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돌비 Oct 06. 2022

서른이 넘은 딸에게 운전연수를

시켜주는 아빠도 용기가 필요하다.

    주말에는 부모님 집에 갔다. 따로나와 산지는 세 달째. 가족들에게는 인천에 산다고만 말했지 영종도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때문에 인천에 살면서 본가에 자주 들르지 않는 나를 부모님은 서운하게만 생각했다. 몇 주 동안 날씨를 핑계로 없는 일정을 만들어가며 본가에 가는 것을 피하다가 내가 먼저 찾아간 것은 운전연습 때문이었다. 


    커피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서 운서동까지 운전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반복 학습덕분에 나는 금방 자신감이 생겼으나 욕심도 함께 붙었다. 초심자용 사냥터 같은 영종도의 도로가 아니라 진짜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살고 있는 경기도의 혼잡한 도로가 제격이었다. 서른이 넘어서 부모님에게 운전연수를 부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영종도에서 짧게나마 갈고닦은 주행 실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차가 너무 많아서 차선도 잘 보이지 않는 동네의 도로를 떠올리며 걱정이 섞인 상태로 출발했다.


    토요일 오후. 운전연수가 시작되었다. 장소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약간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주차도 능숙하지 않으니 나쁘지 않은 커리큘럼인 것 같았다. 게다가 차를 끌려면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것부터가 시작이니 흐름상 자연스러웠다. 강사가 두 분이나 계셨는데, 조수석에 강사 1은 아빠였고 뒷좌석에 강사 2는 엄마였다. 안 그래도 혼란한데 오디오 두 개가 동시에 돌아가는 상황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고작 주차장을 도는 건데 해라, 마라, 지금, 아까, 나중에, 잠깐 같은 말이 초단위로 쏟아졌고 주차를 할 때는 두 강사분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라고 가르치는 바람에 뇌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와중에 저녁 먹는 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룰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금방 강습을 마쳐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빠의 운전연수 역대 졸업생인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고, 의기양양하게 유난히 좁은 주차장 통로를 지나서 지상으로 나가 우리 동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운전 연수생이 아닌 딸로 돌아와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기 시작하자 더욱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을 함께한 부모님이 보여준 박한 믿음과 생판 모르는 남이 베풀어준 믿음을 자꾸만 비교하게 되었다. 중고차 한 대도 살 수 없는 내 처지도 처량했다. 가족들과 한집에 부대끼며 괴로워하며 살다가 겨우 월세 낼 돈을 모아 해방되는 듯싶었는데, 나 혼자 탈 수 있는 차는 없었다. 밥이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자신만의 거주지와 이동수단을 확보하는 것은 인생의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 같은 거였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른 삶이 그에 맞게 펼쳐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빠는 밥 먹고 다시 연습을 하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강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어디 후기를 남길 방법도 없어서 수강을 철회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었고 아빠는 또다시 운전연습을 하러 가자고 했다. 전날의 일을 생각하면 내키지 않았지만 무료 강의를 거절하긴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고 어제 참관했던 엄마는 빠지기로 했다. 아마 수강생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걸 계기로 두 분이서 밤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셨는지도 모른다. 결국 어제의 그 지하 주차장을 또 돌게 되었다. 


    지하 주차장을 도는 일이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우선 내가 운전을 해봤던 유일한 차(운전학원 노란 차, 커피 친구의 차)와 부모님의 차는 엑셀 밟는 느낌이 달랐다. 전자는 말 그대로 밟아야 움직인다면 후자는 발에 무게만 느껴져도 혼자 놀라서는 저 앞으로 슥 나가버리는 스타일이었다. 너무 예민하게 구는 엑셀 때문에 발에 힘을 빼느라 진땀을 뺐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줄 때는 쉽게 쉽게 손을 떼었던 아빠였지만, 서른이 넘은 딸에게 운전연수를 시켜주는 마음은 좀 달랐나 보다. 아빠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지하 주차장을 몇 바퀴 돌고 나서야 지상으로 올라가자는 신호가 떨어졌고 나는 핸들을 꽉 잡고서 번잡한 도로로 첫 바퀴를 굴렸다. 말할 것도 없이 주말 도로엔 차로 가득했다. 버스 밀도도 만만치 않아서 오른쪽 차선을 타고 달리는 건 걷는 것만 못했다. 그렇지만 인도에서 부지런히 걷는 사람을 재빠르게 지나칠 때마다 여태껏 걷느라 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동네에 평생을 살면서 매 골목을 걸을 때마다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유까지 마치고 나서야 운전연수가 끝났다. 주유소의 키오스크 화면을 능숙하게 누르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핸드폰의 설정을 바꾸고 싶다며 물어오는 모습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몇 달 뒤에 가족모임이 있던 날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 뒤에 차를 운전했던 형제의 후기를 듣자 하니 주변에 달리던 차들이 자꾸 클락션을 울렸다고 했다. 시비를 거는가 싶어 기분이 나빴는데 알고 보니 주유구의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었다고 한다.




차폭감? 그게 뭔데, 어떻게 익히는 건데...


이전 07화 모카포트의 작동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