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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광걸 Apr 14. 2020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들

- 지구촌 빈곤 현장에서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뭘!’     

 

 두 달도 채 남지않은 기간에 우리 네 식구는 아프리카로 이사가야 했다. 짧은 시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자포자기 반 자기위안 반으로 한 말이었다. 아이들의 학교문제, 한국식품 구입, 서울 전셋집 처리, 현지에 맞는 전기제품 등등. 가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는 나라이다. 최근에 연예인 쌤 오취리의 고향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나라다.

2010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하는 오색기가 런던브릿지에

 우리 가족이 가나의 수도 아크라(Accra)에 도착한 때는 2010년 런던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던 기간이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일주일 전 즈음에 가나의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대통령이 재임 중 서거했을 때에는 대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치안이 불안하다. 우리 가족은 혹시나 정정이 불안해지면 어쩌나 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컨테이너로 보낸 이삿짐이 올 때까지는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집안 가구들이 없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식탁과 의자가 없는 거실은 휑한 공간이었다. 베개가 없는 잠자리도 불편했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뭘!’ 이라며 모든 상황을 너무 낙관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이삿짐 컨테이너가 아프리카 남아공의 있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고 있다는 이메일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희망봉은 의외로 바닷바람이 셌다

 의자가 없는 생활은 참 힘들다. 개인적으로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 중에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지금도 주저없이 의자를 고를 것이다. 의자가 없으면 독서를 할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 여유 있는 자세로 차 한 잔 마실 수도 없고, 석양볕을 쪼이며 오수를 즐길 수도 없다. 결국 너무 불편하여 견디다 못하고 집근처에 있는 대나무 의자 가게를 들렀다. 서울에서 짐이 도착하면 버릴 생각으로 저렴한 현지식 의자를 구할 참이었다. 가게 한 젊은이가 인사를 하며 다가와 끈질기게 쫓아오며 자신의 물건 사기를 종용했다. 어차피 사려고 했던 마음조차 주저하게 할 정도였다.

 “현지에서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이 나라 빈곤감소에 도움이 되겠지?”라고 집사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그 청년을 보고 “사겠다”고 했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이틀이면 새 의자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한다. 계약서에 씌여진 그의 이름은 야 아모아코(Yaw Amoako)였다.     

아모아코가 만들어준 의자

 이틀 후 아모아코는 커다란 일인용 대나무 의자를 짊어지고 집에 왔다. 당초 가격보다 비싸게 달라고 한다. 자신이 더운 날씨에 배달했으니 좀 더 처달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흥정에 관해 익히 들어오던 터라 나는 물건에 흠집은 없는지 살펴보려했다. 그러자 한 덩치에 키가 큰 아모아코는 의자위에 올라가 겅중대며 힘주어 말한다.     


 “대나무 의자는 튼튼하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는 “뿌직!” 소리를 내었고, 그 아모아코는 의자에서 발을 헛디뎠다.      


 별일 없었지만, 순간 그 청년은 매우 머쓱해했고, 우리 부부는 코메디같은 상황에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처음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웃음덕분에 아모아코는 의자를 원하는 가격에 팔았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장사꾼의 마음은 한국이나, 아프리카나 다름이 없었다.      


 제니쓰(Zenith)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전임자로부터 소개받은 메이드인 그녀는 힘이 장사였다. 피아노를 홀로 들어 움직이고, 우리 부부가 함께 달려들어야 겨우 움찔거리던 침대조차 거뜬하게 들어 좌우로 이동시키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체격은 단단했지만, 얼굴의 생김새와 태도는 온화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할 때에는 소녀처럼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인사를 했다.      

“Good Morning, Sir.”     

상냥한 말투에 교양 있는 태도는 어떤 기품마저 느끼게 했다. 기품있는 태도는 지식으로써 단순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니쓰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심이 돈독한 신앙인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프리카 사람에 대해 어떤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경보기, 알람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하며 점차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해소해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모두 내게는 선생이었다.      

아르빌 시내 모습

 이라크 아르빌(Erbil)에서 일하는 필리핀 중년여성인 델리아(Delia), 그녀는 한국기업체에서 일하다가 우리 사무소에 합류한 외국인 근로자이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아르빌에 가톨릭 교당이 있고, 성모상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성모상이라니?’ 의아해하는 내게 그녀는 운전수인 무자파(Muzafar)에게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 식당에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4차선 대로 중앙에 3층 높이의 성모상을 설치해 놓았다. 근처에 가톨릭 교당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유를 물어봐도 상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현지 직원인 압둘라(Abdollah)는 ‘아르빌 사람들은 종교에 개방적’이라고 설명한다. 의아해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랍족인 바그다드 사람들과 달리 아르빌에 사는 사람들은 쿠르드족이어서 종교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아르빌에는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 토속신앙을 믿는 사람도 있으며, 이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황갈색의 모래사막과 낙타가 연상되는 중동지역에서 알게 된 문화의 다양성은 ‘역시 세상은 넓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슬람교는 배타적이고 우상화를 금기하는 폐쇄적인 종교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슬람교의 본토인 도심 한복판에서 대형 성모상을 올려다 본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라과이는 남미대륙에 있는 내륙국가다. 국제기구는 내륙국가를 ‘land-locked country’ 즉 ‘육지로 갇힌 나라’로 세계 빈곤국가들의 공통점으로 본다. 파라과이의 국토 모양은 대한민국 한반도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우리와는 지구의 대척점에 있어 계절과 밤낮이 완전 거꾸로인 나라이다. 지금은 미국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1965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곳 파라과이 등 남미지역에 농업이민을 많이 왔다. 아직도 상당수의 한국인 교포들이 현지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부에나스 노체스(Buenas noches)”      

파라과이 전봇대

나는 차안에서 저녁인사를 속으로 되내이며 연습했다. 지방 출장을 동행했던 사무소 여직원인 브리사(Brisa)에게 감사의 뜻으로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브리사의 낯빛이 밝지 않았다. 꺼림직하여 저녁에 현지 사무소 소장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니 나의 인사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차에서 함께 내렸을 때 볼 인사를 했어야 했다. 스페인어권인 파라과이는 남녀간 인사를 할 때 간단히 뽀뽀할 때 나는 “뽀” 소리와 함께 좌우로 볼 인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성은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도착해서는 브리사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약간의 선물, 그리고 에스파뇨르식의 인사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변명을 하자, 브리사는 활짝 웃으며 “Esta bien (에스타 비엔)”, 괜찮다며 활짝 웃었다. 현지 소장의 말이 맞았다.      

파라과이 전력청(ANDE) 실무 미팅

 “아미고(Amigo)!”      

 과테말라 전력부 장관은 큰 키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호남형으로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좌우로 나를 두 번 허그하며 반가이 인사를 했다. 남미 지역은 첫출장이어서 이런 인사법을 처음이었다. 다정함이 전해지고 깊은 인상이 남는 따뜻한 인사법이었다. 이후 출장에서 돌아와 집사람과 어린 딸들에게 에스파뇨르식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더니 이제는 허그 인사에 익숙해졌다. 내가 남미출장에서 선물받은 가장 큰 것은 가족간에 허그 인사법이다. 동남아의 빈곤이 애절하다면, 중남미의 빈곤은 여유가 느껴진다. 중남미의 낙천적인 문화때문일까?     

얽히고 설힌 전깃줄

 파라과이의 수도인 아순시온(Asunción)을 출장온 이유는 전력부문중 배전부문 지원을 위한 협의를 갖기 위해서였다. 송변전 부문은 재원과 전문가가 풍부한 한국전력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배전 부문은 중소기업이 공급하고 있어 해외 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때였다. 배전부문은 전기가 발전소로부터 송변전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주민에게 전달하는 단계로 소비자인 일반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이다. 우리나라 배전기술은 IT 기술을 접목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나, 해외에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후보 사업장은 수도에서 다소 떨어진 지방이었다. 스페인어지역은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아 통역이 필요했다.

 교포 자녀가 한-스페인어 통역을 했는데, 그녀는 우리나라가 파라과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고 한국인인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아순시온은 세계적으로도 강우량이 많은 곳이다. 우기철에는 시내 도로가 침수되어 많은 문제가 있다며 한국업체의 진출을 당부하던 당시 교통부 장관은 왠지 친밀감이 느껴졌다. 귀국후 자랑스런 해외 교포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의 사윗감이 한국인 교포인 젊은 의사였는데, 종종 의료봉사를 한다고 했다. 한 세대만에 눈부신 발전을 거둔 부모님의 나라,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하는 교포 자녀들로부터 ‘서로를 돕는 지구촌, 세계 속의 한국인’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순시온 시내에 있는 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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