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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 여경 Aug 14. 2021

사표내고 도망친 스물아홉 공무원, 코로나 만나다

공기업에 도전하다

“네 다음 A조 대기하세요.”

공무원을 관두고 나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모 공기업 본사 면접장.


내 앞에 서 있던 여자는 너무 떨린다며 아까부터 계속 두 손을 꿀럭꿀럭 주물러댔다.


그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는 나는 전혀 떨리지가 않았다.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도 이상했다.


나 안 뽑으면 회사가 손해지, 라는 당당함 절대 아니었다. 힘들게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필기시험을 거쳤으니 면접을 잘 봐야 한다는 압박이 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 모습은 감정과 삶의 의지를 모두 잃어버린 인형 같았다.



출처: 유튜브14f




면접장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공무원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던 20대 중반의 나, 과거의 내가 저 안에 먼저 가서 서 있었다.


그날의 나는 오늘과 대비된 모습이었다. 팔과 다리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잘하고 싶다. 어떻게든 붙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떨고 있었다.


당당한 얼굴과 웃는 얼굴로 면접관 앞에 서야 한다는 걸 그녀도 분명 알 테지만 그렇게 다짐할수록 몸은 더욱 떨려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와 달리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그 밝은 분위기는 숨기지 못한다.


그녀는 애써 떨림을 감추며 면접장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면접관 세 명이 동시에 그녀를 쳐다본다. 나는 그 모습을 문 앞에서 그저 지켜보고 있다. 가운데 안경을 쓴 면접관이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인생을 살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



잠시 머뭇거리는 그녀. 예상 답변을 그리도 달달 외웠건만, 본인이 준비했던 질문 목록에는 없던 내용이었나 보다.


하지만 어떻게든 눈알을 굴리며 답을 찾으려는 모습이 티 나게 눈에 보인다. 곧이어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한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 같다. 잠시 주변이 고요하다. 그땐 정말 공무원에 붙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합격만 한다면 내 인생은 날개 달린 듯 꽃길 위를 날아가겠지. 붙여주기만 하면 저 면접관들 이마에 뽀뽀를 하거나(실제로 하라면 못하겠지만) 바닥에 대고 절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뽑아주신다면 국가를 향한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를 뽑아주기만 한다면 너무 감사해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할 거라 다짐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면접관들 중 한 명은 고개를 갸웃하고 이에 당황한 건지 그녀는 곧이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면접관은 너무 많은 면접대상자들을 봐 온 탓인지 심드렁한 표정.


얼른 다른 대답을 생각해볼까?


하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녀는 그저 빨리

이 면접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인 것처럼 보인다.





**

**






"저기요. 괜찮으세요?"




멀리서 과거의 20대 내 모습을 환영으로 지켜보고 있던 30대의 나를 깨우는 한 마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내 앞에 서 있던 다른 지원자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핀다.


내 앞에서 벌벌 떨며 손을 주무르던 앳된 얼굴의 여자. 경쟁자를 걱정해줄 정도로 마음 따뜻한 여자.


그 사람은 훗날 당시 약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네 명의 신입 중 하나였고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이자 입사 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인연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여자의 순진한 오지랖이 싫었다.


설레며 면접을 기다리는 듯한 그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나는 삐딱한 마음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가면이 장착되어 있었다. 태연한 척 사회적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갯짓으로 인사한 후 정장 매무시를 다시 정돈했다.



"A조 입실해주세요."



마침 면접장 안에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일깨워주듯 묵직하고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그래 나는 지금 과거에 얽매여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자. 현실로 돌아가자.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그렇게 울며불며 힘들게 ncs(국가 직무능력표준 시험. 주로 공기업에서 필기시험으로 본다)를 다시 준비했고 이제 마지막 관문을 남겨놓고 있지 않은가. 정신 차리자.  


너무도 오랜만에 신어 본 구두에 벌써부터 뒤꿈치가 까여 아팠지만 당차 보이기 위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면접장 안에 들어갔다.


면접관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둘러본다. 그때서야 떨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네가 그렇게 강심장 일리가 없었어.


그제야 나도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싫어했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뻔뻔하게 외쳤던 ‘공'직자가 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다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며 제발 나를 뽑아주세요 외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 중 하나인 나.

코로나19 이후 바뀐 내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눠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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