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 Mar 10. 2024

벌써 한 달

나이 60, 미국에서 한 달 살기 #11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어가자 만기가 되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만기가 돌아온 것은 여행자보험이다. 인천공항에서 삼성화재앱으로 여행자보험을 들었는데 한 달이 되자마자 문자로 연락이 왔고 아직 외국에 있어서 더 연장을 원하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연장하라고 한다.  한 달 더 연장을 하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게 대기업이지 하면서 감탄했다.  

    

다음으로 SK텔레콤에서 한 달짜리 데이터로밍이 만료가 되었다. 만료되기 전 어떤 주의문자도 없었다. 당일 그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데이터가 끊겨버렸다.

혼자 걸어서 쇼핑몰에 가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데이터가 끊기니 구글맵도 먹통이 되고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와이파이로 'SK T월드' 앱으로 들어가 다시 결제했다.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 갔었다면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아직 데이터가 남아있을 때 워닝을 해줘 연장할 수 있었다면 그런 곤란한 일은 없었을 텐데 같은 대기업임에도 삼성화재와 기업마인드가 달라 아쉬웠다.      


집에서 연결하는 와이파이도 한 달이 되니 가차 없이 끊어졌다. 마침 아들이 집에 있어서 10불을 결제하고 다시 한 달을 연장했다.      


렌터카도 빌린 지 4주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2주만 렌트를 했고 2주 후에 다시 렌트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처음 렌트할 때보다 무려 100달러 넘게 가격이 뛰었다. 처음엔 2주에 444불로 무척 싸게 렌트했는데 560불로 가격이 크게 올라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4주 렌트를 할걸. 아마 처음이라 가격을 싸게 해 준 것 같다.

여행과 지도 사이트보다 Herze.com 사이트에 직접 가서 예약하니 30불이 저렴했다. 4도어 일반세단의 경우다.      


미국에 온 지 2주가 된 날 아침, 공항에 차를 반납하기 전 아들이 미국면허를 받기 위해 DDS(Georgia Department of Driver Services)를 먼저 들렀다. 다른 주에서는 필기시험과 주행테스트를 거쳐야 면허증을 발급해 주지만 조지아주는 한국면허를 인정해 주니까 따로 시험을 칠 필요가 없고 서류 몇 가지를 내면 미국 내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관광객으로 들어온 나 같은 여행객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할 수 있지만 미국 내 거주자는 입국한 지 한 달 안에 미국면허를 받아두어야 한다.  <주 애틀랜타 대한민국 총영사관 공증서, 거주지 증명서류 2개 이상(계약서, 은행계좌) 여권, 비자, 국제운전면허증, ID카드>등의 서류를 챙겨 들고 DDS(Georgia Department of Driver Services)로 가서 거주자용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한두 시간 기다려야 했다. 미국에는 주민등록증이라는 게 따로 없고 거의 운전면허증으로 신분증을 대신한다.      


아들의 면허증을 발급받은 후 렌터 차를 반납하기 위해 기름을 가득 채워서 공항 내 Hertz에 도착했다. 허츠 골드회원은 두 번째 이용부터 사무실에 들를 필요 없이 주차장에서 곧바로 차를 갖고 나갈 수 있는 캐노피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해서 룰루랄라 했는데 아뿔싸.

주차장을 나갈 때 면허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여권하고 국제면허증을 집에 두고 왔다.

아들은 한심한 엄마를 원망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지만 난 이상하게 침착했다.

최악의 경우 지하철 타고 집에 갔다 오면 되지.  

    

아들이 렌터카 사무실에 어찌 말할지 알려달란다. 아들의 입과 나의 노련한(?) 경험이 공조해야 하는 순간이다.      

- 방금 전에 차를 반납하고 다시 렌트를 하려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은 되어있다. 여권과 국제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지난번 입력한 이력으로 차를 렌트할 수 있을까.

-안된다면 아들의 운전면허증과 여권이 있으니 아들명의로 바꿔 렌트가 가능할까

 물어보라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난감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나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헤쳐나가려면 가장 중요한 것. 영어를 잘해야겠지만 그것보다 위기대처능력이 더 중요하다.

번역기 아들이 있어 집에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다행히 차를 렌트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없었다면 구글번역기를 돌렸겠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지 직원은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일본차 말고 기아나 현대차를 빌리려 했으나 우리나라차에는 경고음 장치가 안 돼있어서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떠올라 꺼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역 바로 앞 노상주차장에 차를 주차해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차를 고를지 둘러보고 있자 세차를 마친 후 차를 갖다 놓는 허츠직원이 기아차에서 내리며 엄지 척을 한다. 4000마일밖에 달리지 않은 새 차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보니 Smart Start 시스템도 없이 열쇠 돌려서 시동을 걸고 좌석 위치변경도 수동으로 해야했다. 한번 편리한데 익숙해지면 불편함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게 습성인가 보다.      


2주 동안 몰아서 친숙했던 닛산로그로 다시 몰고 나왔다. 원래 닛산로그는 SUV라 좀 더 렌트비가 비쌌지만 2021년 연식이라 그런지 싸게 빌릴 수 있었다. 트렁크도 자동으로 열리고 좌석이동도 자동으로 되어서 훨씬 편했다.      


이후 2주 동안 이 차로 테네시에 락가든시티도 다녀오기도 하고 정이 들었다. 차가 있으니 쓸데없이 자꾸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냉장고가 터져나갈 지경이 되었다.

이제 당분간은 차가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달에 1000불이 넘는 렌트비도 아까웠다. 불편하면 다시 렌트하면 되고 1주일이라도 차 없이 살아보자 했다.  한 달 동안 잘 사용하고 차를 반납했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미국 시골에 사는 어떤 한국분은 순댓국하나 먹겠다고 7시간을 운전해서 간 일도 있다 하고 한인마트까지 한두 시간 운전하는 것은 보통이라고들 한다. 애틀랜타의 미드타운은 조지아텍이라는 대학이 있어서 대학가 주변이 그렇듯 웬만한 마트와 음식점은 즐비하다. 쾌적한 경험은 아니지만 지하철도 있으니 굳이 차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한 달씩 연장하고 보니 한 달 치의 식량을 배급받아둔 것처럼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 마냥 아쉬운 것도 필요한 것도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익숙해졌고 불편한 것도 딱히 없다. 이곳 기온에 맞게 옷 몇 벌 사고 살 집이 있고 식재료 사다가 해 먹을 줄 아니까 의식주가 다 해결되었다.

의식주만 해결되면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라 인생이 훨씬 단순해진다.                

이전 10화 총보다 술이 두려운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