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돼지 Jun 15. 2019

동거는 Ok, 결혼은 No

여자에게 결혼이란

작년 여름 폴란드 친구가 결혼을 했다. 10년을 사귀고 5년간 동거 후 결혼이었다. 동거는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은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많은 유럽인들이 최소 2,3년의 동거 후에 결혼을 하는 듯하다. 유럽인들이 그렇다 해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동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 1년 연애하고 결혼하는 문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알기에 1년은 너무 짧지 않을까?



 1.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부모님 세대에는 결혼을 하면 이혼할 사유가 충분하더라도 참고 살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 한국에서 3쌍 중에 한 쌍은 이혼을 하고, 외국의 경우 이혼 비율은 더 높다. 결혼이란 것은 평생 함께 사랑하는 관계의 약속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평생을 오순도순하게 살다 가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애초에 수십 년 동안 한 사람만을 서로 바라보는 관계가 보편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삶을 함께 하고 싶으면 동거만 해도 되지 않을까. 두 사람의 관계에 의문이 없다면 결혼은 옵션이 아닐까.


 2. 결혼식에 대한 거부감

신부가 거추장스러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높은 웨딩슈즈를 신고 혼자 걷지 못해 도우미는 신부 뒤를 쫓아다닌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고 버진로드의 끝에 있는 신랑의 손에 건네 진다. 턱시도를 입고 식장 앞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신랑과 신부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신부. 이것이 결혼이 사회에서 추구되는 이미지다. 주체적인 남성의 역할과 수동적인 여성의 역할에 여성들이 거부하고 일어나야 할 상황임에도 본인이 수동적인 지위를 자처하고 식장에서 예뻐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피부 관리를 받고, 브래지어로 한 껏 가슴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런 결혼식을 보며 자라온 어린이들의 꿈이 예쁜 인형 같은 신부가 되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결혼이 두 남녀가 동일한 위치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라면 결혼식은 왜 이런 불평등한 모습으로 발달되었는지 생각해봐야 된다. 그렇다고 결혼을 해서 여자가 공주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미혼일 때보다 더 악착 같이 살아야 되는데, 누굴 위한 무엇을 위한 결혼식이란 말인가.


 3. 결혼함으로써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가치 : 아름다움 + 출산


한 껏 치장한 신부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왕자와 결혼한 매건 마클의 경우, 그녀가 입은 옷, 머리스타일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케이트 미들턴과 매건 마클에 대한 가장 많은 관심이 쏟아졌을 때는 결혼식을 올렸을 때와 출산을 했을 때다. 매건 마클에 대한 기사들은 대개 가벼운 주제의 가십거리들 위주이다. 반면,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자선활동과 정치에 참여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한다. 매건 마클은 미국에서 연기자로서 본인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해리 왕자와 결혼한 후에 삶이 매스미디어가 그녀를 어떻게 조명하는지를  보면 결혼이 추구하는 여성의 모습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메간 마클(Megan Markle)을 영국 구글 검색창에 검색하자 자동완성어로 '패션(Fashion)'이 뜬다. 그녀의 패션에 관련된 기사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해리 왕자(Prince Harry)의 자동 검색창에는 '패션(Fashion)'이  뜨지 않는다. 그의 패션에 관한 뉴스들도 없다.


 4. 진지한 관계는 부담스러운 유럽 남자들


나의 여자 친구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진지한 연애를 원하는 반면 유럽 남자들은 진지한 관계에 알레르기라도 있는지 캐주얼한 관계만 찾는다. 처음에는 내가 그런 남자들만 만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가사, 육아에 남자들보다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이 크다. 야근과 회식이 잦아서 남자가 직장을 다닐 때 일찍 귀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원인이 되지만,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여자의 가사, 육아 부담이 더 큰 것은 분명 잦은 야근과 회식의 탓만은 아니리라. 영국에서는 남자가 가사와 육아에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물론 상대적으로 야근, 회식이 없는 문화가 높은 가사, 육아 참여율에 기여하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집안일은 남녀가 함께 한다는 인식이 더 큰 것이 주 이유일 것이다.

영국에서 초등학생 나이 대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등하교를 해야 한다. 치안이 한국만큼 좋지는 않기 때문에 혹시 있을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해서다. 덕분에 출근길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을 매일 보는데 정말 많은 아빠들이 출근길에 아이를 데려다준다. 내가 3년 전에 한국을 떠나왔기 때문에 한국의 사정이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3년 전에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많은 남자들이 유모차를 끌거나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말로는 근래에 한국도 남자들이 육아에 함께 하는 모습을 전보다 자주 본다고 한다.

주말에 브리스톨에 있는 박물관에 가니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와 아빠의 비율이 반반 정도 되었다.


기차에서 분유를 타는 아빠.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럽 남자들은 아무래도 결혼 후에 본인한테도 같이 오는 이런 책임감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대를 이어야 한다거나 아이를 꼭 낳아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한국처럼 연애는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기 때문에 굳이 이성을 만나려 노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명절 때마다 차례상을 차리거나 매년 제사를 지낼 여자도 필요 없지 않은가.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혹시 아이를 낳게 된다면 동거보다는 결혼을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나을 것 같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결혼을 해야 좀 더 안정적인 관계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개인적으로 결혼을 꼭 해야 할까 싶다. 혹시 어떠한 이유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결혼식은 영화 '어바웃타임'에 나오는 방식 정도로 하고 싶다. 그 이상 거추장스러운 방식은 원하지 않는다.


이전 03화 영국에서 알고 느끼게 된 소소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