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끝없는 자기 증명
밤 12시 20분.
겨우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와서 노트북을 열었는데 남편도 깼는지 따라 나왔다.
"안 자?"
"브런치 글 올리려고."
멀뚱히 서서 나를 쳐다보던 남편이 묻는다.
"... 그거 쓰면 돈 받는 거야?"
단순한 궁금증 일 수도 있었다. 내가 요즘 새로 글을 올리고 있는 곳이라고 간단히 설명한 적은 있지만 남편은 잘 모르는 분야이므로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한 대가가 있는 건지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돈도 안 되는 거 한다고 이 시간까지 안 자는 거야? 그러고 내일 피곤하다고 할 거지.'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잠을 쫓아가면서,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하냐는 핀잔처럼 들렸다면 자격지심일까.
남편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개똥 같아진 기분을 어쩌지 못하고 얼음처럼 굳었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냥 블로그처럼 글 올리는 건데 이게 쌓여서 나중에 책으로 나올지 다른 곳에서 어떤 제안을 받을지 모른다고.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이왕 쓰는 거 올려보는 거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고 끝내 책으로도 만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노트북에만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마감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래 봤자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별일 아닌 듯 대답했다.
"아, 난 또 웹툰처럼 올리면 돈을 주는 건가 했지."
설명을 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낮에 애들 자면 일해야 한다고 온갖 바쁜 척을 다 했는데 사실은 그게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이라는 걸 알고 못마땅해 저러나. 내가 하는 일 대부분이 바로 돈으로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무용한 시간과 무수한 삽질들이 쌓여서 언젠가 돈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럴수록 더 치사하게 느껴졌다. 끝까지 심정을 알 수 없는 뒤통수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거실에 덩그러니 남은 나는 맥주 한 캔을 따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어느 주말 낮.
우주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제 혼자 나가 티브이를 보며 놀아서 하나가 깨는 시간이 곧 내 기상시간이었다. 부지런한 우주가 깨고 두 시간쯤 지나서 눈을 뜬 하나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배고팠다는 밥돌이 우주에게는 곧바로 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고, 하나는 과일이랑 빵을 차려주고 나도 커피 한 잔 내려서 옆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온라인 북페어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사이트 오픈 전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고 3시까지 알려줘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으니 시간은 많이 남아있지만 언제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할지 모르니 가능할 때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하나 둘 식탁의자에 앉은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이렇게 불편하게 있을 거면 다 같이 소파로 옮기자."
크지 않은 3인용 소파에 꽉 들어차게 나란히 앉았다. 나는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주말이니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좀 편히 일하면 좋겠지만 뭘 하든 살을 맞대고 있는 게 좋은 우리는 이렇게 꼭 붙어서 각자 할 일을 한다. 조금 있다 빼꼼 문을 열고 남편이 나왔다.
"일어났어? 오늘 짐 정리하기로 한 거 알지? 할 일 엄청 많아."
내 모닝 인사가 너무 단도직입적이었는지 남편은 곧바로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대청소를 하기로 했던 주말에 혼자 느긋하게 자다 일어난 사람에게 간 밤에 잘 잤냐고 나긋한 인사가 나올 리 없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지금까지 늦잠 자다 나온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말문이 막히다 못해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여전히 남편의 눈에는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내가 '노는 사람'이라니.
"여보. 당신 자고 있는 동안 애들 밥 해 먹이고 이제 일하려고 노트북 좀 켰어. 오늘 3시까지 해줘야 하는 게 있어서. 내가 지금 일하고 있지 놀고 있어?"
물론 속마음은 '너 처 자는 동안 나는 애들 케어에 일까지 하고 있는데 박수를 쳐주질 못할망정 일어나자마자 웬 개소리야. 나 일하는 중이라고!'였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걸 꼭 말로 해야 알다니 어이가 없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10년을 한 집에 산 남편에게조차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이 '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아주 진절머리가 나도록.
글이 아니고 그림이었다면 저 사람 뭐 하고 있구나 보이기라도 하지. 음악이었다면 작업하는 내내 띵가띵가 소리라도 나지. 글을 쓰는 건 남이 보기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놀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 같은 모양새일 때가 많다. 내가 아무리 오래 매달리고 열심히 공을 들여도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그럴듯한 형체가 없다. 그런 건 아주 오래 지나야 나온다.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엉켜있던 문장들이 계약서가 되거나 책이든 잡지든 실질적인 형태를 띠면 그제야 내가 매달린 지난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일로써 인정받는 게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내 직업의 한계다.
핸드폰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도 핸드폰이나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고 엄마의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상당히 자주 설명해야 했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애들 앞에서 핸드폰 좀 그만 들여다 보라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인스타그램에 책을 소개하는 피드를 올리거나 수업에 대한 답변을 달거나 메일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상기시켜 줘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좀 알아주면 좋으련만.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멍하니 공상을 하거나, 영화나 전시를 보거나, 낙서를 끄적이는 시간도 필요한데 차마 그것까지는 요구하지 못하고 무언가 목적이 있는 글을 쓰는 시간만이라도 이해받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참 어려웠다. 집 안에서도 그런데 밖에서는 오죽하겠나.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과 편한 옷차림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지만 집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음을 주변에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하나가 세 살이 되고 같은 아파트 단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사람의 감은 어쩜 이렇게 정확한지 담임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느낀 쎄한 기분은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결국 한 달 반 만에 CCTV를 확인하고서 어린이 집을 그만두는 결말을 맞았다. 어린이 집을 그만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하원 시간 때문이었다.
오티 때 담임선생님께 내가 출근은 하지 않으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하원 시간은 한 달 내내 등원 후 한 시간이었다. 그것마저도 처음 2주는 등원 후 30분이었다. 집에 다시 되돌아 가면 바로 나와야 할 시간이라 근처 아파트를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다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다시 데리고 집으로 오는 걸 반복했다. 처음 일주일은 적응하는 기간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2주가 넘도록 30분이라는 게 이상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니 그럼 한 시간 뒤에 오라는 말만 들었다. 단순히 시간을 늘려달라는 뜻이 아니었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기다렸다. 그러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우연히 놀이터에서 같은 반 아이 엄마를 만났는데. 벌써 아이가 점심을 먹고 온다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는 낮잠도 잘 거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같은 스케줄이 아니었다니 깜짝 놀랐다. 내 아이만 일찍 하원하는 거라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하나가 혼자서 힘들어하고 있었던 걸까 걱정이 되어 다음 날 다시 선생님께 하원 시간에 대해 여쭤봤더니 어린이집의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내게 어머니가 집에 계시니까 일찍 보낸 거라는 말을 하셨다. 한참 돌려서 말했지만 결론은 그거였다. 새로 등원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3월에는 선생님들 손이 부족하니 출근하지 않고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들은 되도록 일찍 보냈다는 것이다. 웃으며 별일 아닌 듯 얘기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맥이 빠졌다.
출근은 하지 않지만 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냐. 난 그동안 하나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해서 일찍 온다고 생각해서 걱정하고 있었다, 말씀드리니 그럼 바로 내일부터 점심을 먹고 그다음 날에는 낮잠을 자게 하겠단다. 진심으로 화가 났다. 당장 일을 못하겠으니 아이를 더 오래 맡아주길 원한 게 아니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한 달 동안 아이를 좀 일찍 하원 시켜도 되겠냐 양해를 구했다면 나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지금껏 엄마의 근무지가 어디냐에 상관없이 아이가 원에 적응하는 속도에 맞춰 하원 시간이 정해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적어도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일찍 집에 보내야 할 사정이 있었다면 나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야 했다. 선생님께는 제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서 갑자기 시간을 늘리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하나 혼자 적응을 못해서 일찍 끝나는 게 아니라면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다만 내가 출근은 하지 않지만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분명히 했다. 집 안과 밖에서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긴 호흡으로 일할 수 없다는 갈증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내 일을 방해하는 상대가 내 아이들이고, 떨어뜨려 놓고 육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것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더 어릴 때 어린이 집에 보냈을 수도, 아이를 돌봐줄 분을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꼭 붙어 지내는 건 어느 정도 내 욕심이었다. 일도 놓고 싶지 않으면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 역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 그러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였다.
우주가 태어나고서부터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글을 썼다. 하루에 열 번 가까이 돌아오는 수유 시간에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 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메모장에 토막글을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낮잠을 자면 조금 더 길게 일했고, 아이가 잠든 밤에는 잠시 홀가분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물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하나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 새벽 작업을 하는 날은 많이 줄었다. 대신 친구가 좋아진 우주는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두 녀석이 함께 노느라 잠시 엄마를 찾지 않을 때도 있었다. 정 바쁠 때는 머리맡에 노트북을 두고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 두 아이를 옆에 끼고 누워서 배 위에 노트북을 놓고 쓸 때도 있었다. 내가 일어나면 귀신같이 깨서 우는 하나 덕분에 그게 내 나름의 미라클 모닝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짠하고 억척같아 보여도 어떻게든 일은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는 틈틈이, 아이가 깨어있을 때도 조각조각 내 시간을 만드는 법을 터득해가면서 일과 육아의 줄다리기에 점점 능숙해졌다. 아이 둘과 집에 있으면서 내 일을 할 수 있는 서른 가지 방법 정도는 너끈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쳐갔다. 일에 대한 성과나 벅찬 육아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억지로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 시간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하고자 하는 것이 '쉼'이나 '취미생활'이 아닌 '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대체 언제까지 출근하지 않는 나를 일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증명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