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언어로 쓰인 자서전
나는 한때, ‘살아간다’는 말이 정주를 전제로 한다고 믿었다. 무언가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삶은 유예된 상태로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낯선 언어와 문화의 틈새에서 조금씩 어긋나며 살아가는 동안, 나는 오히려 나 자신과 더 가까워졌다.
해외살이라는 조건은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그 질문들은 언제나 명확한 답을 요구하지 않았고, 나는 해석보다 관찰, 단정보다 유예의 태도로 나를 다시 구성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정체성은 더 이상 고정된 정답이 아니었다. 타인의 언어, 온도, 시선에 따라 조금씩 굴절되는 자아의 단면들을 관측하며, 나는 ‘하나의 나’가 아닌 ‘지층처럼 쌓이고 흘러가는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흐름 위에 놓인 기록이다. 해체와 복원, 단절과 연속, 경계에서 태어나는 감정들에 대한 작고 사적인 탐구.
나는 여전히 어떤 문화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못했고, 어떤 감정도 완벽히 정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질감은 이제 결핍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하나의 반사광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정주하지 않음은 때로, 가장 깊은 방식으로 ‘나를 살아가는 일’ 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떠 있는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떠 있다는 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 나라는 감도가 피어난다.