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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 아빠 Dec 16. 2019

한여름밤의 꿈 (여행하며, 육아하며, 사랑하며)

- 체코 프라하 한달살기, 동유럽 유랑의 마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요컨대 나라는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었다. 또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반달 / 윤대녕)

체코 프라하 한달살기의 마지막 거점은 스미호프Smíchov, 안델 Anděl 근처였다. 프라하 여행의 마지막일 뿐 아니라, 우리의 4개월간의 동유럽 여정의 마지막이었다. 아내는 "진짜 집에 가는 거야? 진짜?" 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을 표현했고, 큰아이는 친구들 만날 생각, 발레도 다시 하고 악기도 배우고픈 기대감 등등에 들떠있다. 둘째는 집을 기억하기나 할까? 또 숙소 옮겼나 보다 할까? 그리고 나는 우울했다. 아쉬운 마음 하나둘 떠올리자니 끝도 없었다.

그리고 이전 숙소 체크아웃과 스미 호프 Smíchov 새 숙소 체크인 사이 시간이 좀 떴다. 짐부터 올려놓고 산책을 나섰다. 이제 숙소 옮기기 위한 짐 싸기도 마지막이었다. 매번 체크아웃을 앞두고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는데, 이제 이번 체크아웃 이후엔 공항이고, 집이었다.

블타바 강 서쪽으로 건너왔잖아, 강변에 있는 공원에 가야지하며 찾은 곳이 캄파 Kampa 공원이었다. 점심 먹고 산책하자며 찾았는데, 이곳은 또 이곳대로 공원의 정취가 전혀 달랐다. 프라하 안에 여러 공원을 가봤건만 다 달랐다. 나무하며 잔디 하며 그늘, 녹지, 내음 모두 다른 게 신기했다.

평일 치고 인파가 적지 않았다. 까를교 Charles Bridge Karlův most 가 가까워서 그런가? 프라하의 명소들은 까를교를 중심으로 대부분 밀집되어 있다. 문득 추석 연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한국사람 많겠구나, 큰아이가 반가워하며 인사하겠구나, 어차피 귀국하면 늘 마주할 익숙한 언어이고 인종인데, 미리 예행연습하겠구나’ 그런 마음에서 일까? 눈앞의 많은 것들이 왠지 섭섭했다.

캄파 공원 인근에 뭐가 있나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는데 극장 divadlo 이 하나 걸렸다. 게다가 저녁 6시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 있었다. 이제 구글이 취향까지 추적해주나? Divadlo Kampa 극장 위치를 확인하고 청소를 마친 숙소로 체크인하러 갔다. 마지막 숙소였다.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첫 숙소였던 즈린카 아줌마 댁일 것만 같은데, 지금까지 긴 여정이 즈린카 아줌마네서 잠들고 꾼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막 자그레브에 도착한 여행 첫날인 것이다. 이 유랑생활 다시 처음부터 하래도 즐겁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옥탑방을 리모델링한 숙소인데도 깨끗하고 천정도 높다. 귀국하면 우리 집 천정 낮을 거 생각하니 그것도 서운했다. 숙소를 체크인하는 날이면, 아내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가구 배치를 바꾸고 바닥 걸레질을 매번 했다. 숙소 고르기부터 입주 당일 청소까지, 아내도 여행기간 내내 고생 많았다. 그동안은 주방 설거지를 물 튀며 해도, 화장실 물기를 안 닦아도, 바닥 청소를 게을리 해도 상관없었는데, 귀국하면 아내 눈치를 보며 집안 살림을 해야 했다. 그것 역시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이유 중 하나였다.

늦은 체크인에, 늦은 낮잠까지... 하마 타면 예약한 공연시간에 늦을 뻔했다. 그렇게 우린 Divadlo Kampa에 갔다. 극장의 친절한 직원에게 공연 관련해서 물었을 때, '장애가 있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들었는데, 공연이 시작하자 '장애인들이 연기하는 공연'인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영어로 대화하며, 정확하게 듣지 못한 이야기나 단어를 넘겨짚는 버릇이 있는데, 공연 관련 홈페이지에 사진을 보고, '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건가?' 하고 몸이 불편하거나 심술궂은 왕 이야긴가보다 했는데, 이 공연은 장애인 극단에서 하는 작품이었다. 관객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란 말이 무색하게 성인 관객이 더 많았고, 장애인도 꽤 있었다. 극장 관계자나 관객들이 모두 좋은 매너와 친절한 웃음을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훈훈해서 둘째 아이까지 부담 없이 객석 맨 앞줄에 앉아 공연을 즐겼다. 

작품은 Králové tramtárie - 번역이 안된다. 왕자와 왕자의 이야기였다. 왕자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 여왕이 전 세계 이곳저곳의 공주들에게 연락해서 방문하지만 왕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또 다른 왕자와 사랑에 빠져서 왕자와 왕자는 혼인을 하고, 많은 곳을 여행 다니며 세상의 다양함을 경험하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장애인 극단, 알아듣지 못하는 체코어 임에도 우리 식구는 깔깔 웃으며 공연을 즐겼다. 극 중에 아코디언으로 반복 연주하는 테마송이 궁금해서, 공연 후 출연한 배우에게 물으니, "개와 고양이가 다르고, 너와 나도 다르고, 모두가 다른 모습,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에요. 오늘 출연한 배우 중 장애인이 여섯 명인데,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말하려는 게 공연 내용이자 테마송에 담긴 의미예요"라고 설명했다. 어떤 계획이나 의도 없이 찾은 극장에서 기대치 않은 이야기로 받는 감동, 여행이 삶에 주는 행복과도 닮아있었다.

저녁엔 공연을, 낮엔 공원과 놀이터 산책을, 우리의 일상 패턴은 여행 막바지에는 체계적이 되었다. 어느 날 오전 산책 중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를 지나치며, 큰아이에게 한참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을 설명했고, 왜 공산주의에선 추모해야 할 희생자가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이렇게 7살 아이는 긴 여행을 통해 다양성과 사상, 역사에 대한 체험을 통한 공부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우린 아직 짧지 않은 해를 벗 삼아 킨스키 서머 하우스 산책을 했다. 박물관 이름 Musaion-národopisná Expozice Letohrádek Kinských, Kinsky summerhouse로 나름 유명한 듯했다. 바로 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분수대 중심으로 체력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잔디만 만나면 형식 없이 아이들은 소리 지르며 자유롭게 뛰놀았다. 아내는 옆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시작해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했다. 

해가 저물고, 둘째 아이 재우고, 큰아이와 뻥튀기 하나 들고, 아이스크림 사 먹으며 밤 산책을 다녔다. 역시 까를교 인근에 오니 밤은 바쁘고 상점은 비싸고 상인들은 불친절했다. 까를교에 올라 소원 들어주는 동상 앞에서 큰아이에게 소원 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빠가 짜증, 화 그만 내고 우리 가족 아끼고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랬다. 4개월을 동유럽 거리에서 함께 했는데, 난 나아진 게 하나 없었다. 

‘그 소원 꼭 이뤄줄게. 더 늦기 전에 꼭’ 미안한 다짐을 했건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둘째 아이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깜빡하여 트램역을 하나 지나서 내렸다. 캄파 공원을 산책할 참이니, 그래 봐야 조금만 더 걸으면 됐다. 그 덕에 11년 만에 레넌 벽 앞에 섰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 자유의 상징 앞에 선 것이다. 1980년대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비틀즈의 노래 가사를 젊은이들이 벽에 쓰기 시작한 이후 각종 그라피티와 여행자들의 낙서가 덧칠되며 지금의 레넌 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11년 만에 왔으니, 그간 많은 낙서가 덧입혀졌겠구나. 모르긴 해도 벽의 두께가 11mm는 더 두꺼워졌겠지.

추석 연휴가 다가오며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마주쳤다. 아내는, 중학생 즈음의 두 딸과 막 프라하에 도착한 네 식구 가족을 보았단다. 그 설렘에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과 아빠, 엄마의 풍경에서 대략 10년 후의 우리 모습을 마주쳤나 보다. 

둘째와 캄파 공원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오전에만 그늘이 드리워지는, 활용도가 제한적인 이 공원엔 한두 살 어린아이 엄마들이 유모차 부대로 대거 나와서 함께 육아 중이었다. 엉겁결에 둘째 아이도 무리에 섞여 함께 놀았다. 또래 아이와 어울리기에 "몇 개월이에요?" 물으니, 14개월이라 한다. 그래서 말했다.

저흰 장기여행 중인데, 실은 얘가 14개월 때 이 여행을 시작했고, 지금은 17개월이에요. 당신 아이의 걸음걸이를 보니, 제 여행의 처음이 떠오르네요

별거 아닌데, 무언가 뭉클했다. 그저 여행을 했을 뿐인데 무언가 대단한 듯 뿌듯하다. 세상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이렇게 여행을 위해 길 위에 서면, 스스로 특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매력적이고 멋있어진다. 일상 속에서 세상의 조역 혹은 단역으로 살아가다가 길 위에서 내가 주연이 되는 순간을 느낀다. 

오후엔, 여행 중 처음으로 급번개를 신청한 한국인 여행 가족과 만나기 위해 비셰흐라드를 찾았다. 역시나 아빠랑 딸의 여행을 실천하고 있는 블로그 친구 이재용 씨 부녀, 우리보다 한 달 반 늦은 7월 말 출발해서 네팔, 조지아, 터키 등을 지나 프라하에 온 걸 알게 되어 한번 뵙자고 번개 신청을 했다. 육아 휴직하고 딸과 여행하는 아빠, 그 여정 중에 밤잠 쫓으며 온라인에 기록을 남기는 모습에 동료애를 느꼈던 터다.

길 위에서 커서 그런지 아들 같죠?

세월 금방일 거다. 이 씩씩한 아이가 깍쟁이 소녀가 되기까진 말이다.

7살 두 소녀와 2살 동생은 쑥스러운 듯 어색한 듯 그래도 오래간만에 말 통하는 친구를 만나 짧은 시간 동안 어울려 놀았다. 이재용 씨와 딸 서윤이는 이후로도 5개월을 더 여행하고 귀국했고, “육아휴직하고 딸과 세계여행 갑니다”란 책도 출간했다. 나도 둘째가 7살이 되면, 이재용-이서윤 부녀 콘셉트로 배낭 매고 세계여행을 가보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뭐 누가 알까? 우리 가족이 육아 휴직하고 이렇게 4개월간 동유럽여행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떠나올 줄은,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인생 어떻게 풀려갈지, 누구도 모르는 거죠.


저녁엔 아내와 큰아이가 '한여름 밤의 꿈'을 보기 위해 국립극장을 찾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이라 프라하 와서 부담 없이 예매했는데, 희극을 희극답게 웃으며 즐길 수 있게 만들어서 편하게 즐겼다.

a midsummer night's dream.... 제목이 마치 지난 우리 여행을 품고 있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지난날의 꿈처럼 아득하다 표현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다. 공연이 끝날 시각, 천둥번개 비바람이 심해서 극장 앞으로 마중 나갔다. 모녀는 극장 위 카페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카페 한편에는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큰아이는 그 배우들에게 공연 잘 봤다는 인사를 해야겠다며 다가서더니 "챠우~~"하며 공연을 즐긴 호감을 전한다. 배우들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한편 쑥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렇게 다가서고 싶은 게 그 마음이다. 난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처음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던 것도, 공연을 마친 분장실에 찾아간 것이 시작이었다. 거기서부터,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빠가 대학 3학년이 막 올라간 그 해 3월이었어.
친구가 추천하여, 우리 학교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던 거지.
교내의 한 작은 연극동아리에서 준비한 작품이었던 거야. 입장료가 천 원인가 이천 원하던. 
그 연극 공연에서 엄마를 처음 본거야.
엄마는 무대 위에 여주인공이었거든.
그날 난 그 공연을 보며 엄마의 연기에 숨이 딱 멎고 말았어.
그리곤 생각했지 '맙소사! 내 평생 저렇게 감동적인 연기를 하는 여잔 처음 보는군' 
아빠는 살아오며 연예인에게 사인 한 번 받아본 적 없었지만
그 연극이 끝나고 학교 앞 화원에서 장미꽃 한 송이를 사서 무대 뒤 분장실을 무작정 찾아갔지. 
그리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냈어.
분장실엔 공연을 한 배우들과 스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아빠는 분장을 한참 지우고 있던 엄마에게 찾아가 준비한 꽃을 건네며 말했어.
"공연 잘 봤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당황한 엄마는 "아, 예.. 예.." 하며 어리둥절해하며 인사를 받았고
주변의 시선에 급 창피해 진 아빠는 후다닥 분장실에서 도망 나왔어.
아빠 뒤로는 그 공연 팀원들이 "오오오~~" 하며 환호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던 것 같아.
그로부터 6개월 후, 아빠는 그 연극동아리에 가입했고,
또 그로부터 1년 후, 엄마와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10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하고, 함께 하게 되었지.
하지만 아빠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그때 창피하지만 미친 척하고 용기를 내 분장실로 찾아갔던 그 순간을, 그 설렘을, 그 떨림을 말이야.
그 순간이 없었으면 너희는 세상에 없었을 거야.
때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 볼 필요도 있어. 진짜 딱 20초만 창피해도 용기를 내는 거야. 그럼 장담하는데 멋진 일이 생길 거야
너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말이지

그렇게 인디언 소녀는 비 내린 프라하의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처음 동유럽에 도착한 다음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발레 공연 ‘지젤’을 본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인형극, 춤 공연, 음악공연, 거리의 버스킹 등 기회가 닿는 대로 관객이 될 기회를 선사했다. 길 위의 객석에서 스스로 무대 위로 오르고픈 욕심이 생긴 것이 아이들에게도 큰 수확이었다.

비 내린 프라하를 선뜻 걷기 어려웠다. 이제 곧 서울인데, 막판에 감기 걸릴 순 없지 않나, 그렇다고 마냥 숙소에만 있자니 이 모든 찰나의 시간이 아까웠다. 두텁게 입히고 유모차 커버를 씌우고 산책을 나섰다. 커버 입구가 답답한지 둘째는 목을 빼고 구경을 즐겼다. 비가 잠시 그치더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구태여 나온 우리에게 산책의 즐거움을 주려나 보다 했다. 찬바람에 코가 살짝 빨개졌는데도 유모차를 박차고 내리더니 신나게 걷는다. 저 씩씩함에 나는 또 다음 여행을 꿈꿨다. 너희 덕분에 떠날 수 있었는데, 이제 너희도 즐기는 모습이 흐뭇하기만 했다.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얼마나 빨리 끝나버리는가. 압도되지도 않고 허무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속죄 / 이언 매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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