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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Feb 13. 2024

요가매트는 이제 그만

나이 60, 미국 한 달 살기 #6

애틀랜타에 도착하자마자 저렴하게 구입한 뉴발란스 요가매트를 운동할 때보다 식사할 때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더 이상 요가매트 깔고 퍼질러 앉아 매끼 밥을 먹을 순 없다.  미니멀라이프가 목표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책상 따로 식탁 따로 사는 것보다 널찍한 테이블로 구입해 두루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국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이케아 가구 가격에 질려 새 상품 사는 건 포기했다. 아들과 함께 일하는 현지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엔 이케아가 이렇게까지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고 한다. 달러가 강세면 미국 내에서 수입물가는 낮아져야 하고 스웨덴기업인 이케아 역시 싸져야 하는데 의아하다. 

아무튼 이사하면서 내놓는 무빙세일(Moving Sale)을 노려보기로 했다.      


예전 여행할 때 무빙세일이나 야드세일을 알리는 쪽지가 가로수에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다들 인터넷으로 광고를 하나보다. 애틀랜타에 한인신문사도 많고 라디오 방송사도 있음에도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는 조지아텍 한인커뮤니티 사이트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민들 누구라도 동향을 전하고 모임을 만들며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사이트라서 수시로 방문해 좋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괜찮은 건 금방 예약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사고 싶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물건이 매물로 올라왔다. 확장형 테이블인데 조립을 잘못하는 바람에 확장상태로 가져가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원래 300달러인 물건을 35달러에 판단다. 무빙세일을 할 때 다들 기존가의 반값정도에 팔고 있는 것에 비해 이건 횡재다.      

문자가 오고 간 끝에 오늘 5시 반에 픽업하기로 했다. 아들 집에서 두 블록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공부 열심히 하게 생긴 젊은 남자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싣는 동안 아줌마 오지랖으로 슬쩍 물어보자 조지아텍에서 박사를 받은 후에 한국으로 영구귀국하게 되었단다      


- 한국에서 좋은 직장 얻으셨나 봐요.

- 아 네, H대 아세요? 거기 교수로 가게 되었어요.      


요즘같이 교수되기 힘든 시절에 내 자식일처럼 반가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해야겠지만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안심이 될 것이다.       

그 연구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흑인 친구 두 명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차에 실었다. 테이블이 크니까 뒷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을 보고 판매자가 걱정하길래  가까운 거리라서 조심히 운전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집에 오자 마침 아들이 조금 이르게 퇴근을 해서 같이 집에 낑낑대고 올라왔다. 창가에 두었더니 처음부터 그 자리였던 듯 아주 안성맞춤이다. 

아들이 사둔 냉동피자를 데워 미드타운의 야경을 바라보며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미국 도시 한가운데 떨어진 실감이 든다. 

눈앞에 보이는 King & Spalding이라는 로펌회사 빌딩의 지붕이 활짝 열려 있다. 날 밝은 뒤에 보니까 지붕이 열린 것이 아니라 지붕이 열린 것처럼 지어진 건물이었다. LG 에너지설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전쟁 때 고문을 맡은 변호사사무실이기도 하다. 고액연봉자들이 밤을 새워 일하는 장소라 늘 환히 불이 켜져있다. 지붕의 조명이 어느 날은 붉은색, 어느 날은 흰색, 건물주 입맛 따라 달라진다. 그 옆에는 Promnade라는 애틀랜타에서 7번째로 높은 빌딩이 서있어서 야경이 멋지다. 1990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근사하다. 간판이 없어 어떤 건물인지 지나는 길에 찾아봤다. 소유주가 간판을 설치하려 하자 임차인이 소송을 걸어 막았다고 한다. 첨탑의 조명과 품위 있는 디자인을 해칠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여전히 간판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세입자가 소송에서 이겼나 보다.      


늦은 밤에 테이블을 판매한 분한테 문자가 왔다. 테이블 잘 가지고 가셨는지. 트렁크에 고정이 되지 않아 떨어졌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면서.  배려가 따뜻했다.


'어머니가 참 잘 키운 자식일세.' 


본인이 잘 큰 것이겠지만 순전히 엄마 된 입장으로 열심히 살아준 자식에게 숟가락 얹어보고 싶은 욕심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공을 돌려봤다. 

거리가 가까워서 괜찮았다고 답을 썼다. 잘 되어 가시는 좋은 기운을 받은 가구 같다고. 

그랬더니 하는 일 모두 잘되고 가족들도 건강하시길 기원한다면서 기분 좋은 답장을 보내왔다. 

한국에서도 실력 있고 학생들 입장을 잘 헤아리는 능력 있는 교수가 될 것 같았다.     

 

조지아텍은 예전에 농장이 많던 시대 처음 만들어진 대학이라 농기계를 개발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었고 그 이후 실용적 기술을 연구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업시스템공학과 같은 경우는 이곳에서 처음 학과가 만들어졌고 그 분야에 관한 한 독보적인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교란다. MIT, CALTECH과 더불어 미국의 3대 TECH 중 하나로 이곳에서 수학한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만들어나갈 한국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거리의 노숙자들이 등에 배낭을 매고, 양손에는 옷가지나 생필품을 쑤셔넣은 비닐 봉지를 들고  옆구리에는 요가매트를 끼고 다니길래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건가 궁금했었다. 식탁도 되고 냉기도 막아주는 세상 요긴한 물건이었다. 소서울에서 부친 매트리스와 먹을 것, 식기등은 다음 주에 도착한다니 며칠만 노숙자코스프레로 지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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