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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Mar 10. 2022

공포의 발란스 게임

밤에 혼자 산을 오르면 안되는 이유

지난번 길을 잃었던 것을 만회하고자 다시 한번 백운산을 오르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6시가 넘었고, 핸드폰 배터리는 20프로가량 남았다. 조금 더 충전시키고 움직일까? 생각했지만 해지는 모습을 놓치면 무용지물일 것 같아서 찝찝한 마음으로 충전 중인 핸드폰을 챙겼다. 이번만큼은 주변 경치 감상하느라 한눈팔지 말고 정상까지 가는 길을 찾는데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도 산은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입구에 제멋대로 반듯하게 자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시선을 빼앗길까 봐 신속하게 움직였다. 지난번에 잘못 들어선 갈림길이 곧 나왔고,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을 따라가면 되는 거였다. 매번 산을 오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길을 선택해왔던 게 오늘에서야 신기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지난번보다 여유로웠다. 산에서 탁 트인 거리를 내려다보자 마음이 놓였다. 신속하게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해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식물들의 모습을 보자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사진을 찍었다.



빛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내는 식물도 있었다. 겨울이 지나간 곳에서 피어나는 봄이었다. 연둣빛의 작은 잎 하나는 혼자만 생명력을 닮은 색감을 내고 있었다. 온통 짙은색으로 뒤덮인 산에서 새롭게 돋아난 연두색 빛을 보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그 작은 출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여러 번 시도해도 카메라는 너무 작은 잎에 초점을 잡지 못했다. 초점 잡는 일이 눈으로 볼 때는 이렇게 쉬운데. 한참을 숨까지 참아가며 공들여 찍었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건지지 못했다. 더 지체할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지나쳤는데, 내 속상한 마음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산 군데군데에 연두 빛의 새 잎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계절이 바뀌려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자 혹독한 겨울 추위 내내 부지런히 봄을 준비했을 식물들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기대될 것 없는 인생 같아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부쩍 많아진 요즘, 언제쯤 이 겨울을 끝내야 할까 고민하는 내게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겨울에 모든 것을 해내려고 하지 말고, 겨울엔 겨울을 나고 봄을 준비하는 일에만 부지런하면 된다고.



한번 감을 잡고 나니 정상까지 가는 길을 찾는 건 아주 쉬웠다. 어떤 갈림길이 나오더라도 산의 테두리를 따라 둘러 간다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처음에는 왼편에 카페거리를 두고 걷고, 좀 더 들어가서는 오른쪽에 하늘고를 두고 걷는다. 바깥세상이랑 가장 가까운 쪽으로 곁을 두고 걷다 보면 길이 알아서 이리저리 엉키고 만나다가 결국에는 하나뿐인 정상으로 이어진다. 지난번에 길을 물었을 때 ‘정자에서 오른쪽’이라는 답을 들었는데 그때 말한 정자가 어디 있는지도 이번에야 확실히 이해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건지 아니면  안으로 들어와서인지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왼쪽으로 아주 동그란 석양이 보였다. 하늘이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이 들었는데, 정상까지는 한참 남은 듯했다. 이제 딴짓 말고 부지런히 올라야지 생각했지만,  걸음 지나지 않아서 눈앞에 반으로 쪼개진 나무가 보였다. 며칠  <영종도 나무엔 굴이 자란다>라는 제목으로 나무껍질에 감탄하는 글을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나무줄기의 단면을 보게  것이다. 내가 아는 나무의 단면은 물결처럼 동그란 나무테가 새겨진 수평의 단면이 전부였는데, 수직으로 잘린 단면에는 원은 없고 아주 곧게 뻗은 직선만 있었다. 매끄럽게 세공된 선이었다. 껍질에서는 찾아볼  없는, 굴곡이라곤 찾아볼  없는 결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쓸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사진으로 남기는 걸로 만족했다. 쪼개진  사이로 곧은결만큼이나 가지런히 서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을 , 탄생의 메타포로 쓰이는 진부한 장면처럼 인위적이고 절묘했다. 나무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 만족스러움에 등산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없겠지만, 나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았으니  바랄  없었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석양도 없었다. 은은하게 남은 붉은빛이 구름 낀 하늘과 섞여서 세상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열을 식혔다. 귓불에 달린 귀찌처럼 아주 작은달이 떴다. 짙은 남색 천장이 채도를 높여갈수록 달은 별처럼 하얗게 빛났다. 밤은 어두워지는데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핑계로 계속 여유를 부렸다. 한두 명의 등산객이 더 오간 뒤에야 나도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계단으로 날아와 앉은 나방 한 마리였다. 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겨울 산이라서 그랬는지 곤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나방이 있네 생각했다.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계단의 윤곽이 어둠 속으로 뭉개지더니 하늘에서 빛을 떼어낸 것처럼 눈앞이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더 이상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막히고 나서야 핸드폰 후레시를 비췄다. 저 앞길까지 내다보일 거란 예상과 다르게 발 밑을 비추는 정도였다. 계단이 얼마나 남았는지 앞으로 빛을 비춰봤지만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핸드폰은 배터리가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는 팝업을 보냈다. 나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야 했다. 잘못하다간 산속에 조난당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무의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산속을 잔뜩 긴장한 채로 걷는데 야속하게도 몇십 년 전 청학동에 가서 들은 산속의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 들은 이야기인데, 도대체 이제 와서 왜 그게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바랄 수도 없었다. 귀신을 무서워해야 할지 낯선 등산객을 무서워해야 할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립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내가 켠 후레시 불빛을 보고 누군가가 내 위치를 파악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운 생각.


마음속으로 끝없이 공포 발란스 게임이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던지, 내가 백운산에 있다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지인이 아니라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나? 무서움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정작 걱정되는 건 배터리였다. 전화를 걸다가 배터리가 나갈지도 모른다. 화면을 내려 남은 배터리를 보는데, 1퍼센트. 1이란 숫자를 보고 나는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산은 빛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올라올 때 셀 수 없이 많았던 가로등은 단 하나도 켜지질 않았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한번 더 켜는 순간 모든 게 끝나겠구나 생각하고 후레시를 꽉 쥐고 미친 사람처럼 뛰었다. 일 퍼센트면 얼마나, 몇 초나 될까. 이 생각을 하는 찰나에 전원이 나가는 건 아닐까. 내리막에서 허둥지둥 뛰다가 순간 오른발을 접질렸다. 균형을 잡기도 전에 잔뜩 긴장한 왼발이 땅을 찼다. 발목이 구겨져도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허둥거리는 나를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질 때 정상에서 낯선 사람들이 양쪽에서 올라와서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내려간 게 생각났다. 마지막 남은 후레시 빛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정신없이 뛰었다. 마음속으로 살려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서 내 후레시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포스트가 보였다. 현재 위치를 적은 알림판이 있는 곳이었다. 일단 저기까지만 달려가자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레시가 꺼지면 저기까지 제대로 걸어가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배터리가 1퍼센트 남은걸 본 게 한참 전인 것 같은데. 나는 희망과 절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알림판에 반사되는 침침한 빛 한 줌만 보고 살기 위해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둠 속에서 정자와 산불 감시소가 나란히 설치된 길목이 보였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빛 한줄기가 없어도 허공을 더듬으면서라도 걸어갈 수 있었다. 민트색으로 칠해놓은 감시소는 밤에 보니 아무 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금방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품을 때쯤에 저 멀리 고등학교의 불빛이 보였다. 살았다.


삼십 분은 걸어 올라가던 길을 거의 십여분 만에 뛰어서 내려왔다. 올라갈 땐 발아래 돌이라도 잘못 밟아 미끄러질까 봐 조심했는데, 내려올 땐 돌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남아있는 거리를 줄이는데만 온통 집중했다. 다행히 산의 보호를 받아서 1퍼센트의 배터리를 손에 쥐고 무사히 내려왔다. 고등학교 건물이 보이고 나서도 나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뛰었다. 등산객 한 명이 길목에 서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제야 내린 마스크를 올려 쓰면서 멀쩡한 사람 행세를 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운동하려고 산에서 뛰어나온 척을 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그 사람조차 무서웠다.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걷기 시작했고, 얼마나 깜깜한 어둠이었는지 곱씹으며 핸드폰을 바라봤는데 이미 전원이 나가 있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산을 내려와 짧은 터널을 지나는데 뒤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의 패딩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터널 안이라 작은 소리도 양 벽을 오가며 울렸다. 뒤돌아보니 아까 정상에서 봤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 동네이니 동선이 겹쳤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를 따라오는 건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됐다. 사람을 피해 길을 건너가려는데, 뒷사람도 나를 따라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었고, 차도를 기웃거리면서 언제라도 도망갈 채비를 했다. 도로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일단 문 열린 가게가 있는 곳까지 좀 더 뛰어보자 생각하고, 다시 달렸다. 멀리 와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세상 모든 게 무서워진 마음은 대로의 신호등 불빛과 신호를 기다리며 얌전히 멈춰있는 차들을 보고서야 놓였다. 정신없이 뛰느라 다 풀려버린 다리가 그제야 무거웠고, 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접질린 오른쪽 발목이 걸음마다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온몸에 긴장이 풀려 소파 위로 쓰러졌다. 시고 단 레모네이드에 얼음을 넣어 마셨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산을 오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배터리 없는 핸드폰으로는 외출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해서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위험에 빠트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신뢰를 잃은 날이었다. 항상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사는 편이고, 그것대로 멋진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불을 껐는데, 어둠 속에 혼자만 밝은 핸드폰 불빛을 보고 등 뒤에서 공포가 덮치는 기분이 들었다. 산에서 허둥지둥 뛰어 내려오던 깜깜한 어둠이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온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가 스탠드 조명을 켰다. 별거 아닌 일에도 무섭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공감과 이해는 인생이 길어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쌓이는 미덕이라고 하지만, 나는 차라리 모르는 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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