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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 여경 Sep 11. 2021

정규직이 될 자신이 없어요

공무원 퇴사하고 공기업에 도전한 이유 #3


퇴사하고 나서 길이 엄청  풀려 방황 없이   되었다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접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행운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고민 많고 방황 투성이 내 삶을

나는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내가  딛는 곳에

낙원 대신 '작은 정원들을 만들며 

한발한발 걸어가보리라.


내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 치얼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남편이 결혼 1년 만에 백수가 되었다

#2 나는 남편이 집에서 놀았으면 좋겠어

#3 정규직이 될 자신이 없어요



                                 

"내가 벌게. 좋아하는 일 반드시 전업으로 할 필요 없어. 다시 직장 구할 거야.

자기 쉴 동안 내가 돈 벌게."               



남편에게 큰소리는 쳐놨지만 글쎄, 지금 이 시국에 내가 이 말을 책임질 정도로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정말 이대로,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올 스탑 하고 새로 취업 준비 다시 시작해도 나중에 후회 안 할 텐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유형은 말만 그럴싸하게 던져놓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될 순 없었다.


나는 움직여야 했다.     



남편 앞에선 자신감 넘치게 소리 높여 외쳤지만 사실 나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은 우리 부부였기에 나는 노력해보기로 했다.


    

          

..     

..          



[죄송합니다. 이번 기회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그리고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콜센터 형태의 계약직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콜센터에서 일한 경력도 없고 관련 자격증도 없었으며 상담 일도 해본  없다. 서류부터 막혀 면접 기회를 받지 못했다.  내가 콜센터에서 일해보려 했던 이유는 그냥 당장에 발견한 공고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모 기업 협력사업을 위해 뽑는 공무직.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음, 일단 그 시기 공고 올라온 곳은 이곳저곳 넣어봤던 거 같다. 쉽게 붙을 거라 예상한 건 아니지만 계속 떨어지니 못내 서글퍼졌다.

(시간이 지나 어디에 넣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걸 보면 그때 아예 일찌감치 떨어진 게 잘된 거 같기도 하다.)





“아이코 잘됐네 잘됐어. 이렇게 계속 서류에서 떨어지면 힘들게 면접 준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점점 머리가 멍해졌다.

         

대학 졸업할 때쯤 보통 겪는다는 불합격 메일들을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연타로 맞기 시작했다.  홀로 정신승리를 하며  홀로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남편. 이 모든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있잖아, 왜 정규직 원서는 안 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속사포 랩을 시전 했다.                         




“자기야 잘 들어 봐. 정규직 들어가려면 서류가 문제가 아니라 필기시험도 봐야 하고 면접도 엄청 빡 세. 아니 그전에 20대 스펙 짱짱한 애들 놔두고 거기서 나를 써 줄 이유가 없잖아. 서류부터 안 될 게 뻔하다고.”        


       

“안 해봤잖아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        

       


“아이고. 세상에는 꼭 해보지 않아도 아는 일들이 있는 거야.”               





반은 진심, 반은 거짓이었다.


그 속에는 더욱 크게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나란 인간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이미 한 번 나왔다.


물론 붙을 자신도 없지만 붙더라도 내가 과연  직장에서 계속 다닐  있을까. 나는 정년보장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공무원을 관두면서 이미 알았는데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겪은  차례의 경험만으로

앞으로도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직장을 다녀야  이유와 명분이 분명하다면,  버텨낼 수도 있는  아닐까.


이후 남편은 다행히(?) 한창 폐업 준비 때문에 분주했던 지라, 이후에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기에 더는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머 사업 시작하신다고요? 좋아요 자 시작!
어머 이제 폐업하신다고요?
자 폐업하셨으니 이제 여기 안 오셔도 됩니다. 자 사장님도 직원들도 모두 해산!!




     

회사 사직서처럼 사업도 이렇게 말이나 문서 하나로 끝을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폐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 온갖 머리 아픈 일들이 펼쳐진다.


수많은 금전적인 것들과 관계적인 것들이 얽혀 있었는데 이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편이 사채를 쓰거나 엄청난 빚을 끌어다   아닌데도  정도인데, 큰 대출을 받아 사업을  분들은 얼마나 마음과 몸이 고될까.


이후에도 한동안 남편은 여전히 정신없이 바빴다.      





한편, 나는 당시 그냥 그 시기에 공고가 뜬 자리들에 어디든 원서를 넣어보았다.


남편이 예상한 대로 공공기관 정규직이나 사기업은 아예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와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에 상관없이 무작정 공고가 뜨면 원서를 썼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침, 기회가 왔다.


육아휴직 대체자를 주민센터에서 1년만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1년이라면 남편이 현재의 상태를 정리하고 코로나로 사회가 멈춰있는동안 잘 버티며

앞으로의 내 인생 계획을 재점검하기에 나쁘지 않은 기간 같았다.

     

조건은 공무원 경력이 있던 사람! 이것이야말로 나를 찾는 것이 아닌가.

     

이전에 주민센터에서 일해 본 경험도 있기에 면접을 보게 된다면 답변도 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나는 열심히 서류를 작성했고 서류를 내기 위해 마감일 전날


담당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내가 놓친 한 가지를 알게 된다.      





“혹시 퇴사 일이 언제세요? 3년...... 넘으셨네요?”     



안타깝게도 (아니 실은 내가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거니 안타깝지도 않지만)


그 자리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공무원 퇴사 ‘2년 이내’의 사람이었다.     


당구장 표시로 작게 적혀있었다는 변명이 이럴 때 통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혼자 꿈에 부풀었던 지라 실망은 너무 컸다.


이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 이후에 구청 행정지원과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는데 그건 어떻게 인정 안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상대방은 최대한 친절한 공무원 특유의 민원인을 대하는 웃음으로


죄송합니다 안타깝네요,라고 말했지만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장난하세요?”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위기가 크게 느껴질수록 급하게 굴면 탈이 난다고 남편에게


위로 아닌 조언을 건넸으면서,


나는 조급하다는 이유로 빤히 적혀 있는 공고문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다니.          




그제야 나의 현실을 더욱 정확히 알았다.      


더 이상 ‘한때는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기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이전에 내가 공무원이었다는 믿는 구석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구한 일자리들에 공무원 경력이 메리트가 되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거기에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정말 취업을 할 생각이라면 똑바로 정신무장을 하고!


지금 내가 가진 스펙이 무엇인지 강약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하고


정확히 정보들을 알아보았어야 했다.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둘러봤어야 했다.


물론 현명한 사람들이야 이것을 빠르게 인정하고 다음 스텝을 밟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취업 준비와는 정말 상관없는 작가와 강연자로서의 꾸준한 경력을 꿈꾸고 준비하던 사람이었기에, 결혼  갑자기 깨져버린 많은 계획들 앞에서,



막연하게 현실과 지금 내 상태와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


.....




그맘때쯤 결혼 이후 이사를 가면서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고


나는 자세한 상황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은 칼퇴했다며 저녁 메뉴 뭐해 먹을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막 나온 찰나.




“있잖아, 왜 정규직 원서는 안 내?”                         


..


..



왜였을까, 그때 갑자기 남편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인생 선택지에 전혀 없던 공기업이라는 곳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동생은 인턴생활을 거친 


다른 공기업에 6년째 근무하고 있었고,


내가 프리랜서로의 길을 걷겠다 하며 


삶의 노선이 달라져


그녀의 직장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궁금해할 일은 없었기에 그동안 회사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동생 역시 3,4년 차가 되던 때 회사생활에 고비가 왔고 내게 '언니처럼 퇴사를 하면


어떨까'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직 공부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안 난다며 잠깐 쉬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직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전문직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상의를 해왔다.


그곳이 첫 직장이었기에 으레 할 수 있을 고민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는 당시 막 들어갔던 중소기업에서의 뼈아픈 경험들을 이야기해주며(2편 ‘공무원 퇴사 후 겪은 중소기업의 현실’ 참조)


조금 느리더라도 다니면서 준비할 것을 권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어느 정도 윤곽이 구체적으로 잡히면 다시 생각해봐도 좋지 않겠냐고.








"언니... 언니는 지금 행복해?"





유독 퇴사 직후에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난 그럴 때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복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인 지라,


어떤 날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침에 눈뜨는 것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절에는 때로 아침에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으니까. 지금 정도면 힘든 일도 많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 괜찮은 인생 아닌가.



"좋겠다. 행복해서. 알았어 언니. 그럼 나도 좀 더 고민해볼게."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는 당시 자신을 괴롭히던 업무 쪽에 나름 베테랑이 되어


새로 오는 직원들이 그 업무 관련해서는 자신에게 믿고 질문을 할 정도로,


일하는 게 편해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맡아야 했기에 그저 매일이 지나기를 바라며 버텼을 뿐이라며.


그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상사도 퇴직을 해 자연스럽게 쿨한 이별을 했고


돌아보니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 사이 회사 근처로 이사도 해서 출퇴근도 도보로 다니며 편해졌다.


시간은 참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마음을 치유해주고


어려움을 편안함으로 바꿔주기도 하는구나.


동생은 시간이 흐르고, 내게 자신을 그때 말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래 녀석아. 이제는 네가 내게 도움을 줄 차례야.




나는 물었다. 삼십 대에 뒤늦게 신규로 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직장 분위기는 어떤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등.      


추후 이직을 한 후에 살펴보니 삼십 대는 물론 사십 대에 이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동안은 관심이 없었기에 물을 일이 없었던 질문이었다.      


동생은 갑자기 취준생들이 꺼낼 법한 질문을 하는 내가 의아했는지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언니 친구 이직한대?”라고 스치듯 말하긴 했으나,     


미적지근한 내 반응을 보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간단하게 답을 해주었다.



      


“삼십 대 신입 많지. 요즘은 삼십 대들 이 다른 데서 경력 쌓고 오는 경우도 많다던데.

 늦은 나이 절대 아닐 거 같은데?”  


"아 진짜? 붙기 엄청 힘들지? 인턴 경험도 없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글쎄 인턴 하면 좋긴 하지. 당연히 어디 준비하든 고생할 거고. 근데 시기가 좀 별로지 않아?



응? 시기가 별로라니. 왜?



"지금 코로나라 신입 많이 안 뽑잖아...... 게다가 공채 시험도 이제 점점 줄이는 추세고.

 우리 쪽도 심각하던데. 언니..... 뉴스 안 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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