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머신 사용법을 배우는 것은 포터 필터를 다루는 과정이 팔 할이었다. 포터 필터는 두꺼운 아이스크림 스쿱처럼 생겼는데, 아이스크림 대신에 분쇄한 원두를 담는데 쓰인다. 그리곤 소복하게 쌓인 원두를 탬퍼를 이용해 꾸욱 누른다. 탬퍼는 호떡 누르는 기구처럼 생겼다. 단순해 보이는 두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규칙과 절차를 포함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원두는 인심 좋은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스크림을 푸듯이 양껏 담으면 안 된다. 정량에 맞춰 에스프레소 두 잔이면 16그램가량을 담는다. 또 탬퍼를 쓸 때는 호떡을 가볍게 누르듯이 손목을 쓰는 게 아니라 양발을 벌려서 팔꿈치를 직각으로 만든 다음에 몸을 기울이는 힘으로 눌러야 한다.
마음과 다르게 원두의 무게는 범위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특히나 학원에서 쓰이는 원두 분쇄기는 레버를 당기면 정중앙이 아니라 왼쪽으로 치우친 곳에 원두를 뱉어냈다. 그러다 보면 왼쪽으로 고도가 높은 커피산이 형성되곤 한다. 산사태가 날 것 같다 싶을 때쯤 전원을 끄고 손으로 툭툭 쳐 산을 들판으로 만든 뒤 무게를 재면 정작 16그램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에베레스트 커피산을 해발이 낮은 두 개의 동산으로 나누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야 탬퍼를 들어 들판을 평지로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탬핑은 처음으로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계기이기도 했다. 취직을 준비하던 이십 대 때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이 정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누린 가장 큰 사치는 매일같이 남이 내려준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먹는 거였다. 한잔에 천오백 원이란 가격 덕분에 가능했던 건데, 나와 같은 이유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집이었다. 어쩌면 커피집이 아니고 와플가게였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손님들은 와플보단 커피를 사느라 그곳을 찾았다. 천오백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직원이 부지런히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그중 커피가루를 탬퍼로 꾹꾹 누르는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데, 커피 한잔 만들겠다고 온몸의 무게를 실어 커피가루를 압축하는 장면은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가루가 된 원두를 다시 콩이 되도록 누르는 일은 천오백 원 중 얼마 정도 될까 궁금했다. 그야말로 핸드 메이드 커피였다. 유독 이 과정만 인간이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싶다가도 은근히 재밌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있는 힘껏 꾹꾹 눌러서 쓸모 있는 무언가를 짠하고 만드는 것. 예를 들면 두 손에 흙을 담아 꾹꾹 눌러서 주먹밥을 만드는 놀이처럼 잠깐만 집중하면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탄생하는 일 말이다. 그 당시 난 최선을 다하는 능력이 헐거워진 고무패킹처럼 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힘껏 커피가루를 누르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학원에서 알려주는 탬핑의 방법은 조금 달랐다. 손목이 나가는 걸 막는 대신 체면이 나가는 자세를 알려줬다. 게다가 이런 자세로는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있는 힘껏 꾹꾹 누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 과학이 발전한 건지, 탬핑 시 너무 과하게 압력을 주면 그 안에서 크랙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손목 빠져라 누르는 과정은 사실 커피맛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내가 배운 탬핑은 힘을 주는 둥 마는 둥 지긋이만 누르는 것이었고, 수평이 되도록 각도를 맞추는 일에 가까웠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비뚤어진 곳이 없는지 섬세한 눈길로 확인을 하고 나서야 머신에 장착해서 추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수평이 맞지 않는다면 한쪽 물줄기는 졸졸졸 나오고 다른 쪽 물줄기는 콸콸콸 나오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진다.
힘을 빼고 평평하게 커피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할 때면 그 커피집의 아르바이트생이 자꾸 생각난다. 그래 봤자 나보다 한두 살 어린나이였을텐데 손님들에게 그럴싸한 커피 한잔을 내려주겠다고 발꿈치를 들고 온 힘을 써가면서 원두를 누르던 모습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내려준 커피는 특별히 맛있지도 않았다. 보통은 짤랑이는 얼음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히는 맛에 마셨다. 그렇게 내린 에스프레소가 얼음과 물에 희석이 되어 특별한 맛을 내지 못한 것처럼 허튼데 손목만 나간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내 기억 속에 도장을 찍듯이 아직까지도 남아져 있는 걸 보면 그리 헛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생긴 호기심이 수년이 지난 지금으로 이어져 커피학원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