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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Feb 16. 2024

얘 이름이 뭐라고? 타말?

나이 60, 미국 한 달 살기 #7

아는 선배의 딸이 뒤늦게 사춘기가 와서 무척 부모를 힘들게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법원에서 개명허가통지를 받았다며 앞으로는 00으로 불러달라고 일방적인 통고를 했다.

그런 절차를 밟고 있는지 조차 몰랐던 선배는 무척 놀랐다.

그런데 어쩌랴. 받아들일 수밖에.

이후로 남편과 둘이 앉아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물었단다.

"쟤 이름이 뭐라고?"

낯선 이름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자식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부모가 된 것이다.

     

생전 처음 대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나도 계속 아들에게 물었다.

"얘 이름이 뭐라고?"

내가 사 와서 직접 조리한 음식인데 이름을 자꾸 잊어버린다.

타말(Tamal)이라는 음식이다. 며칠 전 히스패닉 사람들의 장터 같은 파머스마켓(City Farmers Market)에 갔을 때 옥수수껍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걸 보고 '저걸로 대체 뭘 해 먹지? 옥수수수염차처럼 옥수수껍질을 우려먹나' 하고 궁금해했다.



이밖에도 신기한 식재료가 많았다.




매운탕처럼 생선뼈를 팩에 담아놓은 것도 있었고 콩을 껍질만 팔기도 했다. 식재료로 많이 사가는 선인장잎은 가시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값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났다. 흙대파와 손질대파처럼 한번 더 사람 손을 거치니 값이 오른 것일 테다.  수백 가지 선인장 중 사람이 먹는 것은 널찍한 잎을 가진 Nopal이라는 종이다.

즐거운 구경을 하며 마트를 돌다가 옥수수잎으로 돌돌 만 냉동식품이 보였다. 아마도 옥수수잎을 사다가 저런 요리를 만들어 먹나 보다.


포장지에 타말이라고 적혀있다. 찾아보니 닉스타말화(nixtamal化)를 거친 옥수수가루를 반죽해서 옥수수잎에 싸서 찌기도 하고 고기나 치즈, 과일, 칠리 등의 소를 넣어 만두처럼 만들기도 하는 음식이다. 닉스타말화? 말은 어렵지만 옥수수를 그냥 빻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가공을 한 후 가루로 만든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어릴 때 새로운 라면이 출시되면 꼭 먹어보는 호기심천국형 꼬마였지만 더 이상 새로운 라면에 집착하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 음식에 대한 여전한 호기심은 남아있어서 제일 적은 걸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집에 와서 보니 엘살바도르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엘살바도르에서 만든 멕시코음식을 미국땅에서 한국인인 내가 사 먹고 있다. 몇 년 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이탈리안레스토랑에서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를 영국산 식기에 담아 먹었던 적이 떠올랐다. 전 세계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어 낯선 것이 별로 없지만 말이라는 음식은 처음 알게 된 낯선 음식이다.




포장지에 적힌 조리법에 따라 물에 넣고 14분가량 삶았다. 다 삶아진 후 옥수수잎을 벗겨내자 하얀 덩어리가 드러났다. 한입을 먹어보니

음~~~ 익숙하지만 묘하게 익숙하지 않은 맛이 났다.

옥수수떡과 빵 중간쯤 되는 식감에 약간 단맛이 났는데 첨가물이 들어간 듯 그리 건강한 맛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번 시도는 실패한 것 같다. 아직 5개나 남아있고 저 많은 걸로 다 뭘 하나.

그래도 한 번은 더 시도를 해봐야지. 멕시코가 아니라 엘살바도르에서 만들어서 맛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번 먹고 판단하기엔 좀 성급하다. 고기나 다른 재료를 넣어 찐 것도 먹어봐야 타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고 식당에 가더라도 주문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다음날 트레이더조마트에 갔을 때 닭고기와 치즈를 넣은 것으로 사왔다.  



좀 실망한 터라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타말에 대한 궁금증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을 뿐이다.

찜기나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그릇에 담고 중탕하듯 물을 데웠다.

그리고............


어제 먹은 것보다 훨씬 낫다. 타말의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제 타말이라는 음식을 알게 되었고 식당에 가서도 타말에게 아는 척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사물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비로소 나에게 와 의미가 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멕시칸 푸드, 수천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멕시코 요리는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서 세계 각지에 멕시칸 식당이 있고 매운맛 좋아하는 우리나라사람들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인다.


타코, 퀘사디아, 브리또, 파히타, 세비체에 이어 이제 타말까지 알게 되었다. 멕시코전역에 500개가 넘는 타말요리가 존재할 만큼 현지인들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음식.     

타말을 찾아보며 멕시코에는 옥수수여신도 있고 그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축제 겔라게차가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틀림없이 옥수수아가씨선발대회 같은 것도 있었으리라. 멕시코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갑자기 친근하게 여겨졌다. 언젠가 멕시코시티의 거리에서 냉동타말이 아니라 현지요리사가 만든 타말도 먹어봐야지.

그리고 다음번 마트에 갈 때 선인장 잎도 한 장 사다가 구워 먹어 봐야겠다. 선인장 역시 멕시코 국기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멕시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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