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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Apr 11. 2021

7장 타인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결정의 의미

스스로 짊어지는 의무

자신이 걷는 길


이제는 여러분도 아는 사실이겠지만, 글로 다른 사람을 도우려면 여러 가지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을 돌보고,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어야 하며, 아이디어도 직접 구성해야만 한다. 이는 단연 하나의 서사시로 봐도 무방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서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는 ‘성장’이다. 물론 당신이 이미 한 분야에서의 전문가이며, 이제 글쓰기를 배울 차례라면 그리 장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뭔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곳에 서 있다면, 솔직함을 발휘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의도한 대상에게 의도한 도움의 메시지를 보내기 원한다면 반드시 의도하는 결과도 있기 마련이다. 그 결과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메시지를 날려 보낸다는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느덧 하나의 길을 걷게 된다. 메시지를 채울 재료들이 필요하고, 재료들을 모으다 보면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다. 재료를 파는 사람, 함께 재료를 구하는 사람, 재료를 가지고 함께 작업할 사람도 마주치게 된다. 그러니 그 길을 가도 괜찮은지가 대해서도 자신에게 물어보라. 환경적인 이유도 내면적인 이유도 함께 말이다. 즉 당신이 글로 타인을 돕는다는 결정은 자신이 걸어갈 방향을 함께 정한다는 것을, 집필하는 시간을 넘어 당신의 삶의 일부를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후회가 없을 결정인지 미리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만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저 시간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허영심의 씨앗


성공을 이룬 뒤에는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공을 맛본 뒤에 일어나는 가장 위험한 사건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크든 작든 성공을 이루고 나면 타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잘못된 모습의 자신을 돌이킨 방법으로 타인도 똑같이 돌이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꼰대처럼 행동하면서도 스스로를 책임감 내지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다. 앞서 말했듯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당사자의 내면에 정의감이 아니라 터지기 일보 직전의 불안감이 자리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심리에는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이 부풀어 있다. 대부분은 그 신념에 대한 근거를 자신이 이룬 업적에서 발견한다. 자신이 과거에 성공했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이 우월하며, 자신 또한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타인에게서 인정을 얻으려는 충동을 피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럴 때 자신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불안은 이내 폭발해버리고 마는데, 당사자는 그런 상황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며, 항상 옳다는 신성불가침을 침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사자의 불안한 내면은 곧 밖으로 전부 표출되기 쉽다.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리게 되며 불만을 가지는 일도 많아진다. 타인에게 먼저 적의감을 품는 사람 치고 미래가 밝은 사람은 없다.  이 책을 통해 변화에 성공했다면, 겸손은 당신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은 부분은 충고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보라. 자신마저 의심하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권하려는 행동이 타인을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을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이다. 언제나 목표가 아닌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을 주시하라. 다시 이질적인 모습을 비추게 되면 세상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내고 우리를 다시 끌어내려 버리려고 할 것이다.     






연민


타인에게 변화를 일으키려는 마음의 근원을 살펴보려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만약 불편한 감정과 함께 ‘저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타인을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그리 이타적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그런 기대를 허영심이라 부른다. 허영심을 품으면 적이 많아진다. 기껏 마음을 써서 좋은 방법을 권해줬는데, 잘 따라주지 않는 상대방을 보면 참 밉고 미련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용납하기 어려울 만큼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면 비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민을 품으면 적을 만들 일이 없다. 상대방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연민을 품은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서 마음을 보고, 마음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마다 성격은 다를지언정, 인간적인 본성 닮아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똑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또 연민을 가지는 사람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기대를 품으면 오히려 자신이 괴롭다는 것을 알며, 특히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기대를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니 연민은 미움을 품지 않는 기술인 것이다. 그저 그럴 수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화내는 것도, 우울한 것도, 이기적인 것도, 피하는 것도, 뭔가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것도 전부 괴로움으로 바라볼 줄 안다. 모든 것을 감내하는 바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상황에 알맞은 행동을 하며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이 괴로워지는 일이 없게끔 할 줄 안다는 뜻이다. 반면 강요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실천할 능력이 없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높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성공을 하면 선택의 갈림길에 들어선다는 것을 기억하자. 허영심을 품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선택과 연민을 품고 타인을 사랑하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Q.1 내가 그리는 결과가 무엇인가?

Q.2 결과를 이뤄낸 삶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보라.

Q.3 그만하면 충분히 고생을 감수할 만한가?

Q.4 타인에게 충고를 날리고 싶은가?

Q.5 나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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