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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Feb 12. 2024

밤하늘의 별을 세는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한 때는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에 변화가 어렵다.

계속 이어서 지나치게 착한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안고 사는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성격의 변화를 강력하게 원한다. 타인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려고 하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이 쌓이다 못해 이른바 '현타'를 느끼는 탓이다.


가령 사소한 거절조차 어렵다던가, 주변에 은근하게 무시하거나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이 있다는 점, 본인의 생각을 소신 있게 밝히 지를 못하는 점 때문에 답답해한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이미 수백 번 쌓아온 다짐은 소용이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지 시나리오까지 만들어봐도 막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머리는 하얗게 되고, 반사적으로 타인을 위한 행위가 튀어나와 버린다. 그들이 자책과 후회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원하지도 않는 반사 반응이 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 맥락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아래의 스토리를 보자.








별을 세는 아이

꼬마 아이는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왔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었고 이내 할머니는 아이에게 말했다.

"보름달 뜨면 달님한테 소원 비는 거다~"

이내 아이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 빌었노~"

"엄마 빨리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아이의 소원은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할머니는 아이가 희망이라도 안고 살아가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잘했네"

아이는 재차 물었다.

"할무니,"

"응, 할머니 여기 있다."

"엄마가 언제 올까?"

"열 밤 자면 올 끼다."

"진짜?"

"그래"

다섯 살 아이면 한창 호기심도 많을 때이니 열흘쯤 뒤에는 아마 질문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라는 예산에 뱉은 답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열 번의 달을 보며 엄마를 만날 날을 매일매일 세었다.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 엄마가 실망스러웠지만, 날짜를 세지 않으면 엄마가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대신 아이는 달 대신 별을 세기 시작했다.

열흘 뒤에는 나타난다고 했던 엄마니까, 그래도 하늘의 별을 다 셀 때쯤이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는 별을 세느라 바빠서 밀려오는 공허감을 버틸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는 청년이 되었다.

청년의 마음에는 여전히 공허감이 남아 있었고, 별을 세는 버릇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별을 세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별을 세고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가 "쓸데없이 별을 세고 앉아 있어!"라고 지적하면 참기 힘들 만큼 크게 화가 났다. 아이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별을 그만 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밤만 되면 다시 반사적으로 별을 세고 있었다.


아이도 바뀌고, 아이에 모든 주변도 바뀌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별을 세었고, 어릴 때와 달리 지금 별을 세는 것은 삶에 그다지 별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별을 세는 아이처럼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에게는 변화하기가 어려운 나름의 사연이 있다. 적어도 한 때는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착한 아이증후군은 절대적인 애정이 필요한 시기에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타인에게 친절을 베풂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스스로 애정을 수급해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정을 되돌려 받을 기대를 가지고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기대한 만큼 좋은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분이 크게 언짢아진다.)


당연히 어린 아이가 정서적인 불안을 스스로 해결한 것은 칭찬할 일이다. 심지어 친절을 통해 타인에게 애정을 받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이야기가 다르다. 무조건 적인 호의를 베푸는 성인은 오히려 타인에게 부담감과 의심을 는 법이다.


당사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아하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하고 계산을 마쳤을 텐데, 이제 와서 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니,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었어, 이 나쁜 세상아!'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자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별을 세는 아이가 자신이 엄마를 기다렸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착하게 행동할 필요 없다는 것을, 아니 이제는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다른 방법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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