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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Mar 05. 2024

총보다 술이 두려운 나라

나이 60, 미국에서 한 달 살기 #10

나갔다 하면 자꾸 뭔가를 사 오게 돼서 냉장고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아들보고 살찐다고 걱정하면서 자꾸 고기반찬을 해주고 술 많이 마시는 거 나무라면서 퇴근 후 한잔 하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냉장고에 맥주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런 일관성 없고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 허나 이미 늦었다.

아들은 세 살이 아니고 서른세 살이니 말이다.

     

아들은 미국까지 와서도 주말에 출근하고 회식 때문에 늦은 밤에 들어오기도 한다. 늦은 밤에 지하철을 타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안전불감증 행위임에도 대안이 없어 이용하거나 우버를 타고 돌아온다. 힘들게 직장 생활하는 아들을 보면 좋아하는 것 먹이며 하루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생긴다.       

아들이 좋아하는 맥주는 에일맥주이지만 종류와 상관없이 새로운 맥주 맛보는 걸 즐기는 바람에 마트에 가면 맥주코너부터 들른다.



월마트에 수많은 종류의 맥주가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어도 내가 아는 맥주는 하이네켄과 버드와이저, 코로나뿐. 어차피 다 모를 땐 제일 싼 걸 사는 게 국룰이지.  


잉링(Yuengling) 맥주가 12개 한 팩에 12달러. 한 개 1달러다.     

처음엔 이름 때문에 중국맥주인가 했는데 독일인 이민자 데이비드 잉링(David Yuengling)이 독일 양조 기술로 1829년 펜실베이니아 주 포츠빌에 양조장을 설립하고 만들기 시작한 맥주였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중 하나다.

미국 내에서도 이름 덕분에 중국맥주일거라는 오해를 많이 한단다.

라거 맥주임에도 짙은 호박색을 띄고 있으며 쌉쌀한 맛을 내는 홉맛을 잘 살린 편이라서 청량감과 깊은 맛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라는데 우리나라엔 수입이 되지 않는다.      



다른 맥주도 시도해 봤다.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 갔다가 구입한 맥주는 ‘보츠웨인  IPA(Boatswain IPA)’. 트레이더 조에만 파는 맥주라고 아들이 얼른 들고 왔지만 후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맥주애호가들의 평가가 무척 좋지 않은 맥주였다. 청소용품 같은 맛과 향이 난다거나 화학물질, 녹물냄새, 손소독제 맛이 난다 하고 아주 이상한 시럽 같은 뒷맛이라며 혹평을 쏟아낸다. 맥주잘알못 내가 마셔도 씁쓸하기만 하고 깊은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시티파머스 마켓(City Farmers Market)에서 캔 표면에 생선이 그려져 있는 에일 맥주 Two Hearted IPA가 특이해서 사봤다. 미시간주에 있는 투하트강(Two Hearted River)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내 입맛엔 에일보다 라거가 훨씬 시원해 맥주를 마실 때 라거를 찾지만 Two Hearted IPA 맥주는 에일임에도 청량감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평점도 무척 높다.

'다니엘 헤니'도 이 맥주를 인생 마지막에 마실 술 한잔으로 꼽을 정도로 좋아한단다. 더욱 호감이 생겼다.     


아들은 어떤 맥주보다 잉링이 제일 낫단다.

그다음부터는 계속 잉링만 샀는데 맥주를 살 때마다 캐셔가 신분증을 요구했다. 하하

이런 대접 오랜만이다. 환갑이 넘었는데 술살 때 신분증을 보여달라니.

연방법으로 21세가 넘어야 술을 살 수 있다. 총을 살 수 있는 나이는 만 18세부터다.  

총보다 술이 더 무서운 건가. 대리운전도 없고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않았으니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무척 많아서 치명적인 음주운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작년 미국 맥주 출하량이 2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첫째 이유는 맥주가 칼로리가 높다고 생각한 젊은 세대의 주류 취향 변화고 둘째는 대마초가 원인인데  대마초를 합법화한 주에서 일부 소비자가 음주를 대마초 흡입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리 피하니 범 만난 격’이라고 술보다 대마초가 나을까. 챗GPT에게 물어보니 술은 간, 심장, 신경계등 여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대마초는 정신건강, 기억과 학습에 악영향, 종속성, 호흡기등에 문제가 있다고 답을 한다. 뭐 그거나 이거나 안 좋기는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마초흡연이 범죄인 반면 술에는 왜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다. 미국사람들이 K드라마를 보며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술 마시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나오는 것과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너무 잦은 음주 장면은 좀 거북하지만 같은 장면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 괴테의 시에 나오는 구절을 읊조리며 술을 권하던 후배가 있었다. 심장이 너무 뛰고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다했더니 몇 번 토하고 나면 익숙해진다고 잔을 건넸었다. 토하는건 너무 괴로웠고 결국 술맛을 즐기지 못한채 회사생활을 끝냈다.  맥주 한 캔을 채 마시지 못하는 주량은 맑은 혈관을 유지하게 해 줬지만 인생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느낌이 든다.


술 마시는 걸 즐겼다면 인생이 좀 더 풍부해졌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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