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희정 Jul 25. 2024

아이도 남편도 없이 혼자 유럽여행

사람들이 당신 보고 대단하데

내가 SNS에 남편 흉을 대단히 자주 올리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내 인친들은 대체로 김비서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내가 김비서라는 역할에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서사를 만들어 준 것도 아닌데 악역치고 꽤 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봐 준다.


우리를 오래 지켜본 인친들은 제가 대신 화내줄게요. 김비서님 너무하셨다. 어쩜 그런 건 우리 집 남의 편이랑 똑같을까요. 하다가도 그래도를 덧붙인다. ‘그래도’ 대신 ‘역시나’로 설명할 수 있는 남편이었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래도가 붙는 것 마저 의아하다. (그래도라니요 인친님들. 왜 이렇게 좋은 점수를 주는 건데요. 나 이혼할까 봐 그래요?)



북페어에 참가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수업이 있으면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가는데, 내가 행사를 하고 있는 시간에 김비서는 아이들과 여행을 즐긴다. 처음에는 그 지역 갈 곳을 찾아 열심히 링크를 보내주던 조바심도 조금 내려놓고 이제는 온전히 아이들을 맡기도 나는 내 일만 한다.

물론 그러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북토크 도중 김비서의 으름장에도 그칠 줄 모르고 눈물 콧물 쏟고 있는 둘째를 품에 안고 이야기한 적도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 페어에 참여하느라 나 혼자 나쁘고 김비서는 딸려온 혹처럼 심심할 정도로 평안하게 핸드폰을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럴 거면 뭐 하러’가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이제야 김비서가 하는 말이 당신 일 할 때 이제 애들이랑 여행하는 게 좋단다. 애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다고.  

“이제 와서? 지금에서야?”

이 말은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김비서 칭찬이다. 미용실 원장님, 필라테스 선생님, 동네 엄마들까지 모두들 내가 일주일 동안 혼자 유럽에 간다니까 남편 얘기부터 꺼낸다. 남편의 휴가기간 혼자 독박육아를 할 예정이라는 것까지 알면 더욱 추켜세웠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말하면 이번에도 역시 그래도가 따라붙었다. 그래도 혼자 다녀오라고 보내주는 게 어디예요. 그래도 아빠 혼자 애들을 일주일 동안 보는 거잖아요. 그래도 휴가를 통째로 쓰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육아 참여도가 현저하게 낮은 김비서가 내 부재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은 김비서 특유의 될 대로 돼라 정신 덕분이다. 첫째가 이게 겨우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게 되었을 때 반나절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직 아기가 어려 서둘러 돌아왔는데 그날 우주와 외출했다는 김비서 이야기에 기가 막혔다. 갓난아기와 잠깐 외출하더라도 챙겨야 하는 게 수십 개인데 호기롭게 아기띠만 하고 집 앞 카페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아이 과자나 분유 같은 것을 챙겼을 리 만무하니 아마 커피 한 잔 제대로 못 마셨겠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 김비서가 아니지. 손수건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질질 흘리는 침은 어떻게 휴지로 닦아 보았지만, 기저귀를 챙겨가지 않아 얼마 안 있어 똥폭탄을 맞고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기저귀와 손수건 없이 외출이라니요. 시험장에 컴퓨터용 사인펜 안 가져갈 인간아. 전쟁에 총칼 안 가져갈 사람아.


그 후로도 김비서는 언제든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몇 번 호된 경험을 겪고 나면 교훈을 얻고 철저히 준비하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 보내든 달라져야 할 텐데 놀라우리만치 그대로였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아이들은 실내복을 입고 외출했고, 외출복 앞뒤가 바뀌어있었고, 기침을 하거나 열이 났다. 가끔 둘째가 울면 내게 전화를 했는데 그럴 때면 내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아이들을 잠시 떠날 결심만 선다면 언제는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조용한 전화기 너머 우리 집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분명 아이들끼리 놀라고 하고 나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낮잠을 자거나, 애들만 남겨놓고 집 비우지 말리는데도 배송비를 아끼겠다고 순댓국을 포장하러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집을 비우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모든 걸 쏟아붓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고무줄을 튕기듯 뛰쳐나간다. 아주 잠깐이라도 혼자 숨을 고르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게 내가 찾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내가 집에 없는 사이 김비서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살기 위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비율이 50대 50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각자 두 자릿수였다면 가끔씩 이렇게 100%의 시간을 떠맡기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 꺼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멀리 일주일씩이나 떠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97%의 엄마로 살면서 김비서의 3%를 차곡차곡 쌓아 100%로 돌려주는 것일 지도. 어쩌면 우리 부부는 이렇게 균형을 맞춰가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