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디 Jan 29. 2024

성격은 착한데 쎄한 느낌이 든다는 것

살다 보면 기분 나쁠 만큼 의심스러운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은근슬쩍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을 겪어 봤나요?"라는 질문에 쉽게 떠올릴만한 사람이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다. 불쾌하고 위험한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니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그리 복잡하지만 않다면 상대의 흑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날수록 대처가 간편하다. 적당히 명분을 드러내며 화를 내거나, 명확히 선을 긋는 말 한마디면 된다.


오히려 좋은 이미지로 접근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계획으로 끌어들이는 타입을 상대하는 것이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누군가와 오래 대화하며 숨겨진 저의를 파악하고, 그걸 밀어내기까지의 과정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처할 때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곤 한다.

아.. 저 사람 어딘가 쎄한데..

 



쎄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 이는 곧 위험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당신의 직관이 캐치했다는 뜻이다. 이때는 당신의 오랜 경험들이 상황판단을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가령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쎄한 느낌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만약 함께 대화중인 상대가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신뢰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함

- 입술이 말라 자꾸 침을 바름

- 인위적인 억지웃음을 지음

- 뭔가를 허용한다는 결정을 바람

- "어-", "그게-"처럼 말을 끄는 일이 잦음



이럴 때면 누구든지 쎄한 느낌을 받고, 곧 경계심을 세우기 마련이다. 경험상 불안감이 반영된 누군가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실 또는 어떤 잘못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담스러울 만큼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불안 반응을 자주 보인다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들을 대면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쉽게 거부감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 그들이 정말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착한 아이들의 신

지나치게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어딘가 부적절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순을 올바르게 하자면 자신의 본모습이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올바른 이미지를 가장하려는 의식이 생긴다.


이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타고나며, 그렇기에 그 죄를 씻어야만 한다'라는 어떤 신의 가르침을 믿는 모습과도 닮아있다. 재미있게도 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실제로 그런 신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남아있다.


나는 작년에 온라인 상담 창구를 열어서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 100여 명과 상담을 진행했었다. 그때 이런 경향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됐다. 왜냐하면 함께 상담을 진행한 사람들 중 80명 이상은 그 '신'으로부터 착한 아이 증후군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

태어나서 가장 믿고 따르게 되는 최초의 존재는 부모이다. 또는 부모에 준하는 보호자이다. 아직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난 적이 없고, 생존마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심리학자 모건 스콧펙(Morgan Scoott Peck)은 자신의 저서에서 '아기의 눈에는 부모가 신으로 비친다'라는 말로 비유하기 까지도 했다.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 안에 세상의 질서와 이치가 담겨있다고 믿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려 한다. 다시 말해 아이는 부모를 말을 잘 믿기 때문에 부모의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가령 뛰어노는 아이에게 시끄러운 놈이라 비난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 본인이 시끄러운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적을 받아 올 때만 칭찬하고 아닐 때에 외면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능력을 증명해야만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분노에 찰 것이다. 아이를 편하게 길들이기 위해서 잘못을 과장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버려질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모든 사람에게 허용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며, 쉽게 이용당할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특히 부모가 자기감정을 못 이겨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를 체벌하는 것만큼 최악인 것은 없다. 그런 아이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자신이 잘못한 점을 찾지 못하기에 결국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모가 틀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결론)


이외에 왕따라던지, 다른 사건을 통해서도 자신이 괜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의문을 품게 될 수 있다. 어쨌든 자신이 부정적인 존재라는 믿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에 와서야 다른 부정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내가 전하려는 말이다.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 중 다수는 빨리 인간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거나,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법, 옷을 힙하게 입는 법처럼 단기적인 해결방법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돌아가려는 선택이 필요하다. 쎄한 느낌을 풍기는 시작점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는 것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나쁘게 바라보는 것부터 변화해 나가야 한다.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혀 당사자의 잘못도 아니다. 오직 과거에 겪은 사건과 사건을 통해 내린 그때 당시의 결론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나쁘다는 점이 사실이 아니라면 숨길 필요도 없을 텐데, 본인만이 사실이라 믿으며 숨기려 한다는 큰 그림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주에는 착한 사람들이 가진 이 허상에 대해 좀 더 깊게 다뤄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