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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Oct 05. 2022

모카포트의 작동원리

    나는 커피를 뽑아 마시고, 타 마시고, 사서 마시는 사람이다. 아침마다 커피를 한잔씩 내려마신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여유로움에 놀란 적이 있다. 찾아보면 주변에는 직접 커피를 내려마신다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이들은 로스팅한 원두를 구해다가 직접 분쇄한다. 재밌는 건 편리한 전동 그라인더 대신 수동 핸드밀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 사실이 내게 어떻게 들리냐면은 버튼 하나로 창문을 내릴 수 있는 걸 굳이 손잡으로 돌려가며 내리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어릴 적 택시를 타면 손잡이를 돌려서 창문을 내리던 차가 종종 있었다. 그런 손잡이를 발견하면 꼭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마 돌린 바퀴 수와 창문이 내려가는 높이가 정직하게 맞아 떨어져서 내 힘으로 창문을 내렸다는 성취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커피를 제 손으로 만들고 싶은 나머지 손목을 희생해가며 커피콩을 갈기를 선택한 사람들. 이런 성취감에 집착이 더해지면 수동 거품기를 저어가며 생크림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니면 달고나 커피를 만든다거나. 원두를 가지고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콜드브루를 제외하고) 팔팔 끓는 물이 필요하다. 일단 물이 끓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엔 뜨거운 물에 커피 성분이 녹아나는 추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마지막엔 온갖 과정에 잠깐씩만 쓰인 기구들을 씻고 말려 보관한다. 간편하다는 캡슐머신의 예열 시간도 견디기 어려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다.


    이런 내 마음을 바꾼 것은 몇 해 전 친구가 내려준 커피 한잔이었다. 커피를 내려마신다는 말에 나도 한잔 마셔보겠다고 놀러 간 거였는데 친구는 난생처음 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수동 그라인더를 부지런히 돌려 콩을 가는 거야 예상한 일이었지만, 어디 네덜란드 이층 집처럼 생긴 곳에 커피가루를 담더니 다짜고짜 가스레인지에 올려두었다. 나는 난생처음 본 커피 끓이는 방식에 흥미가 생겨 열심히 기웃거리며 살펴봤는데,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름 이탈리아에서 (어릴 적에 아주 잠시) 살았던 경력이 있는 친구인지라, 이탈리아에서는 다들 이렇게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는 말을 듣고 일단 커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방안에 들어가 사온 디저트를 늘여놓았고 얼마 안 되어 집안이 온통 진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친구는 유리잔 대신 스테인리스 잔에다가 커피를 담았고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는 컵홀더를 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맛을 보기도 전이었지만 짙은 색과 향만으로도 진한 맛이 날 게 틀림없어 보였다. 기대에 벌어진 입 사이로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진한 커피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놀라운 건 그렇게 진한 커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맛있다고 말하고 잔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홀짝홀짝 다 마셔버렸다. 그런데 친구의 잔은 비어있었다. 너가 마실 커피는 어딨냐고 물으니 네덜란드 이층 집처럼 생긴 그 커피 기구가 딱 1잔만치의 커피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친구는 다시 분주하게 원두를 갈았다. 


    나중에서야 그 기구의 뚜껑을 들어서 안의 생김새를 살펴봤는데, 1층에 물이 있고 1.5층에 커피가루가, 2층에는 물이 끓고 나서 커피가 모이는 형태였다. 보통은 2층에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커피가루가 있는 1.5층을 거쳐 1층에 커피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라 나는 어떤 원리로 커피가 만들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빈 종이에 모카포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수 그려줬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내려먹는 커피라는 고정관념에 단단히 묶여있던 탓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서 나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겠다며 커피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세 번째 수업에서는 커피 추출 기구의 원리를 배웠는데, 모카 포트의 가압추출법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야 묵혀둔 기억이 떠올랐다. 압력 때문에 물이 1.5층을 거쳐 2층까지 올라가 커피가 된 것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자마자 얼른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드디어 모카포트의 원리를 깨우쳤다고. 그날 마셨던 커피가 여태껏 남이 내려준 커피 중 가장 맛있었는데, 친구가 믿어 줄 것 같진 않아서 그 말은 생략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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