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면 당연하듯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 그렇게 성장하고 때로는 다치며 어른이 되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골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갔고, 졸업 후에는 내가 배웠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며 첫 책을 썼다. 그리고 오래 만난 사람과 부부가 되었다. 그렇게 한 발자국씩 인생의 다음 단계를 밟았다.
28살에서 29살은 그다지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미혼의 28살과 기혼의 29살은 다른 사람에 가까웠다. 미혼의 28살은 집이 아닌 방에서 생활했고, 기혼의 29살은 방이 아닌 집이 필요했다. 챙겨야 하는 부모는 넷이 되었고 시누이와 조카까지 가족은 더 많아졌다. 사는 지역도 달라졌고 라이프 스타일과 돈을 대하는 관점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렇게 큰 변화를 겪었던 결혼이 삶의 변환점 정도라면 출산과 육아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세계를 뒤집어 버린다고 해야 할까. 발을 거꾸로 들고 먼지 하나 안 나올 때까지 이불 털듯 탈탈 터는? 아무튼 아이가 태어나면 변화나 성장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새 시대가 열린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다니.
누군가를 이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니.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정확하게는 아이를 임신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껏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뭐든 극단적이 되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최대치에서 울고 웃었다. 이걸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적당할까. 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이 깨닫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만 번의 여행보다 더 두렵우며 새롭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것도 아이를 딱 한 명 낳았을 때의 이야기다. 아이 둘은 고작 천 권의 책, 만 번의 여행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내 깜냥은 딱 둘이라서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신의 영역일 듯.)
배울만큼 배우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세상에 겪어볼 만한 일은 어느 정도 안 다 자만할 때쯤 하늘에서는 둘째를 보내주신다. 지금까지 내가 안다고 여긴 것들이 해변에 가득한 모래알 중 고작 한 주먹만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시려고. 키워보니 어린애들은 이렇더라. 육아란 이런 거다. 좋은 엄마는 이렇게 해야 한다. 겁 없이 단정 짓고 있을 때쯤 둘째는 엄마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우렁찬 울음소리로 정신을 깨운다.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미성숙한 철부지에 몸만 큰 어른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 네가 찾아왔구나! 그제야 겸허한 마음으로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들을 새로 배우며 다시 갓난쟁이를 키운다.
형제는 가장 멀리 떨어진 대륙의 양쪽 끝에서 각각 다른 종족을 한 명씩 데려와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와 둘째는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전혀 다르다.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어쩜 이렇게 다를까.' 입 밖으로 하루에 네다섯 번을 내뱉게 된다. 의학이나 과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분명 아이 하나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가진 어떤 유전자는 다음번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절대로 가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이미 한 명 키워봤는데 둘이라고 다를까. 내가 낳은 내 새끼니까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성격과 취향까지 어쩌다 조금이 아니라 아예, 몽땅, 전부, 모조리 다르니까.
우주는 밥과 반찬 국이 있어야 하는 k-어린이다. 빵은 간식이고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으며 과일은 전혀 먹지 않는다. 우주가 7살 때 파스타를 먹기 시작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아닌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할 수 있다고 남편과 만세를 불렀다. 하나는 반대로 밥이라고는 세 숟갈이 전부다. 밥 먹을래 빵 먹을래 물으면 백이면 백 빵을 택하고 젤리나 사탕을 달고 산다. 과일이라면 다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 정도 큰 것도 8할이 과일 덕분일 것이다. 우주를 키울 때는 '우리 아이가 밥을 안 먹어요.' 하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군것질 거리를 주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하나를 키우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종일 굶을 거라는 걸.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장난감 코너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보면 '저 애는 왜 저럴까. 어떻게 가르치면 저럴까.' 속으로 배부른 헛소리를 했었는데 하나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그냥 그런 애도 있다는 걸. 똑같이 키워도 그럴 애는 그런다는 걸.
자는 것은 또 어떤가 하면 우주는 신생아 때부터 잠이 없었다. 온종일 자는 게 일상인 갓난아기 때도 내 배 위에 엎드려서 겨우 한 시간 남짓 잘 뿐 방긋방긋 웃으며 모빌을 보며 놀았다.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으면 팔에 안고 흔들어줘야 20분 정도 잠깐 더 눈을 붙일 뿐이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혼자 두 시간 정도 놀다가 배가 고프다고 나를 깨울 정도로 부지런하다. 8살에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는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새벽 5시에 일어나 동트는 것을 보고 앉아있길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적이 있다. 반면에 하나는 유모차, 카시트, 아기 침대 어디서든 눕기만 하면 잠들었다. 시끄러운 카페나 마트의 소음도 문제 되지 않았다. 9시까지 유치원에 가야 하는 지금도 깨우지 않으면 점심 먹을 때쯤 일어나는 아이다. 덕분에 아기 때는 낮잠 잘 시간에 맞춰 유모차를 태우고 카페로 나가 두 시간은 편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성격은 말해 뭐하겠나.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처럼 눈만 마주치면 웃던 순둥이 우주와 매운맛 육아를 알려준 고집쟁이 하나는 육아 난이도가 천국과 지옥쯤 떨어져 있다.
아이의 성향만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두 아이에게 주는 사랑의 형태도 좀 다르다. 누구를 덜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전혀 다른 사랑이므로. 흔히 말하듯 하나의 마음이 절반으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마음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게 가능할 것이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비슷한 사랑의 감정이 늘어나거나 나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랑이라고는 연애와 만남을 반복하던 20대 시절의 경험밖에 없었는데 짐작이나 했겠나. 불변하는 하나의 진심이 운명의 상대를 만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옮겨가는 것인 줄만 알았지. 사랑이란 게 여러 개로 늘어날 수도 있다니. 종류나 모양이 달라질 수도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주와 하나를 향하는 내 사랑은 두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우주에게는 한 없이 유해지는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희생정신도 함께. 터무늬 없는 장난을 치는 아이의 볼을 꼬집어 주고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싶은 유쾌한 부분도 있다. 하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걸 대하는 아깝고 소중한 마음이 있다. 단짝 친구처럼 오래 함께하고 싶은 연대의 바람도. 매일 안아주어도 부족한 미안함과 뭘 해도 용서가 되는 무한한 애정도 있다. 그러니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과는 좀 다를 것이다. 굳이 신체기관에 비유하자면 심장이랑 뇌가 그나마 가까울까. 전혀 다른 종류에다 그 소중함의 우위를 가를 수 없으니까.
우주 하나를 옆구리에 꼭 끼고 사는 나에게 친구나 지인들은 자주 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한 명 키우다 둘 키우니 어떻던지.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 중인데 둘 낳으니 좋은지. 다들 아이가 둘이 되면 그 힘듬이 두 배가 아니고 여섯 배 라던데 정말 그렇게 힘든지 궁금해했다. 섣불리 다른 집 가족계획에 나서고 싶지 않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고민된다면 낳지 마세요."
너무 단호하게 얘기해서 의외라며 놀라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가 둘이라 좋다고 그렇게 자주 얘기했으면서 왜 자신에게는 낳지 말라고 하는지 괘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둘을 낳으니 좋다. 아들 딸이 하나씩 있으니 아들에게 서운할 때 딸에게 위안받고, 딸에게 상처받을 때 아들에게 의지한다. 아이가 하나라면 집에 혼자 두는 건 꿈도 못 꿀 텐데, 간식 차려주고 둘이 잠깐 놀고 있으라고 하면 집 앞 편의점이나 가까운 곳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올 시간 정도는 외출도 가능하다. 둘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까르르 목이 꺾어져라 웃고 있거나,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을 보면 문희정 인생 이 정도면 성공했다는 생각과 함께 더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마음까지 든다. 더없이 완벽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면만 있을까.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동생에게 해코지 한 번 한 적 없는 우주도 엄마를 빼앗겼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에 가는 빈뇨증 증상이 있었다. 장난감을 가져간 하나를 어쩌지는 못하고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며 동생은 낳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는 말을 했을 때는 나도 잠시 절망했다. 첫째만 힘든 게 아니다. 둘째는 태생적으로 온전히 엄마를 차지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 아무리 오빠보다 많이 놀아주고 매일 한 몸처럼 붙어 있어도 항상 엄마의 사랑에 목마르다. 그래서 눈치도 빠르고 욕심도 많다. 둘째는 무슨 짓을 하든 예쁘지만 첫째 아이 앨범에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진으로 기록된다.
세상에 장단점을 종이에 적어가며 양쪽의 숫자를 메겨 유리한 결정을 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닌 경우가 있다. 때로는 그냥 감으로 의지로 바람으로 선택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다. 나는 둘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장단점을 적는다면 첫째를 힘들게 하고, 임신과 출산의 위험을 또 한 번 감수해야 하고, 다시 5년간은 자유를 반납해야 하고,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조금 더 큰 차가 필요하고, 방 한 칸이 더 필요한데 과연 그런 선택을 이성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꼬수운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의 손가락을 킁킁거리며 젖을 물리고 싶고, 서로 의지가 되는 두 아이를 보고 싶고, 육아든 일이든 뼈가 부서져라 할 각오가 되어있고, 넷이 누워 비좁아진 패밀리 침대가 답답하긴 커녕 따뜻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낳은 것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소원이라면 낳아야지. 힘들걸 뻔히 아는데도 가겠다는 데 말릴 방법이 없지 않나.
둘째를 낳는 것은 누구의 선택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확고한 의지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변함없이 즐거울 것이다 단언했던 나조차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잘 안다. 알 것 같았고 충분히 각오했는데도 아이 둘을 키우는 건 역시나 고된 일이었다. 체력과 정신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한 번의 유산 이후 기다리던 둘째가 바라던 때에 찾아와도 이렇게 힘든데 뜻하지 않게 찾아온 아이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힘든 시기에 만난 아이라면, 아직 결정하지 못했는데 등 떠밀리듯 갖게 된 아이라면? 그렇다면 육아가 행복하지만은 않겠구나 생각했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남 얘기 같았던 산후 우울증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둘째를 낳을지 말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아직은 결정할 때가 아닌가 보다 기다려보자 한다. 오지랖을 더 부려서 확신이 없으면 오히려 피임을 열심히 하라고도 조언한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원한다는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더 강경하게 그게 둘째를 갖는 이유여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 편이다. 둘째에 대한 선택은 나를 최우선에 두고 해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우주를 낳고서 곧 너무 늦지 않게 둘째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는 묻지 않았다. 출산과 모유수유는 온전히 내 몫이고 주 양육자도 나였기 때문에 결정권은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남편이 우리 셋으로 충분하고 지금이 너무 좋아서 둘째는 바라지 않는다고 반대했다면 나도 재고했을지 모르지만, 경험상 둘째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아빠들은 다 육아 참여도가 높았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밤잠이 많은 아내를 대신해서 밤에는 자신이 아기를 보고 출근했다는 지인은 새벽에 아기가 울면 아내를 깨워 수유를 시키고 젖을 다 먹은 아기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트림시키고 다시 재우는 걸 신생아 시절 내내 했다고 한다. 낮에는 회사, 밤에는 아기와 밀착 케어하던 그분은 둘째 얘기를 꺼내면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사색이 된다.
남편을 생각하면 과연 저 사람이 아이 둘 아빠가 될 자격이 있을까 고민스러웠지만 나 스스로 아이와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남편이 여전히 서툴고 부족해도 기다려주기로. 그 속도가 더뎌서 끝내 엄마의 육아에 못 미치더라도 분노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그건 둘째를 키우는 내 몸과 마음의 부침을 상상하며 어느 정도 각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도 내가 좋아 낳은 것이니까 남편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내 상황을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육아나 살림을 도와줄 이모님을 부를 수 없는 형편이 아니었고,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낮았고, 친정이나 시댁에서 도움을 받고 있지 않았고, 가까이에 사는 친한 친구나 여자 형제도 없었기 때문에 둘째를 낳으면 내 삶이 이전보다 훨씬 더 고단해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이겨낼 만큼 아이가 너무 좋았다. 우주와 있는 것이 즐거웠다. 감사하게도 둘째가 찾아와 준다면 비로소 안온해진 내 일상과 그 고단함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육아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아이에게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주를 통해 얻은 지난 시간과 경험은 단순히 행복이라는 글자로 설명하기 부족한 그 무엇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남편을 미워하게 되었거나, 빨리 일로 돌아가고 싶어 조급한 사람들에게는 아이 하나와 '심플한 삶'을 사는 게 더 좋을 거라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복닥복닥 하고, 가끔은 많이 버겁고, 일은 더디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삶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가끔 좁아터진 집이 속상하고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낀다. 하나 때문에 자주 눈물을 흘리는 우주에게도 미안하다. 하지만 우주를 낳을 때와 마찬가지로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랐던 일이 아니니 적어도 다시 돌이키고 싶다거나 아이 하나일 때가 좋았다며 우울해지지는 않는다.
아이가 하나면 세계여행도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외동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내가 도전하지 못하는 일에 가볍게 뛰어들고(싱글과는 감히 비교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더 값진 것을 줄 때 나 역시 종종 둘째를 낳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지금보다 많은 일은 더 몰입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에게도 지금 내가 주고 있는 관심과 지원을 두 배는 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무릎에 앉아있는 하나의 머리칼이 코끝을 간질이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어여쁜 아이를 못 본다고 생각하면 팔에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