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먼저 쌓아 올려야만 하는 토대
착한아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겪는 'Pain point' 중 가장 흔한 것은 '상대에게 아무 부탁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묵묵히 혼자서 해결하는 쪽을 선호한다.
타인에게 부탁하는 것을 꺼리는 태도는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대부분 사소하게 넘길 일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책임감이 넘쳐 보이는 모습에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호감을 살지도 모른다.
다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반복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어색한 순간과 오해가 쌓여가기 마련이다. 가령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는 와중에 자신보다는 상대 몸에 가까이 있는 가위를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해 보자. 누군가는 "거기 있는 가위 좀 줄래?"라고 부탁하겠지만,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은 시선을 가위에 고정시킨 채로 테이블을 빙 둘러 직접 가위를 가져온다.
이럴 때 누군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라고 물어보면 당사자는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하거나, "그냥 그게 편해서.."정도로 어색하게 둘러댈 것이다.
그들의 심리 기저에는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잡쳐서 삼겹살을 목구멍으로 넘길 입맛이 사려져 버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용히 스르륵 사려져 버리는 일도 있다.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싫기 때문에)
그러니까 별일 아닌 상황에서도 마음이 상하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곤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안전대처"
그들도 어색한 분위기를 원하지 않는다. 완전히 반대의 상황을 원한다.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특별하거나 유의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을 원한다.
다만 강렬히 원하는 만큼 실패 또는 반대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 또한 크게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 두려움이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 두려워할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두려움 때문에 본성과 본심을 숨기는 일이 잦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구도 자주 숨기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의 욕구에 집중한다. '챙겨줄 것이 없는지', '뭔가 불편해하지 않는지'에 대해 잘 살피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타인에게 먼저 건넨다. 이것이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대처법이며, 강박적인 착함의 실체이자 큰 맥락에 대한 일부 설명이라 말할 수 있다.
"진작 해보면 좋을 뻔했어"
한 번은 나의 연인과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른 적이 있다. 그녀는 디톡스에 한참 관심이 많아진 탓에 말차라떼를 주문했고, 말차라떼를 휘휘 저으며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있잖아, 난 예전에는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남들 사는 거 보면 힘들게만 보였거든, 나는 결혼하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지."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겁이 많아서 결론을 지어놨던 것 같아."
"마치 눈앞에 있는 이 말차라떼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들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근데 웬걸 막상 들어보니까 충분히 들 수 있었고, 막상 들고 먹어보니 너무 좋다는 거지"
그녀가 했던 말을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에게도 전해보고 싶다. "말차라테 한잔 들어 올릴 용기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 번 해보라"라고.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니, 자신의 욕구를 굳이 밖으로 한 번 꺼내어 보라고.
누군가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은 사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깃들어 있다. 그건 당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당신이 욕구를 꽁꽁 감추고 살아간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맞춰줄 수 없을 것이며, 그 누구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당신이 당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부탁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욕구를 먼저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타인에게 먼저 부탁하기 전에 스스로 그 욕구를 알아주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쇼핑을 해도 좋고, 좋아하는 장소를 산책하거나 스스로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는 것도 좋다.
그다음에 당신에 욕구가 타인에게도 전해지도록 해보자. 말차라테 한잔을 들어 올릴 용기 한 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