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사하고 다시 공기업 도전한 이유 #1
공무원을 퇴사하면서 나는 비혼 주의를 선언했다.
그럴싸한 네 글자이지만 내겐 일종의 방패 막이었다.
퇴사할 당시 인사 부서에서 나를 설득하고자 해 주신 말은 “결혼 안 할 거야? 가정을 갖고 나면 관둔 거 분명 후회해.”였다. 선배들도 비슷한 말을 해주셨다. 나도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임 질 가정이 있다는 무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새로운 가족’ 때문에 지금의 나를 희생하고 싶진 않았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택했으면서,
현재의 나를 ‘정년’까지 희생하고 싶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겠다니.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비혼 주의를 선언했다. 나는 일단 나만 책임지면 된다. 나는 자유롭게 살 거다.
고로 나랑 살게 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일은 만들지 않겠다.
***
그런 나에게 남편이 생겼다.
썸남도 아니고 남자 친구도 아니고 자그마치 남. 편.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면 이제 나는 평생 모르고 살아왔던 낯선 이와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다.
그땐 그 사람이 앞으로의 내 삶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줄 몰랐다.
일단 평범한 사람인 내가 나 아닌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늘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나의 미래만 고민하며 살던 나에게 가정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생기게 될 줄 몰랐다.
물론 그 사람이 나랑 결혼한 지 1년 만에 백수가 되어버릴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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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남편이 집에서 놀았으면 좋겠어
#3 정규직이 될 자신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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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10년 넘게 일했던 직장을 잃었다.
남편은 자영업자였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냥 일반 직장인들만큼 아끼고 살면 부족함은 없는 신혼 2년 차.
내가 한참 공무원 퇴사 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즐겁게 살던 당시 소개팅으로 만난 인연.
소개팅 전 착오가 있어(?) 나를 공무원이라고 알고 나왔다던 그의 말에 ‘그럼 그렇지’라며
처음부터 그 이상의 인연을 기대하지 않았던 나.
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편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놀랍게도 퇴사한 후의 내 눈물의 고생 담을 듣고 ‘이 여자와는 꼭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독특한 사람.
이후 속전속결로 결혼까지 진행하게 되어 지금 내 옆에서 잠자고 밥 먹고 숨 쉬는 남자.
그게 지금의 내 남편이다.
그는 연애 때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현재 업종이 앞으로 5년, 길면 10년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제2의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이 퍽 계획성 있게 들렸지만
나만큼이나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던 그도
5년은커녕 당장 1년 후 코로나가 올 줄은
예상 못했고
내 남편은 예상보다 일찍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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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때 나는 남편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자신의 말의 무게를 알기에 말을 아끼면서 늘 글로 미리 하고자 하는 말을 정리하는 습관도 좋았다.
그는 결혼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연애 때 예상했던 모습과 비슷했다.
우리 둘 다 연애 때보다
서로가 더 게으른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긴 했지만,
천만 다행히도(?) 기본적인 것들은
연애 시절 본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세상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특히 코로나는 우리가
차근차근 준비하던 미래 계획을
너무 빠르게 부서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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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동안 그와 내가 각자 저금해 온 돈과 앞으로의 생활비를 저울질해보았고
10년 넘게 계속 자영업을 해온 남편이, 지금 갑자기 좋은 직장에 바로 취업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직장 취직을 하기 위해 새로 따야 하는 자격증이며 스펙이며 취업 시험 준비까지.
그렇다고 지금 다시 다른 업종에 뛰어드는 시도를 하는 건
불구덩이에 맨몸으로 들어가 돈을 버리겠다는 의미.
그저 낙관적으로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
우리가 너무 현실에 안주했나 라는 위기감.
처음에 중국에서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왔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후에도 그랬다.
‘이대로 집 안에 조금만 갇혀 지내면 괜찮겠지. 금방 지나가겠지.’
아니 실은 이 모든 게 현실적이지 않아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 이리라.
하나 나의 비현실은 쉽게 현실로 나를 되돌려 주지 않았다.
마치 이전에 평화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여행을 다녔던 그때가 먼 과거였던 것처럼,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흐르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뉴스에서는 연일 사망자 수가 보도되고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나는 문득 이전에 찍었던 동영상을 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공무원 관둬도 인생 망하지 않아요. “라며 해맑게 웃는 내 얼굴이 보였다. 아 이런. 나는 물끄러미 옆에 있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나 공무원 관둔 거 잘못한 건가?
내 인생 안 망하는 거..... 맞지?”
“물론이지. 잘한 거야.”
“당신……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데…….”
이날 우리는
공무원 수험생 시절만큼이나
눈물겹고 스펙터클한 이후 일들을 알지 못한 채 바보처럼 서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