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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Sep 04. 2019

둘째 딸로 태어나 해외로 떠나기까지

딸려 나온 부록

서른이 넘은 지금은 상관없지만, 부모님의 케어가 한창 필요한 어린 나이에는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힘들고 상처였다.

고등학생 때, 하루는 언니가 내 방으로 와서 막내는 막내라 제일 관심을 받고, 언니는 첫째라 관심을 받으니 네가 관심을 못 받아도 이해하라고 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에 아빠가 와서 같은 말을 똑같이 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같은 날에 두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억 속에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데 굳이 말로 하면 내가 더 이해할 거라 생각한 걸까.


 당시 나는 남동생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딸려온 부록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 셋을 부양하기에는 어려운 집인데 아들을 낳기 위해 아이 셋을 케어하다 보니 더 힘들어진 집. 내가 남자였으면 남동생은 안 태어났을 집.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남녀차별에 예민하 성차별이 만연한 것에 더욱 발끈한다. 희한하게 내 주변에는 딸, 아들 집이나 딸, 딸, 아들 집이 대부분이었다. 

일하는 엄마는 혼자 형제들을 케어하느라 쉴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엄마가 힘들었겠단 생각을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생각치 못 했다. 나의 유년시절에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비단 우리 집만 자녀의 성장기에 아빠에 대한 부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다들 비슷했.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는 이런 나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는데, 하루는 '홍당무'란 책을 읽고 와서 그 책의 주인공이 나와 같단 말을 했다. 궁금함에도 나도 책을 읽었다.  당시에 어떤 감정으로 그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홍당무'는 붉은 머리털에다 주근깨 투성이 소년, 언제나 매정하고 고집이 센 어머니의 심한 구박으로 시달림을 받는다. 두 사람의 대립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 말없는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 루피크 집안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하여 착실하게 행동하려는 '홍당무'의 모습을 유머가 넘치는 정확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https://ko.m.wikipedia.org/wiki/홍당무_(소설)


성장환경은 한 사람의 인격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상대적인 무관심에 자란 나는 지금도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다. 앞에서 말한 홍당무란 책을 읽고 나를 떠올렸던 친구는 나에게 '냉청한 이성'이란 별명을 붙여주었고, 다른 친구는 나에게 '감흥 없는 여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감정보다는 이성이 서는 편이라 사랑에 환상을 가지고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들보다는 좀 덜 힘든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사랑에 환상이 없으니 말이다.

20살 초반에 영국에 와서 사귄 외국인 친구들이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다. 평생 들었던 칭찬보다도 많은 칭찬을 그 일 년 사이에 들었다. 살이 많이 쪄서 자조적으로 불평과 한탄을 하면, 다들 괜찮다고 하나도 뚱뚱하지 않다했다. 한국에서 "살쪘다",  "살 좀 빼라"는 말을 항상 듣던 것과는 달랐다. 한국으로 1년만에 돌아와서 만났던 대학 남자 선배는 나를 보자마자 "살쪘네."하고 말했. 한국으로 돌아온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자 다시 한국을 뜨고 싶은 순간이었다. 영국 생활 후로 자존감이 올라갔고, 나는 좀더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나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다. 사람은 살 때까지 살다 적당히 가면 고, 돈은 죽을 때 끌어안고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때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매체들을 많이 접했고 돈보다 열정을 선택한 사람들이 우상화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않았는지, 언니는 대기업에서 10년을 한 커리어우먼이고, 남동생은 명문대를 나와 금융권 면접에도 척척 붙는 걸 보니 뭘 해도 같다.

작년 여름에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조금 길게 머물었다. 놀자니 무료하고 돈이나 좀 벌자 해서 잠깐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그때 같이 일했던 아주머니가 질문이 많았는데, 나의 형제 이야기를 듣더니 내가 형제들에 비해 스펙이 딸린다며 그래서 해외를 갔구나, 하셨다. 스펙이 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해외를 간 건 아니고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한국을 떠났는데 말이다. 나는 잘 나가는 내 형제들이, 그리고 그렇게 잘 키운 우리 엄마가 자랑스럽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잘 되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형제들이 잘 돼서 내가 부모님에 대한 부담이 니 나한테도 좋은 일이다. 자식 두 명이 잘 되었으니 한 명쯤은 좀 대충 살아도 되지 않는가.


나는 인류애, 인간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좋다. 얼마 전에 연예인 함소원 남편, 진화가 딸을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프로를 봤다. 한참 계단 앞에서 유모차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다가 마음 좋은 할아버지가 도와주었다. 영국에서는 계단 앞에 유모차를 가지고 있으면 몇 초 안 지나 누군가 도와주겠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주변을 다 의식하고 있는지 내가 주변만 두리번거렸는데도 도와줄 게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3년 전 영국에 처음 입국한 날, 공항에서 안내원이 길을 잘못 알려줘서 23 kgs 수화물 캐리어와 10 kgs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을 타게 됐다. 그때 계단에서 내 23 kgs짜리 캐리어를 대신 들어준 남자들이 다섯 명정도였다. 모두 내가 계단 앞에 서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계단 위로 낑낑 열심히 올려주시고 쿨하게 사라졌다. 내가 숙소 근처 역까지 가는 내내 길을 알려주신 할머니까지 내가 환승을 두 번하는 동안 열 명정도가 나를 도와주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몇 주전 런던 음악 페스티벌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술버릇으로 펑펑  일이 있었다.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고  한산한 곳으로 가는 잠깐 동안에,  나를 보고 괜찮냐물어봐준 여자들이 두 명, 나를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괜찮은지 물어봐준 남자도 있었다. 잘 모른 사람인데도 걱정을 해줘 고마웠다.


나의 대학 동기들 중 남자들은 대기업이나 원하는 분야에서 일을 한다. 반면 여자 동기들은 전공과 관련 없는 뷰티 사업을 하거나 대부분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다. 열심히 공부해서 같은 대학에 가도 취업의 문의 여자들에게 더 높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일을 그만두는 여자들이 있다. 회사가 여자들이 꿈을 펼치기 힘들 환경이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는 여자들. 버티지 못할 여자들은 뽑지 않는 회사.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나는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사회에서는 여자가 가정과 일, 모두를 손에 잡기가 굉장히 힘들다. 여초 산업 일부를 제외하고는 여자가 관리직으로 올라가기가 거의 미션 임파서블급이다. 장기적으로 오래 일을 하고 싶은 나로서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만약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는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고등학교 친구도 지금 해외에서 일을 하는데 공통지인인 아는 오빠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너나 ○○이가 해외로 나간 게 나는 이해가 돼. 사회생활해보니 여자한테 불리하더라. 근데 나도 혜택 받는 사람이라서 뭘 하지는 못한다......"

그 오빠가 이런 불평들에 가만히 있는다고 밉진 않았다. 남자 대통령도 가만히 있고 남자 국회의원들도 가만히 있는데 이 오빠가 가만히 있는 게 대수인가.  그냥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한국에 혹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한국에서 결혼과 출산을 할 생각이 없다. 누군가가  윗사람이라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굽신 대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의 혜택을 가져가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외모가 뛰어난 젊은 여자들만 기상캐스터를 하고, 스튜어디스를 하는 한국으로 내가 다시 돌아가고는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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