. 회사에서 업무시간에 십 분 동안 메시지만 작성할 수 없는 노릇이라서 근무시간에 한두 번 보내고 집에 와서 세네 번 답을 보내는 것 같다. 나는 또 잠이 굉장히 많아서 잔다는 말도 없이 그냥 잠들 때가 많다. 남자 친구는 아침과 밤 인사는 항상 하는 편이고 대답도 나에 비하면 빨리 오는 편이다. 나는 메시지를 먼저 읽고 바로 답장을 안 하고 나중에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자 친구는 나한테 투덜대지 않는다. 같이 있을 때는 서로에게 집중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는 각자의 일과 시간에 집중한다.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주는 것이 나를 또한 존중해주는 느낌이 든다. 나의 일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근무시간에는 한두 번밖에 메시지를 못 보내도 이해해주고, 내가 피곤한 것을 이해해주기 때문에  자라는 인사 없이 잠드는 나를 이해해준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며 크게 싸울 일인 연락 문제도 누군가에는 단순히 이해해 줄 수 있는 문제다.


4. 나의 의견을 존중해준다.


미디어가 잘못된 연애관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켰다.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보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 여자가 싫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남자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여자 주인공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남자 주인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에는 재밌게 본 '파리의 연인'도 지금 생각해보면 박신양이 김정은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가는 장면이 많았는데,  지금의 나에게 어떤 남자가 그랬다면 데이트 폭력이라고 느끼며 공포에 떨었을 상황이다. 여자도 아니면 아니다, 좋으면 좋다고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하고, 남자는 물리적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더욱 여자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한다.
스킨십 진도를 한 단계씩 나갈 때마다 남자 친구는 나의 동의를 물었다. 손을 내 어깨에 둘러도 되는지, 키스를 해도 되는지 등 등. 지금도 관계 전마다 나의 의사를 묻는다. 데이트를 할 때도 나의 의사를 묻고, 나의 의사에 맞춰준다. 본인이 원하는 것도 있을 텐데 나에게 특별하게 요구한 적이 없다. 왕좌의 게임 시즌8이 방영됐을 때 나에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같이 보자고 조른 적 빼고는.......


5. 질투가 없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 많다. 그중 하나가 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다. 한 번은 내가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으려고 부엌에서 우유와 그릇을 들고 방으로 왔는데 남자 친구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트리뷰트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틀어놨다.  보기 좋으라고.

근래 내가 미국 영화 '매직 마이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본인도 매직 마이크가 되겠다고  몇 주째 운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영화 '매직마이크'


이런 장점들에도 나는 남자 친구와의 미래에 백 프로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남자 친구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라 내가 한 사람과 평생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생을 같이 하고 싶다. 주변에서는 미래를 생각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을 만나지 않았냐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애와는 다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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