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동생과 내가 잠든 밤,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다. 주로 말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화제의 대부분은 그날 밖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는데 주로 회사 사람들과 일에 대한 것이라 나는 들어도 잘 몰랐다. 하지만 잠든 척 누워 두 분의 대화를 엿들으려 했을 때의 분위기만큼은 생생하다.
아빠는 얼버무리는 것 없이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직함을 얘기했고 그동안 아빠의 주변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가 쌓인 엄마는 척하면 척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빠는 12시간 전에 있었던 일도 5분 전처럼 생생하게 말했다. 눈앞에 있는 엄마가 그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때의 대화를 실감 나게 재현했다. 때로는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아빠 특유의 과장된 표정을 더해진 안방은 매일 밤 두 사람만의 무대로 변했다.
그게 무슨 이야기였든 간에 새벽이 되도록 끊이지 않는 부모의 대화는 자식 입장에서 무척 흐뭇한 풍경이었다. 잠결에 얼핏 엄마와 아빠의 흥미진진한 대화 소리를 듣다 다시 까무룩 잠들면 무척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는 잠들기 전에 ‘엄마 아빠는 맨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부부라는 건 매일 만나도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28살에 오래 연애한 남자 친구가 결혼 허락을 받으러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는 딱 한 가지를 당부했다. ‘밖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희정이에게 해줄 것.’ 어릴 적 딸이 보기 좋았던 것은 엄마에게도 소중한 가치였던 것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까지 부모님의 사이가 그때의 열정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마치 두 분 사이에 존재했던 말의 총량을 거의 소진한 것처럼 보인다.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주로 ‘그래서 결론이 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라며 사설을 빼고 핵심만 얘기해 주길 바라고, 종종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다며 한껏 치켜뜬 눈으로 대화를 끊는다. 요즘은 뭐 거의 아빠가 숨만 쉬어도 불만인 것처럼 매사에 꼬투리를 잡는다.
남동생은 그런 엄마를 보고 너무 한다며 가장의 권위 같은 것은 없냐, 볼멘소리를 하지만 모르는 소리. 전후 사정을 다 아는 나는 아빠가 납작 엎드려 엄마가 그저 함께 살아주는 것에 감사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우리 집이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은 살가움보다는 현명함에 가까운 다정함이었고 아빠 역시 날 사랑했겠지만, 한때는 내가 받고 싶은 것 이상으로 과했고 일정 기간 돌아서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엄마 아빠의 한때 좋았던 저녁 대화를 제외하고는 넷이 모이면 대체로 차분했다. 말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냉랭함과 정답다고 느낄 수다 사이 어디쯤 있는 가족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가의 대화 패턴에 깜짝 놀랐었다. 잠시도 사운드가 비지 않았다. 특정한 주제가 있다기보다 모두 그저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과일 좀 먹어봐라.’로 서두가 열리면 너무 맛있다부터 어디에서 샀냐, 누가 줬다, 그 아줌마는 요즘 잘 있냐, 아들이 이번에 취직했다더라,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주차하려고 하면 저쪽 자리가 좋다, 저기 자리가 있는데 왜 여기다 하냐, 주차를 잘하네 못하네, 주말에는 그러니까 일찍 나오자고 했지 등등 아무도 입을 쉬지 않았다. 그냥 과일 좀 꺼낸 것뿐인데. 단순히 주차 좀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할 말이 많다고?
며느리로서는 편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무언가 하지 않았어도 되니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중간중간 하하 웃으며 대답만 잘하면 되었다. 쓸데없는 말들이 만들어 주는 포근함은 분명 존재하니까.
별로 말이 없는 우리 집에서 더 말이 없던 나와, 말이 많은 집안에서 가장 말이 없던 남편이 만나 결혼해서 그런지 우리 둘은 별로 대화가 없다. 가끔 월차를 쓴 남편과 둘이 카페에 가도 나는 책을 보고 남편은 닌텐도를 하며 나란히 앉아 있을 뿐이다. 간간이 내가 커피 맛있다. 여기 사람 많구나. 식탁에 꽃 봐봐 너무 예쁘지. 물으면 그렇다 대답하는 정도. 딱히 나도 더 대단한 반응으로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서 서운하지는 않다.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사이의 익숙한 침묵을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 집이 떠들썩해지는 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뿐이다. 양가 어른들의 수다 유전자는 한 대를 걸러 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작은 아이와 편의점에 가면 사장님이 계산을 해주시며 ‘애가 말을 어쩜 이렇게 잘해요. 엄마가 심심할 일이 없겠다.’ 하시는데. 큰 아이와 카페를 가면 또 ‘엄마랑 애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요. 너무 좋겠다.’ 하신다. ‘심심하긴요. 즐겁긴요. 귀에서 피가 날 정도인데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으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헤헤 웃어버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수다가 아닌 대화가 소중해진다. 막역한 사이의 허물없음이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내 친구들이 이 글을 본다면 분명 서운해하겠지만) 대화 사이에 서로를 살피는 배려의 틈이 있었으면 한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게 필요하냐며 서운할지라도 친해서 익숙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관계는 싫다. 그러다 깨진 관계는 내 젊음의 추억을 함께 앗아간다는 점에서 더 끔찍하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모든 게 불만인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꿈을 꾸고, 노년을 기대하고, 불행 속에서 다행을 발견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딱히 사람을 가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당연한 말을 쑥스러워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내가 일하러 나가 있었던 주말. 아이들과 거실 정리를 해 놓은 남편에게 나의 피곤은 생각하지 않고 당신 오늘 피곤했겠다. 정말 고생 많았다며 ’속마음을 굳이 겉으로 꺼낸다.
아프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꼭 괜찮아질 거예요.
흔하게 하는 인사말에 나만 아는 진심을 담는다. 입 밖으로 나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성심으로 뱉는다. 말이든 글이든 서로가 나누는 대화가 곧 내 세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