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에 이사를 오고 난 후 가장 크게 실망한 건 여전히 을왕리와 왕산이 한참 멀다는 것이었다. 바다를 보기 위해선 버스에서 나 홀로 한두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섬이라면 바다가 사방에서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숲이나 공원을 산책하며 바라본 바다 비슷한 것들이 있었지만, 심지어 집안에서도 창밖으로 수평선이 저 멀리 보이지만 내가 원하는 건 내 두 눈을 꽉 채울 만큼 물이 찰랑거리는 진짜 바다였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예단포다. 내가 원하는 모래가 깔린 해변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바다였다. 차가 없는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유일한 항구를 향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글을 쓰는 지금은 어느덧 날씨가 풀린 3월이다. 겨울 내내 입은 롱 패딩이 지겨워서 봄 아우터를 구경하고 있지만, 예단포를 방문했던 날은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날로 한창 바람이 매서운 12월이었다. 나는 영종도에 이사온지 한 달이 막 지난 참으로 이루려고 계획했던 많은 것들 중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스트레스만 쌓고 있었다. 일부로 조용한 동네를 찾아왔건만 사람이 모여사는 곳은 결국 시끄러웠고, 한 칸짜리 방에선 그걸 피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평소엔 찾지도 않던 탁 트인 바다가 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도를 보니 예단포까지는 5km. 걸어서는 1시간 20분이 걸린다. 분명 길을 헤맬 테니 못해도 한 시간 반은 꼬박 걸어야 했다. 롱 패딩은 물론이고 털모자에 털장갑까지 꼈고 바지 사이로 바람이라도 들어올세라 양말을 바지단 안으로 당겨 넣었다. 건물을 나섰을 때 부는 바람은 잠깐 상쾌했다. 하지만 건물에 그늘진 도로를 걷자 통증 같은 추위가 느껴졌다. 최대한 해가 뜨는 곳으로 길을 옮겨가며 걷기 시작했다. 연휴 다음날이라서인지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크리스마스엔 사람들로 가득 찼던 카페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카페거리 끝으로 다리 하나를 지나치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이어졌다. 거기는 사람 사는 마을이라기보다는 동네 전체가 큰 도로 같았다. 공항 화물청사가 있는 곳으로 이어진 도로인데 저 멀리에서 기차가 지상으로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처음 와본 곳이라 사방을 경계하며 걸었지만 언제 한번 와본 것 같은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운서동 어디에서나 뻔질나게 볼 수 있는 갈대와 작은 소나무와 가시가 돋친 거친 풀들과 손톱보다 작은 마른 꽃들이 길가에 버려진 들판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한 달 만에 익숙해진 운서동의 식물을 바라보며 좀 더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현대 미술관 같이 매끄러운 건물 하나가 눈에 보였는데, 사선으로 타고 올라가는 구조로 보아 주차장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본다면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간판도 없는 건물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변의 노란 갈대밭 풍경 때문인지 유난히 하얗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건물의 둥근 곡선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바다를 걷다가 유난히 새하얀 조약돌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건물을 끝으로 낮은 풍경의 도로가 이어졌고 마스크 안에 찼던 입김은 추위에 그만 얼어버렸다. 나는 얼음 서린 마스크를 벗었다가 그거라도 쓰고 있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도블록이 부서지고 깨진 길을 걸으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이 없는 대신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지만 내 존재를 신경 쓰느라 속도를 줄이는 차는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내가 느꼈을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관한 고민들이 그때만큼은 들지 않았다. 너무 추운 탓에 제대로 사색하기가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추위를 피하고자 눈썹 아래까지 모자를 끌어내렸다. 듣고 있던 노래를 아무렇게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차들은 무신경하게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세상의 무관심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노래방에 온 것처럼, 무대에 선 것처럼 목이 터져라 열창하기 시작했다. 내 노래는 엉망이었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그렇게 찾아온 예단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항구를 기대했건만 눈앞에 보이는 건 마른 갯벌이었다. 물때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나서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메마른 바다는 생전 처음 봤다. 추위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이 소금처럼 덩어리 져 하얗게 얼어있었다. 마저 실망할 기운도 없었다. 추위를 뚫고 오느라 마스크 안에는 콧물이 범벅이었고 눈꺼풀까지 내려쓴 앙고라 비니 덕에 얼굴이 무진장 가려웠다. 장갑 낀 손도 시리고 방한 기능이 없는 러닝화에 발가락도 시렸다. 뭐든지 몸을 녹일만한 곳을 찾아보려는데 줄지어진 횟집 사이로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카페로 들어갔다.
조심스러웠던 건 내 몰골 때문이기도 했지만, 백신 패스 때문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지금에야 백신 패스는 모조리 사라졌지만, 당시엔 미접종자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강하던 시기였다. 몇몇 카페에서는 미접종자의 출입을 거부하는 안내문을 걸어놓곤 했다. 차라리 친절한 곳이었다. 큐알을 찍고 나서 친절해 보이던 주인이 표정을 바꿔 나를 내치진 않을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다행히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찬바람과 싸우다시피 걷고 난 후여서 나는 창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커피도 바로 마시지 못하고 연신 종이컵을 매만져가면서 손바닥과 손등을 녹였다. 몸이 슬슬 녹아 여유롭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려던 차에 늦은 점심을 마친 손님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카페라 금세 자리가 부족해졌다. 나는 눈치 없이 4인석을 차지한 손님이 되기 싫어서 하는 수 없이 남아있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빠르게 인사를 하고 가게 밖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후회했다. 밖은 여전히 너무 추웠다. 만조 그래프를 확인해보니 지금은 그래프의 저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더 빠질 물도 없는 데 이상한 일이었다. 요 근래 제대로 된 바다를 보지 못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과 달의 타이밍이 전혀 맞질 않았던 것이다. 찰랑거리는 바다를 보려고 온 건데, 내가 볼 수 있는 건 밤바다뿐이었다.
돌아 나가려던 차에 예단포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봤던 토스트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토스트’라는 글씨가 얼마나 빨갛고 두꺼웠는지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쓴 글씨 같았다. 원래 계획은 바다를 잠시 감상하고 토스트를 먹고 돌아가는 코스였는데 바다는 없었고, 바다 옆 카페에서 여유롭게 물이 들어오는 걸 보려던 계획도 틀어졌다. 그렇다고 토스트를 먹는 것까지 취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토스트 가게로 들어갔다. 거긴 커피와 토스트와 어묵과 새우튀김을 파는 카페였다. 난 방금 전에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원샷한 후라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신중하게 치즈 토스트를 하나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얼마 후 나온 토스트는 달큼한 연유 냄새가 풍기는 계란 토스트였다. 뜨거운 기름에 번들거리는 노란 계란부침을 보자 얼었던 식욕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식히지도 않고 뜨거운 빵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따뜻하고 고소한 기름 맛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다 씹지 않고도 꿀꺽 삼키고 얼른 다음 한입을 먹었다. 토스트에만 온전히 집중하면서 빵 하나를 거의 다 삼킬 때쯤에야 목이 메었다. 물 한잔이 간절했다. 나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물한병 사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사장님이 이것 좀 마셔봐요 하면서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건네주셨다.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종이컵에 든 물은 보리차보다 짙은 갈색이었다. 사장님은 뜨거운 물에 커피를 연하게 탔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수차례 베풀었을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토스트만 먹으려고 했는데 가게 이름처럼 커피&토스트를 먹게 되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여전히 추웠지만 마음은 달랐다. 식지 않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토스트에 관한 기억이 예단포의 추억이 될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그날 예단포에 기대했던 바다는 없었지만, 종이컵에 찰랑이는 따뜻한 물 한잔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