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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Nov 19. 2021

Hello, stranger?


대학로 연극에 초대 받은 날. 조금 일찍 발걸음을 해 가보고 싶었던 낙산공원 근처의 카페에 들렀다.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발리 느낌이 나던 곳.

좋아하는 대학로로 향하는 건 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지만, 발리 풍의 카페에 머무는 건 열면 열수록 계속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여행 속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낙산공원으로 향하던 관광객들이 종종 카페에 들렀다.

그때, 그 관광객들 사이로 누가 봐도 이 동네의 주민인 듯한 이가 커피를 사러 왔는데, 이 모습이 내겐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대학로가 누군가의 주거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방러인 나처럼 잠깐 1-2년 서울의 머물 곳을 자발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 일평생 나고 자라온 곳이 혜화동일 수가 있다니. 그들은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던 나의 고향.

내 고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한 적 있을 거라 확신하는 관광지로 이름난 도시이지만, 내게 이 도시는 주민등록상의 주소지, 익숙하게 걷는 길이 전부인 관심 없는 일상의 배경일뿐이었다.

그리고 몇 개의 큰 도시를 제외한 지방은 보통 도시 가운데에 시내라 불리는 중심가가 있고 그곳에 모든 놀거리가 집중되어 있는데, 내 고향은 시내에 한두 시간만 나가 있어도 동일인을 세 번은 마주칠 만큼 권역이 좁았다. 그래서 불편했고, 나로선 벗어나고만 싶던 곳.

반면 서울은 어떤가. 한 동네를 다 돌아보는 게 마치 고향 전체를 돌아보는 것처럼 구석구석 볼 것 많고 갈 곳이 넘쳐난다. 언제나 낯선 도시. 그래서 내게 서울은 매일 설렐 수 있는 도시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피어오르는 의문. 이 의문은 이석원 작가가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에서 쏘아 올린 궁금증이었는데, 서머싯 몸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편안한 곳이 고향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떠나갔던 곳과 살고 있는 곳 중 어디에서 더 이방인일까.

한층 더 복잡해진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공연장으로 향했다. 카페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대학로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누비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깨달음 하나.

얼마 전 나는 마장동 길 위에서 서울의 이방인으로 살아감을 외로워했었지만, 이방인, 즉 여행자로서만 볼 수 있는 시각과 느낄 수 있는 호기심은 이 땅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영화 <클로저>에서 앨리스의 명대사였던 “Hello, stranger?”처럼, 낯선 시각은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트리거가 된다.

늘 서울에서 살아가기를 꿈꿨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며, 어떤 날, 어떤 길에서든 여행자로 살아가야겠다 다짐했다.

내가 걸어가는 모든 땅을 사랑하고 철저한 이방인이 될 것. 이것이 일상을 여행처럼 지낼 수 있는, 결국 나의 모든 일상을 사랑할 수 있는 마법의 로직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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