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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Feb 21. 2024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이 60, 미국에서 한 달 살기 #8

서울에서 보낸 짐이 거의 한 달 만에 도착했다.      

네이버에 미국생활을 준비하는 모임 미준모카페가 알려준 대로 이삿짐 속에 음식은 거의 넣지 않았다. 유학이나 이민 등의 거주목적으로 미국에 오는 사람들은 이 카페에서 미지의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곤 하는데  음식 때문에 세관통과가 늦어질 수 있다고 웬만하면 현지에서 사라는 충고가 있었다. 꼭 가져간다면 집에서 만든  음식 말고 안에 내용물이 무엇인지 표시된 포장이 뜯기지 않은 제품만 가져가라 했다. 

     

아들 짐을 보낼 때 짐을 싸러 온 특송회사 직원에게 김치도 괜찮냐고 물어보자 조그만 것은 넣어도 된다고 했다. 꽁꽁 묶은 종갓집김치 5KG을 짐에 넣었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 미국에 도착한 김치는 화물보관함에서 제대로 발효를 했는지 공처럼 빵빵히 부풀어 올라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 묶은 테이프에 칼을 살짝 대자마자 ‘펑’ 하면서 김치봉지를 묶고 있던 쇠끈까지 끊어져버리고 포장이 그대로 열려버렸다. 미생물의 힘이라니. 


감탄할 새도 없이 정말 지독한 김치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집의 냄새와 섞여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아주 희한하고 이질적인 냄새를 풍겼다. 약간 화학적인 냄새 같기도 했다. 김치냄새 분자로 만든 큰 보자기가 내려와 그대로 이 아파트를 푹 감싼 것 같았다. 김치에서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황하는 와중에 틈새라도 냄새가 나가면 아파트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파트복도에서 항상 매캐한 냄새가 떠돈다. 아들은 그것이 대마초 냄새라고 한다. 그러니 김치냄새도 틀림없이 복도를 떠돌 것이다.      


평소 여행할 때는 단 한 번도 한국 음식을 챙겨간 적이 없다. 외국에 나가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 여행의 참맛이라 여겼고 외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전혀 없었다. 

그런 내게 김치 금단현상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래전 캐나다 록키 산맥을 여행 중일 때 몇 날 며칠 느글느글한 것만 먹고 나니 정말 김치가 눈물 나게 그리워졌다. 아삭하고 시원하게 잘 익은 김치 생각만 났다. 멋진 풍경을 볼 때도 레스토랑에 들어가서도 김치가 어른거렸다. 한국음식점도 없었다. 어떤 오지 여행가가 쓴 책 속에서 며칠을 풍토병에 앓아누웠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건네준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병이 나았다는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 지니까 책 속의 글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그동안 한국 음식에 전전긍긍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행 기간이 짧아서였음을 깨달았다. 여행이 길어지니 한국인의 김치 DNA가 작동을 시작했다. 밴쿠버로 돌아와 한인 마트에 가서야 김치 한 통을 살 수 있었고 정말 빨리 먹고 싶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침을 삼키며 삼겹살과 김치를 꼭 끌어안고 B&B에 들어섰지만 요리할 수 있는 쿡탑이 없었다. 전자레인지만 있을 뿐이었다. 삼겹살은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김치는 그냥 포크로 퍼 먹었다. 아직 익지 않은 김치였지만 내 생애 그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국제화된 입맛이라고 자긍심을 느꼈던 나의 입맛을 장담할 수가 없어졌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제작했던 후배 PD가 ”퇴직 이후 살만한 물가와 식비가 저렴한 외국을 찾아보고 있는데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딱 한 가지 조건이 뭔 줄 아세요? 김치용 배추가 재배되는 곳이라야 해요. 한국에서 10대 초반까지 보낸 사람이라면 김치에 인이 박혀서 김치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어요. “

발효음식의 무서움(?)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어디에서 밥을 먹건 김치가 나온다는 점이란다.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김치다. 요즘은 구글맵이 잘되어 있어서 외국에서 한국음식점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애틀랜타엔 한인마트가 무려 4~6군데나 있어서 서로 경쟁을 하는 바람에 심지어 비싸지도 않으니 굳이 이렇게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김치를 덜어서 따로 보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이소에서 사 온 뚜껑 달린 수납용품에 김치봉지째로 넣자 맞춘 듯이 다 들어간다. 뚜껑을 닫아서 밀봉한 다음 냉장고에 직행했다. 그럼에도 냉장고를 열 때마다 냄새가 진동한다. 앞으로 김치전. 김칫국, 김치볶음, 김치찌개, 김치찜의 용도로 먹게 될 소중한 자산이긴 하지만 냄새가 신경이 쓰였다.      

이곳에서는 특히 냄새에 민감한 듯하다. 로비복도에 디퓨저플러그가 늘 꽂혀 있고 어디든 인공향이지만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심지어 쓰레기 버리는 곳에도 청소하는 분이 스프레이를 뿌려두는지 늘 향기가 난다. 


우리는 발효음식에 익숙하다. 된장, 간장, 고추장, 젓갈, 김치, 식혜 다 발효음식이다. 

된장은 콩과 소금만 넣는데도 냄새가 지독하다. 물론 우리에겐 구수한 냄새지만 말이다.      

비슷한 음식을 섭취하는 우리 민족끼리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민족마다의 체취가 있기 마련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베티나 파우제'가 쓴 '냄새의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마다 몸에 있는 박테리아군이 다르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성별이나 문화 유전적 배경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고 식단 역시 영향을 미친다.      

1조 개에 달하는 냄새들은 1000개가량의 수용체에 의해 구분되고 수용체마다 특히 잘 지각하는 분자가 있단다. 이른바 모국어를 가진 셈이다. 수용체가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외국어도 있고 입도 뻥긋 못하는 외국어도 있다. 


비유하자면 김치냄새는 한국어라서 외국인은 입도 뻥긋 못하는 외국어인 셈이다. 

순수한 냄새란 없고 늘 수백 가지 분자가 섞여 있는 와중에 어떤 분자는 빠르게 어떤 분자는 천천히 수용체에 전달된다. 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분자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결론을 내린다. 아하 바나나로군. 무의미한 분자들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완전체로 바뀐다. 


요즘은 한국음식 붐이 일어서 한국음식을 대해본 사람도 많겠지만 많은 외국인에게 여전히 한국음식은 도전이다. 그들에게 김치냄새는 무의미한 분자들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완전체 '아하 김치로군'을 떠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에서 맡았던 부패한 음식에서 나는 듯하거나 알 수 없는 불쾌감으로 수렴될 수 있는 종류다. 


미국에 와서 '그러거나 말거나'의 개념을 장착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김치냄새가 이토록 이질적인 이유는 그동안 이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냄새였던 데다가 그들의 생활 속 냄새와 섞여 전혀 다른 분자가 되어버린 탓일 것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김치를 없애기로 했다. 다 먹은 후 한인마트에서 적은 양의 김치를 사거나 한국배추로 겉절이를 해 먹으면 날이 갈수록 토종 입맛으로 변해가는 내 입맛도 달랠 수 있을 테다.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찜을 하려는데 돼지고기가 없어서 기름이 전혀 없는 퍽퍽한 소고기로 만들었지만 김하고 같이 아주 잘 먹는다. 이번엔 밀가루를 풀고 참치통조림 한 통을 넣고  김치전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아주 맛이 좋았다. 베이컨을 잘게 썰어서 김치볶음밥을 만든 다음 삼각김밥용 김으로 김밥을 싸 공원피크닉 갈 때 도시락으로 먹었다.

멸치국물을 우리고 김치와 파, 명란젓을 넣은 다음 김치국밥을 끓이자 쌀쌀한 날씨에 속이 든든한 소울푸드가 되었다. 없는 양념으로도 잘해 먹는다. 

나머지 김치는 많이 시어져서 대충 씻어낸다음 쏭쏭 썰어서 저장용기에 담아두었다. 김치냄새가 좀 덜해졌다


인생에선 장담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김치에 목을 맬 줄 젊었을 때는 몰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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