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달 전부터 친구가 같이 가자 했던 카페가 있었다. 차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한다고 해서(내가 사는 시골 도시에서 30분을 차로 달리면 나오는 것은 논밭을 낀 산, 묘지를 낀 산, 백로 도래지라는 산, 오직 산뿐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 드디어 가 보게 됐다.
일단 그곳은 일방통행밖에 안 되는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야 했다. 앞에서 차가 나오면 하염없이 후진을 해서 농수로로 피해 있어야 하는 그런 산길이었다. 이런 데 카페가 있다고? 진짜로?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좁은 농로를 믿음으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 친구의 설명에 마구 진흙을 튀기며 엑셀을 밟았다. 소 나오고 닭 나오고 거름 더미 나오고 지푸라기 흩어진 언덕을 넘고 또 넘어가다 보면 과연, 믿음은 보답을 받는다. 갑자기 하이얀 돌을 쫙 깔아 놓은 번듯한 주차장이 두둥, 나온다. 그전에 지나쳐왔던 산길과 너무나 대조적이고 현대적인 공간이 튀어나와 이세계로 급히 들어선 기분이 들 정도다.
침엽수로 둘러싸인 주차장 앞엔 잘 다듬어진 벽돌로 섬세하게 지은 건물 몇 채가 서 있다. 붉은 벽돌로 아치를 만들어 유리문을 끼운 아름다운 건물이다. 벽돌 건물 옆엔 유리온실처럼 돔형으로 독특하게 지은 건물도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6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원목 장식의 빈티지 오디오(스피커인가?)가 놓여 있고, 매일 직접 만든다는 빵들이 정성스레 진열되어 있다. 버터 바, 다쿠아즈 같은 구움 과자부터 어니언 베이글, 바나나 치즈가 들어간 파니니 같은 식사빵까지 신경 써서 메뉴를 정하고 플레이팅 한 게 느껴졌다.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면 전체가 커다란 통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창으론 울창한 나무 숲이 보인다. ['숲 멍'을 하기 좋은 공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써져 있는 그 공간에선 고급스러운 소나무 향까지 은은히 흘렀다. 원목 테이블과 고풍스러운 벽돌 장식과 희고 깔끔한 의자가 너무나도 힙한데, 창밖으로 보이는 숲이 고요하고 차분해서 명상적인 느낌마저 함께 든다고 하면 이상한 설명이려나? 이 카페를 방문한 사람은 더없이 현대적이고 깔끔한 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도심에선 누릴 수 없는 숲의 가장 좋은 부분-벌레나 추위 같은 것을 빼버린-만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 옳겠다. 강한 바람이 불어 떨어지는 낙엽 같은 것을 따듯한 카페 안에 앉아 구경하고, 송진의 찐득찐득한 부분을 만지지 않고도 깔끔하게 추출된 솔향을 맡으면서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를 잡아 인스타에 사진도 올리고... 아무튼 숲의 좋은 부분만 편취할 수 있게 만들어진 멋들어진 카페였다. 캠핑 느낌도 낼 수 있도록 큰 나무가 잘 보이는 곳마다 캠핑 의자와 파라솔도 센스 있게 놓여 있었다. 오는 길에 깔려 있는 거름이나 논밭 같이 깔끔치 못한 경치는 싹 가려져 오직 깊은 숲에 들어온 느낌만 남았다. 사장님도 매우 친절했다. 디저트도, 음료도 평균 이상의 맛을 냈다.
그리고...
이 카페의 모든 곳은 노 키즈, 노 펫 존이었다.
왜일까.
60년 된 빈티지 오디온지 스피커 때문에? 어린이들이 오면 통창에 손자국을 낼까 봐? 미니멀을 지향하는 듯한 카페엔 깨질만한 장식품은 하나도 없었다. 카페 주변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색깔의 단풍잎들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숲 멍'을 하러 온 사람들을 방해할까 봐 그런가? 어린이들은 으레 시끄럽기 마련이니까? 그러기엔 내 옆에 앉아 있는 성인들도 충분히 시끄러웠다. 층고가 높아서 어른들의 새된 웃음소리가 건물 전체에 왕왕 울려 퍼졌다.
대체, 왜, 이렇게 아름다운 숲 공간을 꾸며놓고선 어린이도, 반려동물도 못 오게 한 걸까.
딱 한 군데 '케어 키즈존'이라 지정된 곳이 있긴 했다. 건물들 가장 뒤편, 해가 가장 덜 들고 작은 창문이 달린 그 건물엔 교회에서 쓰는 딱딱하고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린이를 데리고 오면 오직 그 공간에만 머물러야 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데려온 가족이 있었다. 지역에서 워낙에 유명한 카페니까 젊은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나보다 늦게 온 그 가족은 그 건물에서만 조금 머물다 나보다 먼저 떠났다. 노 키즈존이란 걸 모르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개간해 그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을 꾸미기까지 카페 주인은 많은 돈이 들었을 거다. 공들여 꾸민 자신의 사업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난 정말, 한 인간이 자신의 자본을 들인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의 출입을 제한할 권리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자는 '그게 아니꼬우면 네가 안 가면 그만이지, 자기 사업장 자기 맘대로 한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본인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듯하다. 태어나서부터 타인에게 조금의 민폐도 끼친 적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허용받았는지, 세상으로부터 돌봄 받고 환대받았는지 아예 잊은 것 같다. 한 인간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출입 자체를 금지당한다면 어떻게 타인에게 돌봄과 환대를 나누어주는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세상은 그렇게 아기를 낳으라면서, 저출생 국가라 걱정이라면서 정작 아이를 낳아 놓으면 가장자리로 밀어내기 일쑤다. 이 사회엔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당연히 제공되어야 할 허용과 환대가 부재하다. 나는 무심한 따돌림, 너무 무심해서 날 밀어 내치는 것을 뭐라 감히 항의할 수조차 없는 그런 배척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숲에 자리한 그 카페에서 느꼈다.
더없이 아름답고 고와서 내 아이를 데려가고 싶은 그곳은 노-키즈 존이다. 아이는 들어갈 수 없다. '주인'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아동 출입 금지 업소라고 정한 주인이 정한 룰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돌아 나와야 한다. 빵을 살 돈이 있어도, 음료를 사람 수대로 시킬 거라 말해도 우리에겐 그 공간에 들어갈 권리 자체가 없다. 도시의 힙한 업장은 대부분 아동에게 그 공간을 누릴 자격을 주지 않는다.
아이와 나는 아름답고 친절하지만 아동은 출입이 금지된, 그런 장소들이 산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영영, 그 아름다운 숲 카페에 가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사진을 보여줘도 다 느낄 수 없는 그곳만의 바삭했던 구움 과자의 맛과 통창으로 보이던 하늘을 찌를 듯 키가 컸던 나무의 단단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아이는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