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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Feb 26. 2024

120년 된 공원 피드몬트(Pidmont Park)

나이 60, 미국 한 달 살기 #9

날씨가 만만찮다. 좀 따뜻해져서 이곳은 봄이 빨리 오나 싶다가도 가차 없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장마처럼 이틀 연달아 비가 내리기도 한다. 기온은 2도에서 17도로  한국의 4월 날씨 정도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반소매 옷을 입고 다녀 열이 많아서 그런가 여겼지만 애틀랜타에서는 아무도 반소매옷으로 나다니지 않는다.


 하늘은 예전 우리나라 가을하늘처럼 청명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차가워도 햇살은 따뜻해서 한국 같으면 조급증 난 개나리가 성급하게 꽃을 피워 여린 꽃잎이 얼기도 하고 그럴 텐데 여기 꽃나무들은 햇살에 속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쉽게 속지 않게 될 때까지 날씨에 된통 당한 일이 빈번히 있었을 것이다. 밤에는 귀곡산장에 온 듯 바람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든다.     


 

이번 주말에 어찌 그리도 날씨가 따뜻하고 맑은지 아들과 둘이 도시락을 싸서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미국생활을 준비하는 모임카페에서 추천하기를 삼각김밥용 틀과 김을 꼭 가져오라 했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어야 해서 그런 것 같았지만 점심시간 매번 먹는 햄버거에 질린 직딩 아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 삼각김밥 싸줄까 물었더니 아들은 절레절레.  

그래도 이렇게 가끔 공원 가거나 먼 길 여행 떠날 때 한입거리 간식 싸기 좋아서 삼각김밥틀과 김을 가져오길 잘했다 싶다.      



아들을 위한 맥주 한 캔과 내가 마실 주스 한 병, 스낵 한 봉지, 블루베리 한 팩, 베이컨과 김치를 넣은 김치볶음밥으로 만든 삼각김밥을 가방에 넣고 피드몬트 공원(Piedmont Park)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들이 집 얻기 전에 잠시 묵었던 호텔을 가리킨다.

호텔비교사이트에 올라온 애틀랜타미드타운 숙소 중에  저렴한 숙소를 골랐다는데 겉은 고급스러워 보였다.  

괜찮은데? 그랬더니 잠금장치가 고장이 나서 문을 잠그지 못하고 살았단다. 치안이 험악한 이곳에서 문이 잠기지 않을 정도라면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숙소였다는 뜻이리라.



10분 정도 걸어 공원에 도착하니 입구 바로 옆에 쉑쉑 버거가 있다. 김밥이 없었다면 여기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수가 펼쳐졌다. 클라라 미어 호수(Lake ClaraMeer)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다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애틀랜타의 전경을 나타내는 대부분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녹음이 짙은 숲이 한 층을 이루고 그 위로 애틀랜타를 대표하는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 멋진 전경.   


  

물가에는 다리 긴 황새가 사람을 피하지도 않은 채 서있고 주변에 오리들이 땅에 배를 붙이고 바위처럼 꼼짝 않고 앉아있다. 진한 핑크빛 꽃을 피운 복숭아나무가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는 언덕 아래  여러 팀이 동시에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초여름에는 이곳에서 재즈페스타발도 열리고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파라솔을 들고 와 야외음악을 즐긴다고 한다.



2004년에 공원개장 100주년 행사를 한 이후 ‘폴 매카트니’와 요즘 내가 아침마다 듣고 있는 ‘콜드플레이’가 와서 공연도 했던 올해로 무려 120년 되는 공원이다. 그 밖에도 달리기 대회나 걷기 대회, 자전거 타기 대회가 수시로 열리고 홈페이지에는 행사를 공지한다.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으니 오리들이 우르르 호수에서 올라왔다. 먹을 걸 달라고 그러나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고 즈네들끼리 꽥꽥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다가 대장 같은 녀석 한 마리가  오리 무리들을 나무라며 쫓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지만 오리들은 그곳이 터전이니 누가 봐도 주인은 오리다.

오리와 사람의 세계가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고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가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어디서든 애견인들의 행동은 비슷한 듯 산책하다 마주친 견주들끼리 함박웃음을 지으며 공감대형성이 한창이고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건강한 팔다리를 드러낸 채 제 발로 뛰거나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있다.


바쁜 사람은 공원에 오지 못한다. 절박함이 가득한 사람도 공원에 오지 않는다. 공원에 오면 느슨한 사람들을 만나서 내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 하듯 대도시 속 공원도 허파와 마찬가지다.

회사 다닐 때 점심식사 후 한 바퀴씩 도는 여의도 공원은 지친 직장생활에서 큰 숨을 쉬게 해주는 장소 였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 어떤 정치인이 미군이 떠난 용산에 공원말고 서민아파트를 짓자고 했다.

공공의 비용으로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며 아무 제제나 비용부담 없이 자신의 앞마당처럼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많을수록 서민을 위하는 것이 아닐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와서 쉼을 즐기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곳. 가장 차별 없고 평등한 장소가 공원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으로 공원을 관리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은 시 재정으론 관리하기 힘들어서 끊임없이 기부를 받고 있었다.



예전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알베르토가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데이트를 공원벤치에서 한다고 했다. 벤치에서는 연인들끼리 정말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 해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고  멀리서 찾아온 시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걸어서 10분 거리에 주차걱정 없이 아무거나 다  즐길 수 있는 보물 같은 장소가 있어 무척 행복했다. 봄이 깊어지면 더 자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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