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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Nov 08. 2019

나는 아이 낳을 생각 없는데

아이 낳으면 예쁘겠다고?

살면서 황당한 소리를 많이 들어봤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 나와 남자 친구가 아이를 낳으면 예쁘겠다는 말이다. 나는 영국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이런 말을 할까.


연애→결혼→출산?

나는 연애 중이다. 남자 친구와 잘 되면 오래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든 헤어질 수도 있다. 긍정적인 관점으로 우리가 장기간 만남을 유지할 거라고 가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당황스럽다. 살다 보면 결혼을 할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선택지에 대한 확실한 주관이 없고 오히려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결혼은 하게 되면 헤어지고 싶을 때 쉽게 헤어질 수 없으니 번거로울 거 같고, 아이는 키울 자신이 없다. 이런 입장에서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하면 내 주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에 있다 해서 꼭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 아니다. 평생 연애만 할 수도 있고, 동거만 할 수도 있다. 동거만 하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아이는 가지지 않고 동거만 할 수도 있다. 각자 개개인의 선택인데, 결혼 생각도, 아이 생각도 없는 입장에서 "너희 둘이 아이 낳으면 예쁘겠다" 소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이 들린다.


백인 혼혈 아기는 예쁘다?

나와 남자 친구는 외모가 대단하게 뛰어난 것은 아니고 평범한 편이다. 내가 뛰어난 외모면 누군가가 나의 미래의 아기가 예쁘겠다는 말을  납득하겠다. 하지만 내가 한국 남자와 사귈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백인 혼혈 아이들이 예쁘다는 말도 덧붙여주기 때문에 내 남자 친구가 백인이라서 덕담이랍시고 해주는 말인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몇 년 전 인터넷 상에 혼혈인 이 쓴 글을 읽었다. 혼혈이란 말이 차별적인 단어이며 혼혈이 예쁘다는 말 또한 차별적이라는 것. 혼혈이란 말은 한국인의 피에 다른 피가 섞였다는 것인데, 그럼 한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한국사람은 순혈이며 다른 인종의 피가 섞이면 순혈이 아니라는 것이니 이상하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영어의 경우에는 반은 한국인, 반은 미국인(half Korean and half American)이라고 설명은 해도 따로 혼혈을 칭하는 말은 없는 듯하다. 다른 인종과 한국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혼혈이라고 칭하는 것부터가 혼혈을 타지화 시키기 때문에 차별적이다.
한국 미디어에 나오는 혼혈은 주로 백인과 한국인 혼혈이고, 백인 혼혈이 예쁘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흔히 혼혈 아기는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흑인, 중동인, 동남아시아 등 다른 인종의 혼혈 아기를 배제시켜 백인 혼혈'만' 예쁘다는 의미로서 차별적이다.
최근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쇼 프로그램에 축구선수 박주호 씨의 백인 혼혈 아이들이 출현하고 있다. 아이들은 굉장히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나는 의아한 바들이 조금 있다. 일단 출연자의 부모가 예능인으로서 여느 다른 출연자들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데, 아이가 백인 혼혈이라서 출현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백인 혼혈이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특혜랄까.

이전에 출현했던 아이들은 아이의 관점에서 다뤄졌다면, 박주호 씨의 자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좀 더 성인의 관점에서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된다. 백인 혼혈이라서 더욱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연기나 음악활동을 하는 연예인이 아니고 아직 아이일 뿐인데 이런 외모 평가는 너무 가혹하다. 한 때 나도 육아 프로그램의 애청자로서 아이들이 외모로 소비되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하다.

출처 : 네이버 출처

나는 한국에서 누가 예쁘다고 해서 항상 외모로 이야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싫다. 외모지상주의를 떠나서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을 외모에 더 집착하게 만들 수 있다. 예쁘다, 잘 생겼단 말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듣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외모 칭찬을 해주지 않으면 신경 쓰여서 더 외모 관리에 박차를 가하는 경우들을 봤다.  남들이 하는 평가에 너무 내 기분을 좌지우지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외모는 타고나는 거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에게 외모 칭찬 대신 성품이나 지식에 대한 칭찬을 더 해주면 아이가 더 바르게 자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다른 국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은 10년 전쯤부터다. 그때쯤부터 원어민 강사들이 학교와 학원에 많아졌고 내가 중학생 때 처음 외국인을 보았던 동네에서는 몇 년 후, 길에서 외국인을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가 되었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거나 노예무역을 했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다문화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서구권 나라들도 아직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다 같이 어울려 사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물며 이제 막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받아들인 한국에서는 더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면 외국인들에 대한 시선과 인식이 덜 차별적으로 변화할 거라 생각한다.

출처 : 연합뉴스 https://www.google.com/amp/s/m.yna.co.kr/amp/view/AKR20171115055000004

좀 더 외국인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한국인들만 국제커플에게 너네 아기는 예쁘겠다는 선이 넘는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녀가 오래 만난다면 아이를 가질 거라는 당사자들의 의사는 배제한 본인들의 가정은 무례하다. 혹시 내가 아이를 낳더라고 한국에서 낳아 울 생각은 없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백인 혼혈에게 주어지는 이유 없는 관심이 싫어서다. 낳을 걸로 고려되지도 않는 아이에게 주어지는 관심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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